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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준호 감독, “‘옥자’ 개봉방식, 인디와 다큐 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창구“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 29일 개봉하는 영화 ‘옥자’의 봉준호 감독(48)은 풍성한 체구에 어울릴만한 여유로움이 있다. 영화를 만들 때마다 치열한 전쟁을 벌이지만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멋있다. 심각한 이야기를 해도 유쾌하게, 하지만 그 핵심과 의미를 놓치지 않는 인터뷰는 기자를 즐겁게 했다.

‘옥자’는 영화계와 콘텐츠 유통에 대한 숙제를 던졌다. 미국 온라인 스트리밍업체 넷플릭스가 제작비 전액인 560여억원을 투자해 제작했기 때문에 넷플릭스-극장 동시 개봉 전략을 펼 수밖에 없었고 이 전략은 고스란히 칸영화제와 국내에 논란으로 다가왔다. 결국 CGV 등 대형 멀티플렉스 3사를 제외한 전국 100여개 극장에서 개봉하게 됐다.


“영화에 대한 논란이 많은데, 스토리가 아니라 배급과 기술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아 스포일링은 덜 되고, 화제는 늘어나 좋다. ‘살인의 추억’(2003년)이 백몇십개 관으로 개봉했다. ‘옥자’는 단성사에서 서울관객 100만명을 돌파한 ‘서편제’(1993)처럼 됐으면 좋겠다.”

‘옥자’가 흥행에 어느 정도 성공할지 여부는 중요한 요소다. 봉 감독은 “넷플릭스, 아마존, 아이튠즈 같은 플랫폼이 콘텐츠가 좋고 경로만 잘 타면 국경을 붕괴시킬 수 있는지를 볼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인디와 다큐 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창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욕심이 많은 봉 감독은 큰 화면, 대형 스크린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옥자’도 4k(초고화질) 스크린을 갖춘 대형 스크린이나, 집이라면 대형 TV로 보고, 스마트폰이나 테블릿PC로는 보지 말라고 권한다. 그런데도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은 이유가 궁금했다.

“영화감독은 영화를 완성해야 한다. 그리고 자본의 간섭을 안받는 창작의 자유다. 나는 데뷔할 때도 차승재라는 힘 있는 프로듀서가 있어 내 마음대로 영화를 만들 수 있었고 한국에서 만든 4편 모두 운좋게 모두 디렉터스 컷이었다. 하지만 ‘설국열차’의 북미 배급때에는 힘들었다. 가위손 배급자를 만나 1년 가까이 밀당했다. ‘옥자’는 ‘설국열차’보다 더 많은 500억대 영화로 미국에 노크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감독의 통제하에 두지 않는다. 스타 감독도 제작, 배급업자에 의해 가차없이 편집당한다. 그런데 넷플릭스는 시나리오 그대로 인정해주는 감독 컷을 지원해줬다. 스트리밍업체라 극장개봉에서 아쉬움이 있을 거라는 것은 알았지만 설득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그는 큰 영화를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뉴욕 촬영과 CG 슈퍼돼지가 나오다보니 예산이 커졌다. 영화 완성도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 화제나 숙제를 던지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설국열차도 기차 만드느라 큰 돈이 들어갔다. ‘옥자’도 돼지에 많은 돈이 들어갔다. 기차에 4년, 돼지에 4년으로 지쳤다. 앞으로 두 개 프로젝트가 있는데 둘 다 작은 사이즈다. 차기작은 100% 한국 자본과 스태프로 만들어지는 가족 이야기인 ‘기생충’이다.” 


봉 감독은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의 8배나 되는 ‘옥자’를 만드는 자신이나 박찬욱, 김지운 같은 감독은 해외로 나가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국내의 한정된 영화 자본을 이들 감독들이 차지하는 것은 후배들에게 민폐라는 것. 시장 원리상 500억 이상 들어가는 영화가 아시아 스케일로 만들어지기는 어렵기 때문에 미국으로 간 것은 여러모로 장점이 많다.

‘옥자’는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안서현)와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슈퍼돼지(하마를 닮았다)의 우정을 그렸다.

“동물에 대한 걸 찍고 싶었다. 덩치가 큰데 사랑스럽고 약간 불쌍한 돼지. 나는 ‘TV동물농장’을 즐겨본다. 동물만 나오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 소시민이 얽혀져 있다. 동물과 인간의 자질구레하면서 재밌는 감정이 나온다. 인간에게 동물은 오랜 시간 친구이면서 음식이기도 하다.”

봉 감독은 ‘미자’의 씁쓸한 성장담을 통해 동물과 인간의 친구이면서 음식이기도 한 이중성에 대한 인식을 하자고 했다. 음식으로서의 동물과 가족으로서의 동물을 편의상 분리하는데, 사실은 같은 것이라는 것을 소동을 통해 보여주었다는 것.

“수렵시대에는 열매나 짐승을 직접 잡아 먹었다. 이게 점점 분리됐다. 잠실 메인 스타디움 4~5배 크기인 미국 콜로라도 도살장을 갔다. 파이프라인에서 동물의 모든 부위를 해체, 분리한다. 어셈블이 아니라 디셈블이다. 모두 돈때문에 생겨난 시설이다. 이걸 압축, 요약해 관객에게 보여주고싶었다.”

봉 감독은 육식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다국적 기업이 유전자 조작으로 슈퍼돼지를 만드는 건 자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공장식 축산 환경 오염이 심하다는 이야기도 했다. 미자와 옥자만 정상이고, 그를 둘러싼 인물들이 미쳐있는 듯한 모습도 감독이 던지는 질문이다. 봉 감독은 “육식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줄여나갔으면 좋겠다”고 거듭 말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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