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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丁의 의사봉, 역사의 변곡점을 찍다
6선 국회의장 정세균, 탄핵소추안 가결 이어 개헌 눈앞의 과제…“곳곳이‘절벽’인 한국사회 소통·통합의 길로 가야”

46cm의 수입목. 그저 나뭇조각에 불과하지만, 여기서 울리는 세 차례 소리에 전국이 요동친다. “땅”, 본회의장이 들썩인다. “땅”, 국민이 주목한다. “땅”, 역사가 기록한다. 국회의장의 의사봉은 꼭 ‘망치’ 같다. 이 결정이 마치 망치질의 못처럼 단단히 박혀 있음을 외치는 듯하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의사봉을 들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그의 손으로 가결시켰다. 그리고 또 의사봉을 들려 한다. 이번엔 제7공화국 시대를 열 개헌이다. 불운인지 행운인지, 2년이라는 짧다면 짧은 국회의장 임기 동안 정 의장은 유독 일이 많다. 그냥 일도 아닌, 한국사에 유례없는 일들이 몰아친다. 대통령이 탄핵됐고 조기대선이 열리며 개헌 논의가 무르익었다. 정 의장은 역사에 어떤 수식어를 남기게 될까.

인터뷰를 위해 국회의장 접견실에 들어선 순간, 거대한 병풍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서 보니, 그저 화려한 병풍만이 아녔다. 병풍 속엔 헌법 전문이 한 자 한 자 빼곡히 새겨 있다. 정 의장 지역구에 거주하는 임옥상 화백이 기증했다고 한다. 국회의장으로서 헌법 정신을 수호해달란 부탁도 함께 전해들었다. 정 의장은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 내내 수차례 “헌법 정신을 구현, 입법부의 위상을 확실히 찾겠다”는 말을 강조했다. 헌법 전문을 새겨 놓은 이 병풍처럼 말이다. 다음은 정 의장과의 일문일답. 



▶대통령 탄핵이란 유례 없는 일을 겪었다. 국회의장으로서도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다 = 아주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느낌이었다. 사실 국민에게 면목없는 게 가장 큰일이었다. 특정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권 전체가 성찰해야 할 상황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국회나 헌법재판소가 더 많은 국민이 생각하는 뜻을 받들어 다행스럽다. 새롭게 출발하는 전기가 마련됐다는 건 불행 중 다행이다.

▶지난 10개월 임기 기간에 난제가 많았는데 앞으론 어떻게 정국을 전망하는지? = 국회의장을 이제 10개월 했는데 마치 몇 년 한 것 같다(웃음). 현재 직면한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정치권이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국가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을 면하기 어렵다.

경제, 외교, 안보 모두가 ‘절벽’이다. 당장 ‘인구절벽’부터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 사회 모두가 총체적으로 지혜를 모으고 도전해야 하는데, 그걸 선도할 책임을 국회가 져야 한다.

▶구체적인 방법이 있다면? = 우선 통합의 길로 가야 한다. 다들 힘을 모아 새로운 정부를 잘 출범시켜야 한다. 옛날 선거는 ‘네거티브’가 판을 치는 선거였다.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상처가 아물지 않은 국민이다. 다시 그런 싸움을 보이는 건 국민이 정치에 희망을 버리게 하는 일이다. 이번 대선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다. 국민이 좌절을 딛고 새롭게 희망을 만들어가는 귀한 과정이 돼야 한다. 역대 대선보다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판결 불복 논란이 있다. 어떻게 평가하나? = 하루빨리 박 전 대통령이 승복할 것은 승복하고 유감이나 사과든 국민에게 할 말이 있다면 이를 표현해야 한다. 스스로 누차 얘기했듯 법 앞에 평등한 만큼 제대로 수사 받고 겸허하게 법과 질서에 순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박근혜 시대’에 붙들려 있으면 안 된다. 국민이 이제 벗어나서 새롭게 나갈 수 있도록 박 전 대통령도 협조해야 한다. 이미 박 전 대통령은 국민에 빚을 지고 누를 끼친 분이다. 박 전 대통령 구속 여부는 정치권이 나서서 할 얘기는 아니다. 검찰이나 법원에서 할 일이다. 누구나 법과 원칙에 따라 평등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다.

▶국회의장 취임 이후 어떤 목표를 세웠고 현재 어떻게 진행 중인지? = 국회가 국민에게 짐이 아닌 힘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입법 성과도 계량적으로 보면 19대 국회보다 2배 더 많다. 다만 질적으로 보면 어려운 과제를 미뤄둔 느낌도 있다. 그래도 적지 않은 성과가 있다고 자부한다. 국회 환경미화원의 정규직화을 이뤘고, 누리과정 갈등도 여야정 대타협을 통해 해결했다. 여야 합의로 예산안을 법적 기한 내에 처리하고,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를 통해 국민과 가까이 가려 했다.

특히 특권 내려놓기는 거의 다 법제화됐고 곧 완결될 것이다. 특권내려놓기 추진위원회에는 정치인이 1명도 참여하지 않았다. 독립적ㆍ중립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다.

또, 헌법정신을 구현하겠다. 입법부 위상을 확실히 찾겠다는 것이다. 국회의장 입장에서 하고 싶은 말은 한다. 사드를 예로 든다면, 왜 제대로 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불필요하게 갈등을 키우는지,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왜 가래로 막게 하는지 민주적 절차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지금 와서 보면 다 맞는 말이 아닌가. 국회는 청와대 눈치를 보는 기관이 아니다. 입법부로서의 위상을 분명히 하겠다.

국회의장의 중립성은 의사진행의 중립성이다. 선거 등 극도로 민감한 정치적 사안에 관여하지 않는 것일 뿐 국가적 과제나 중요한 현안에서 입법부 수장은 당연히 의견을 갖고 있어야 한다. 또 필요하면 그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일에 주저하지 않겠다.

미래를 준비하는 국회도 만들겠다. 한국이 너무 단기주의에 매달리고 있다. 대통령이 매달 평가에 매달리고 기업도 분기 결산에 매달린다. 중장기적으로 국가 백년대계를 고민하는 기관이 없다. 국회가 이를 해야 한다. 지금 미래연구원 같은 조직을 추진하고 있다. 민간연구기관까지 함께 참여하는 네트워크로, 국회만이라도 국가 미래를 준비해보자는 취지다.

▶사드 국회 비준 요구는 어떻게 풀어갈 생각인지? = 사드가 국익과 굉장히 긴밀하게 연계돼 있다. 그러면 국회 비준을 거치지 말라고 해도 먼저 국회와 의논해야 하는 사안이다. 왜 정부가 혼자 감당하려 하나. 관련 법을 보더라도 국민에 재정적 부담이 있다면 국회를 거치게 돼 있다. 국민 부담이 없는 무기를 들여오는 게 아니라 1000억원 가량 비용이 소요된다면 당연히 국회와 얘기해야 한다. 다만, 문제는 정부가 저런 식으로 일방통행할 때 국회가 이를 효율적으로 제어할 방도가 없다는 점이다. 한미관계도 고려해야 하고, 현재로선 고민이 크다.

▶국회선진화법 개정 여부가 재차 주목받고 있다. 개정이 필요하나? = 국회선진화법은 ‘동물국회’를 ‘식물국회’로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리가 지향하는 국회는 ‘정상국회’다. 국회선진화법 하에서 정상국회는 참 어려울 것 같다. 그냥 식물국회로 살 것인지, 정상국회를 지향할 것인지 국회 구성원이 판단할 문제다. 선진화법을 폐기하자는 게 아니라 좀 손봐서 쓰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직권상정만 해도 권한을 너무 협소하게 규정해놨다. 국회의장이 옴짝달싹할 수 없다. 이미 국회선진화법을 5년가량 시행했으니 성적표를 잘 검토하면 무엇을 손봐야 할지 나올 것이다.

▶개헌이 화두다. 시기나 방식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 개헌을 국회의장 취임과 함께 꺼내 들었고 개헌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늦어도 내년 지방선거까진 개헌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 대선 전 개헌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정상적으로 추진해도 시간이 부족하다. 빨리하면 좋겠다는 희망은 있지만, 현실적으로 대선 전 개헌은 안 된다.

▶대선주자로도 거론됐는데, 국회의장으로 결심한 계기가 무엇이었나? = 사실 진보진영에선 대통령보다 국회의장 되는 게 더 힘들다. 국회 내 다수파가 돼야만 하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만들어졌다. 국회의장을 하면 입법부의 위상을 강화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회주의자로서 이 일을 해야겠다고 선택했다. 의장으로서 할 말은 하겠다는 것 역시 이런 내 목표의식의 발로다.

▶촛불집회를 계기로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 기본적으로 현대사회 국가는 대의민주주의가 기본이다. 국민발안권 등도 충분히 제도화할 만하다. 꼭 대의민주주의가 실패할 때에만 고민할 게 아니라 평소에도 이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국회선진화법에 막힌 입법 교착사태를 시민이 나서서 법안을 발의할 수도 있는 거다.

▶차기 지도자는 어떤 덕목이 필요하다고 보나? = 절벽을 어떻게 돌파할지 비전과 철학이 있어야 한다. 비전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국민, 국회, 나아가 시민사회와 잘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 다.

이형석ㆍ김상수 기자/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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