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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구속] ‘미결수용자 박근혜’, 영애에서 영어의 몸으로
-최태민ㆍ최순실과의 악연으로 추락
-대통령의 딸ㆍ선거의 여왕 반전 힘들 듯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31일 끝내 구속됐다. 헌법재판소가 파면 선고를 내린 지 21일만이다.

‘자연인 박근혜’는 전직 대통령에서 서울구치소 미결수용자로 또 한번 신분이 바뀌었다.

박 전 대통령의 삶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애로 18년, 야인시절 18년, 그리고 작년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으로 정치적 식물인간이 되기 전까지 18년간 정치역정을 거치는 동안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을 꿰뚫는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사진제공=연합뉴스]

그의 삶은 아버지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퍼스트레이디 대행’, ‘부녀 대통령’ 등 그를 대표하는 표현은 모두 아버지와의 인연을 바탕으로 한다.

그에게 처음 붙은 수식어인 ‘영애’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대통령의 딸 시절에도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대학시절과 겹친 ‘10월 유신’은 그를 외톨이로 몰았다. 아버지 박정희와 어머니 육영수 모두 총탄에 잃은 것도 대통령의 딸이었기 때문에 당한 비극이었다.

1979년 청와대에서 첫 번째로 쫓겨난 뒤에는 스스로 “밑바닥까지 경험했다”, “벼랑 끝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고 토로할 만큼 힘겨운 시절을 보냈다.

여동생 박근령과의 육영재단을 둘러싼 갈등도 이때의 일이다.

박 전 대통령은 1997년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요청에 응해 정계입문하면서 인생 3막을 열었다. 이후 5선 국회의원과 당대표, 대선주자를 거치며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 ‘선거의 여왕’이란 타이틀을 얻었다.

선거의 여왕은 2012년 제18대 대선에서도 승리하면서 마침내 33년만에 화려하게 청와대로 귀환했다.

‘대통령 박근혜’는 집권 4년차 후반기까지 레임덕 없는 대통령으로서 강한 국정장악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주변을 배회하던 최태민ㆍ최순실 부녀와의 악연이란 유령은 결국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작년 10월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이 불거진 이후 서울 도심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는 주말마다 87년 6월 항쟁 이후 최대 규모의 촛불집회가 계속됐다.

이러한 촛불민심은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특별검사팀 수사, 헌법재판소 파면, 검찰 구속영장 신청, 그리고 법원 구속영장 발부로 이어졌다.

어려웠을 때 도와줬던 인연 때문에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췄다고 표현했던 40년 지기 최순실 씨와의 악연이 신체의 자유마저 박탈되는 최악의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지난 3월10일 청와대에서 두 번째로 쫓겨날 때 “시간은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했지만, 영어의 몸이 되면서 ‘불행한 대통령’ 명단에 이름을 추가하게 됐다.

65세의 적지 않은 나이와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으로 입은 상처를 생각해볼 때 그가 또다른 반전드라마를 연출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신대원 기자 /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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