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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선동과 집단지성이 만나는 선거판
‘집단지성’ 2008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광우병 사태’ 당시 유명해진 단어다. 광우병을 이유로 수입이 중단됐던 미국산 소고기의 재 수입이 결정되자, 많은 네티즌들은 자신의 집 컴퓨터 앞에 앉아 수 많은 정보를 주고받으며 토론을 펼쳤다. 이 가운데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또는 이미 용도폐기된 십여년 전 자료를 바탕으로 ‘미국산 소고기는 광우병때문에 여전히 위험하다’고 결론내린 이들은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격렬한 반 정부 투쟁을 펼쳤다.

그리고 10년이 흐른 지금, 어느 누구도 광우병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당시 진리라고 믿었던 것 상당수는 ‘허위’ 또는 ‘사실무근’이 됐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검증과 확인이 빠진 일반인 다수의 집단지성, 여기에 정치적 선동이 맞물렸을 때, 어떤 광기가 나타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회학과 정치학의 좋은 사례로만 남을 뿐이다.

집단지성은 20세기 초 개미 떼를 관찰하던 윌리엄 모턴 휠러라는 곤충학자가 처음으로 사용한 단어다. 개체로는 미미한 개미지만 공동체로 협업해 거대한 개미집을 만드는 과정을 관찰하며, 군집하면 높은 지능체계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 “특정 조건에서 집단은 집단 내부의 가장 우수한 개체보다 지능적”이라는 것이다. 몇몇 전문가들이 모여 수년동안 만든 백과사전에서 종종 오류를 찾을 수 있지만, 불특정 다수가 만들어가는 인터넷 백과사전에서는 오류가 수시로 고쳐지고, 또 새로운 지식이 업데이트 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집단지성이 항상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특히 고도의 전문지식이 필요한 영역일 수록, 집단지성은 분명한 한계를 드러내곤 한다. 그래서 전문가의 권위는 여전히 인정받고, 또 집단을 이끄는 리더나 권력도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는 집단지성이 유행하면서, 전문가와 리더의 힘을 무시하는 경향도 늘어나는 점이다. 어설프게 논문이나 외신 한두편 읽은 집단들이 모여, 광우병이 통제 가능한 질병이라고 증명한 의학, 수의학, 약학 전문가들의 말을 무시하고, 심지어 어용이라며 비판했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무시되는 전문성은 이후 천안함 폭침이나 세월호 참사 원인 논란 등에서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대선이라는 큰 정치 이벤트를 코 앞에 둔 요즘의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 모습이다. 대선 주자들은 대중들이 원하는 다양한 반기업 공약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모순된 공약을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 교육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모두가 공부 안하는 교실을 만드는 공약도 서슴치 않는다.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며, 재개발, 재건축 같은 공급을 틀어막겠다는 모순도 불사한다.

대중은 진짜 진실 보다는 내가 원하는 진실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정치적, 이념적인 선동이 더해지면 이런 경향은 더욱 뚜렸해진다. 발전과 진보는 때로는 집단지성이 아닌, 한 사람의 천재와 전문가가 만들기도 한다는 진리도 집단지성의 순작용에 대한 믿음과 함께 잊지 말아야 할 때다.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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