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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적없는 아이들] 부모는 학대·시설은 입소 거부…법보호 밖 ‘미등록 이주 아동들’
전문가 법적·제도적 개선 시급 지적

12살 윤지(가명ㆍ여)의 악몽은 지난 2015년 시작됐다. 필리핀 국적 어머니는 그해 한국인 남성과 재혼했다. 불법체류자였던 어머니는 결혼과 동시에 배우자 자격으로 체류 비자를 발급받았다. 한국 생활이 지옥으로 돌변한 건 한 순간이었다. 새 아버지는 어머니의 눈을 피해 윤지의 몸을 만졌다. 유사 성행위를 요구할 때도 있었다. 어머니에게 털어놨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주민등록도 외국인등록도 되어있지 않은 윤지는 새 아버지가 입양해야만 강제출국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수년 간 이어진 성추행을 참다못한 윤지는 학교 담임선생님께 사실대로 고백했다. 새아버지는 지난 1월 13세 미만 미성년자를 추행ㆍ간음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부장 이재석)는 지난달 2일 새아버지 주모 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하고 12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윤지처럼 한국에 살고 있지만 주민등록도 외국인 등록도 안된 18세 미만 아이들을 ‘미등록 이주아동’이라 부른다. 불법체류자의 자녀, 난민신청자의 자녀, 외국인 노동자 자녀가 대부분이다. 이들 대부분은 학대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현행법으로 미등록 이주아동을 학대한 가해자는 아동복지법과 아동학대처벌법 등으로 처벌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피해자가 신고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학대 신고를 받은 수사기관과 아동보호 전문기관 측은 해당 아동이 미등록 상태임을 즉시 알 수 있다. 출입국관리법에서는 공무원이 출입국 사범을 발견했다면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이를 알리도록 하고 있다. 같은 법에 ‘외국인 피해를 우선 구제해야 한다면 출입국관리사무소에 통보하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이 있지만, 일선 공무원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는 미지수다.

학대 신고를 하더라도 미등록 이주아동들이 국내기관의 보호를 받기란 사실상 어렵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15년 12월 31일 기준 서울 시내에는 아동복지시설이 49곳에 불과하다. 하지만 미등록 이주아동이 보호시설에 입소를 신청하면 거부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아동복지시설 입소가 거부되는 대부분 이유는 재정부담 때문이다. 피해아동이 복지시설에 입소하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를 지원받지만 미등록 이주아동은 급여를 지원받을 수 없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사무차장인 이상희 변호사는 “아동복지시설 지원금이 아동 인원수에 따라 책정되지 않고 미리 책정된 예산 안에서 지급돼 시설마다 아동 인원을 늘리기 어렵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보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고도예 기자/yea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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