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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남역 살인 1년②]정신질환자 1만9000명 사회복귀 임박…치료도울 시스템은 태부족
-정신보건법 개정…퇴원환자 급증 예상
-적절한 치료 없으면 증상 악화 우려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오는 17일은 ‘강남역 살인 사건’ 이 일어난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서울 서초구의 한 화장실에서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살해한 김모(35) 씨가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후 정신질환자의 범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이들에 대한 관리 강화의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오는 30일부터 개정된 정신보건법이 시행되면서 기존에 시설에 입원해 있던 환자들이 퇴원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들의 사회복귀를 도울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해 오히려 이들을 치료 사각지대로 내모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입원 치료를 받을 만한 정신질환자가 아님에도 보호의무자의 동의만 있으면 강제 입원이 가능하다는 비판이 일자 사법부는 2014년 2월 이 법률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고 헌법재판소는 2016년 4월 공개변론을 열어 각계의 의견을 청취했다. 

조현병 환자가 서울 강남역의 한 화장실에서 여성을 살해한 강남역 살인사건은 정신질환자의 관리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개정 정신보건법 시행으로 최대 1만9000명이 퇴원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투자 부족으로 이들의 사회복귀와 치료를 지원할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 해 5월 24일 진행된 강남역 살인사건 현장 검증 장면. [헤럴드경제 DB]

이 과정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정신질환자의 범위를 중증 정신질환자로 축소하고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시 입원 요건과 절차를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한 개정안을 통과시켜 오는 30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개정 법률안이 시행되면 보호의무자의 동의를 받아 입원했더라도 환자가 퇴원을 신청할 경우 정신의료기관은 지체없이 퇴원시켜야 하고 보호의무자의 동의가 없는 퇴원 신청에 대해서는 72시간까지만 퇴원을 거부할 수 있게 된다. 치료를 위한 입원의 경우 서로 다른 정신의료기관에 소속된 2명 이상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공히 필요성을 인정할 때 가능하다.

관련 학계는 법률안이 시행되면 중증 정신질환자 중 최대 1만3500여명, 알코올 중독자 중 5600여명이 퇴원해 1만 9000여명이 사회로 복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사회로 복귀한 이후에도 지속적인 치료를 받고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도울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2016년 정신보건사업안내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전체 정신보건시설 2068개 중 정신의료기관은 68.3%인 1402개이다. 이중 98.8%는 민간의료기관이다. 반면 사회 안에서 시민들의 정신 건강을 보살필 정신보건센터는 224개, 퇴원 환자의 사회복귀를 돕는 사회복귀시설은 333개에 불과하다. 이들 정원은 등록장애인의 7%에 불과한 형편인데다가 수도권에 절반 이상이 집중돼 있어 지역에 거주하는 환자들은 제한적으로만 이용할 수 있다. 이곳의 인력 역시 질적이나 양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총959명의 상근 전문인력이 한 명당 80명이 환자를 돌보는데 한 명당 30명인 선진국에 크게 못미친다. 게다가 상담과 행정업무를 모두 떠맡고 있어 제대로된 상담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같은 문제는 국가가 시민들의 정신건강 관리에 대해 적극적인 투자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2014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정신질환 예산은 1인당 44.8달러로 미국의 272.8 달러의 1/6 수준에 불과하다.

김현정 국립중앙의료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정신질환자 치료를 입원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하자는 ‘탈원화’는 미국 등 선진국에선 1960년대부터 시작된 것”이라면서도 “이는 퇴원 환자들의 사회복귀를 지원하는 시스템과 이들을 낙오자로 낙인찍지 않는 사회 인식이 마련됐을 때 가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신질환으로 치료 받은 전력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 차별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입원 치료의 결정권을 전적으로 환자에게 맡길 경우 환자들이 적기에 치료를 받기 어렵고 이는 증상의 악화는 물론 강남역 살인 사건과 같은 범죄 증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일부 극단적으로 벌어지는 강제 입원 사례를 잡기 위해 시스템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환자들을 병원에서 내보내면 오랜 기간 입원해 있던 환자들에게는 더 큰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며 “예후가 극적으로 악화되는 시기에는 입원을 용이하게 하고 이후 평가를 통해 퇴원한 환자가 사회에 정착할 수 있는 시스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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