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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퀴어축제 D-2] “레즈비언인 내 딸, 세상과 힘든 싸움하고 있었구나”
-“딸 정체성 받아들이기까지 6년…이젠 눈물만”
-성소수자 부모모임 50~60명 자녀 아픔 등 공유
-올해도 퀴어축제 참가…부모 ‘프리허그’ 행사도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당신 딸이 이상하다. 아마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내 딸을 괴롭히고 있다. 그러니 전학을 가달라.”

딸이 17세 무렵, 같은 반 학부모로부터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의 날선 목소리가 뽀미(가명ㆍ50ㆍ여) 씨의 폐부를 쿡쿡 찔렀다. 며칠 전 딸이 같이 반 ‘송이’라는 여자 친구에게 보내기 위해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연애편지가 떠올랐다.

“전학가려면 당신들이 가.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앞으로 어떻게 확립되어갈지 모르는데, 당신 딸을 위해 내 딸보고 전학을 가라고 하는 건 폭력이다”

[사진제공=성소수자 부모모임]

그녀는 버럭 화를 내며 쏘아붙였지만 공허한 외침은 메아리가 돼 마음 밑바닥에 가라앉았다. 그녀는 딸이 그저 여자 친구와 우정 싸움을 하고 있노라고, 누구나 겪는 사춘기의 갈등이라고 믿고 싶었다.

딸이 ‘레즈비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딸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 6년이 걸렸다. 2년 전 그녀는 다니던 직장에서 부당한 해고를 당한 뒤 집으로 돌아오며 지하철을 탔다. 늘 정당하고 옳은 일만 해왔다고 믿었는데, 아무도 그녀에게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쇳소리를 내며 규칙적으로 출렁대는 지하철이 차갑게 느껴졌다. 어느 순간 ‘지하철 안의 모든 사람들은 나와 다른 세계에 있고, 나만 동떨어져서 혼자만의 세계에 버려져 있다’는 느낌이 왈칵 몰려왔다.

그날 저녁 뽀미씨는 딸에게 “너는 온통 세상과 싸우고 있는데, 엄마는 그걸 오늘에야 이해했구나. 미안하다”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날 둘은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다.

뽀미 씨는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운영위원이다. 2014년 3월 문을 연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자녀의 성 정체성을 알게 된 부모들이 함께 고민을 나누는 모임이다. 이곳을 찾아온 엄마, 아빠들은 자녀와 부모간의 악화된 관계, 신앙에 대한 갈등, 자녀의 미래 걱정 등을 공유한다.

[사진제공=성소수자 부모모임]

아들이 16살 때 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지인(가명ㆍ47ㆍ여) 씨는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초창기 멤버다. 그녀는 “미국의 어느 부모의 말처럼, 이젠 성소수자 자녀들이 부모가 받아들여줄지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커밍아웃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성애자 아들을 둔 청년미소(가명) 씨도 “아들이 커밍아웃한 이후, ‘진정한 사랑’이란 머리로 이해하고 지지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마음으로 공감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내 자식을 지지하는 것을 너머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위해 행동하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지난해 6월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2016년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해 ‘프리허그’를 진행했다. 당시 ‘엄마는 널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한단다’라는 제목의 영상이 소셜미디어를 타고 조회수 50만건을 넘기면서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됐었다.

오소리(가명) 성소수자 부모모임 운영위원은 “작년 퀴어 문화 축제 동영상이 유명해진 이후 매달 정기 모임을 갖고 있다”며 “퀴어 축제 이전 10~20명이었던 정기 모임 참가자가 이후 50~60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이달 15일 서울광장에서 개최되는 ‘2017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다. 지난해처럼 서울시 중구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오후 3시부터 3시 30분까지 성소수자 부모들이 모여 ‘프리허그’를 진행할 계획이다.

do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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