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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거불패‘세균맨’…한결같은 행보‘소리없이 강했다’
95년 샐리리맨서 정치인 변신
15대 총선부터 내리 6선 기록이다.


“좋지요. 많이 익숙해졌어요. 지금까지는 정국 분위기 때문에 사람들을 많이 초청하지 않았는데, 이제 활발하게 할 작정이에요.”

정세균 국회의장이 말한, 10개월째의 서울 한남동 관저생활이다. “관저에선 잠만 자는 거지요”라며 즐길 새 없었던, 10년같았던 10개월여의 의장업무를 한마디로 표현했다. 그래도 “인근에 낮은 봉우리가 있어서 주말엔 동네 친구들과, 평일에는 가끔 혼자서 산책도 한다”고 했다. 이어 “아파트 생활만 하다가 정원도 있는 넓은 저택에 살려니 내가 세금을 많이 쓰고 있구나, 밥값을 해야지라고 늘 생각한다”고 했다. 


순하지만 ‘맥’(脈)을 품은 ‘낮은 봉우리’. 정 의장과 참 잘 어울리는 말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 의장은 부드럽고 온화한 성품으로 정치권에서 적이 없다는 평을 듣는다. ‘신사’, ‘미스터 스마일’이라는 애칭이 줄곧 따라다녔다. 이름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세균맨’이라는 별명도 얻었는데, 이것이 일본산 캐릭터라는 얘기가 나오자 정 의장의 웃음을 닮은 ‘루피’라는 인형이 의장실에 ‘입양’되기도 했다. 지금도 정 의장의 의장실 책상 위엔 두 인형이 나란히 놓여 있다. 정 의장의 친화력과 대중적 호감도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예다.

하지만 정 의장의 삶과 정치인생은 ‘맥’이 뒤틀림없이 뚜렷했다. 그래서 그를 일러 “소리없이 강한 정치인” “외유내강형”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대학(고려대 법학) 재학 시절 반유신투쟁과 총학생회장활동, 패배 없었던 6선 국회의원, 한결같았던 정당정치가 방증이다.

정 의장은 잘 알려진 것처럼 샐러리맨 출신의 정치인이다. 대학 졸업 후 1978년 쌍용그룹에 입사해 종합상사 미국 주재원으로 일했다. 쌍용그룹 상무이사 재직 중이던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당시 새청년국민회의 총재)에 의해 특별보좌관으로 발탁돼 정치계에 발을 들였다.

“당시 막 세계화 바람이 불었죠. 글로벌 경영마인드하면 기업인 아닙니까. 저야 학창시절엔 학생운동하고, 기업 출신인데다 해외에서도 오래 근무했으니 딱 맞는 사람이었죠.”

정 의장의 회상이다. 이듬해인 1996년 치러진 15대 총선부터 이번 20대까지 정 의장은 내리 6선을 했다. 첫 4선은 모두 고향에서 출마했고, 제 19~20대는 야당의 ‘객관적 열세지역’으로 꼽히던 종로에서 당선됐다. 패배도 없었지만 득표율도 첫 4선은 65~78%대, 종로에선 두번 다 52%대로 압도적이었다. 당명은 바뀌었지만 당적은 한번도 바꾼 적이 없었다. 한국 정치사에서는 흔치 않은 기록이다.

통합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009년엔 한나라당 미디어법 강행처리에 반발해 의원직 사퇴서를 내기도 했고, 2010년 재보궐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원칙을 지키지만 사람 내치는 법이 없고, ‘나섬과 물러섬’도 확실한 정치인으로 꼽히는 이유다. 정 의장은 20대 국회 들어서도 유력한 대선주자로도 꼽혀왔으나 결국 국회의장직을 맡았다.

“우리(범민주) 진영에선 국회의장 하기가 대통령보다 더 힘듭니다. 의회 다수파가 아니면 국회의장은 생각도 못합니다. 20대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된 후 고민 많이했죠. 그러다가 의회주의자로서 국회의장으로 결정을 했습니다. ”

그렇게 정의장은 13년전 대통령 탄핵안을 막기 위해 앉았던 의장석에서 탄핵안을 가결하는 의사봉을 내려치게 됐다.

이형석ㆍ김상수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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