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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멍뚫린 시행 4년차 ‘성년후견제’]고령자가 친족이나 재산 없으면 전문후견인‘무료봉사’에 기대야
# 지난 2015년 1월. 치매 증상을 보이던 A씨(당시 84세)가 갑자기 사라졌다. 지적 장애를 앓던 아들 B(당시 55세) 씨의 행적도 묘연했다. A씨 부자의 실종을 미심쩍게 여긴 이웃주민은 A씨의 딸과 그 남자친구를 경찰에 고발했다. A씨는 그해 2월 요양원에서, B씨는 정신병원에서 발견됐다. 경찰조사결과 A씨의 딸은 아버지와 동생을 입원시킨뒤, 이들 명의로 돼있던 30억 원 상당 건물 두 채를 처분해 돈을 꺼내 쓴 것으로 드러났다. 이웃 주민은 “A씨 부자의 성년후견인을 선임해달라”며 검찰에 요청했고, 검사는 이들 부자에 대한 성년후견 심판을 법원에 청구했다. 검사가 최초로 성년후견 심판을 청구한 사례로 꼽힌다.

A씨와 같은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사법복지’의 하나로 성년후견 제도가 2013년 도입됐다. 질병이나 고령으로 판단력이 흐려진 이들을 대신해 법원이 재산관리나 치료를 돕는 후견인을 선임하는 제도다.

후견인 역할을 할 친족이 있거나, 전문 후견인을 선임할 재산이 있다면 성년후견 제도의 보호를 받는데 문제가 없다. 친족이 후견인이 된다면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사회복지사나 법인 등 전문가가 후견인으로 지정된다면 피후견인의 재산에서 매달 일정 보수를 지급받게 돼있다. 그러나 돌봐줄 친족이 마땅찮고, 후견인에 보수를 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제도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 이같은 제도의 구멍을 일부 전문 후견인들이 ‘무료봉사’로 틀어막고 있는 실정이다.

수십 억대 자산가였던 A씨 부자 역시 무료후견에 기댈 수 밖에 없었다. 성년후견이 개시될 당시 A씨 부자의 수중에는 단돈 만 원도 없었다. 딸이 갈취한 A씨의 재산을 돌려받으려면 소송을 해야했다. 소송을 하려면 법적 후견인이 필요했다.

재판장은 고육지책으로 다수의 성년후견 사건을 맡았던 송인규(법무법인 정원) 변호사에게 “무료 후견을 해달라”며 전화를 걸었다. 송 변호사는 이를 받아들여 임시로 무료 후견에 나섰지만 그해 12월 A씨는 숨졌다.

A씨의 사례 뿐만 아니다. 서울가정법원이 지난해 5월 열린 전문가 후견인 간담회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사에 응한 전문가 후견인 95명 가운데 ‘보수를 받고 있다’고 응답한 후견인은 8명에 그쳤다.

성년후견을 맡고 있는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후견인 선임이 필요하면 법원 입장에서는 기각을 할 수가 없다며 결국 무보수로 해달라고 요청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보수를 지급받을 수 있는 사건 1개와 무보수 사건 1개를 패키지로 묶어 수임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 후견인의 희생에 기대 제도를 운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령화와 맞물려 매해 성년후견 사건이 빠르게 늘어나는 탓이다. 대법원은 전국 법원에 접수된 성년후견 심판 청구 사건이 제도시행 2년 차인 지난 2014년 1968건에서 지난해 3709건으로 1.88배 늘었다고 집계하고 있다. 성년후견 사건 특성상 한번 시작되면 피후견인이 사망하거나 건강상태가 회복될 때까지 지속되기 때문에 사건은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사회복지법인 성민성년후견지원센터의 윤선희 센터장은 “현재로서는 민간법인들이 후견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무료봉사로라도 후견 사무를 지원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라며 “고령화 시대를 맞아 성년후견 사건이 늘어나는 만큼 전문후견 업무를 할 수 있는 기관들이 확대될 수 있도록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저소득층 발달장애인에 대해 시행되고 있는 공공후견지원제도가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5년부터 전국 가구 평균소득의 150% 이하인 발달장애인에 대해 후견심판 청구비용과 공공후견인 활동비 10여만 원을 지원하는 ‘공공후견지원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김성우 서울가정법원 판사는 ‘성년후견제도의 현황과 과제’라는 발표문에서 “이같은 공공후견제도를 확충해 일반적인 후견 유형에도 모두 사용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며 “공익법인등을 만들어 법원의 후견인 후보자로 등록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고도예 기자/yea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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