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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석의 영화X정치]‘엄한 아버지’는 보수, ‘자상한 부모’는 진보?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2014년작인 영화 ‘보이후드’는 6살 무렵부터 18살까지 한 소년의 성장과정과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허구의 드라마이지만, 같은 주연 배우를 써서 실제로 12년간 찍었다. 2002년부터 2013년까지 매년 몇 주씩 촬영을 해 완성한 것이다. 2014년 제64회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감독상)을 비롯해 각종 영화제ㆍ시상식에서 상을 받았고, 평단으로부터도 만장일치에 가까운 호평을 이끌어냈다.

소년 메이슨 주니어(엘라 콜트레인 분)는 누나 사만다(로렐라이 링클레이터 분), 어머니 올리비아(패트리샤 아케이트)와 살고 있다. 어머니는 이혼한 ‘싱글맘’이다. 음악을 하며 자유롭게 살고 있는 친아버지 메이슨 시니어(에단 호크 분)은 일주일에 한번씩 메이슨과 사만다와 시간을 보낸다. 어머니인 올리비아는 대학 공부를 계속하며 강사, 교수로 자신의 꿈을 펼쳐간다. 부부가 이혼한 이유는 쉽게 짐작이 된다. 아이들 아버지인 메이슨 시니어는 변변하고 안정된 직업이 없다. 부와 야망보다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며 사는 ‘자유인’이다. 아이들이 몇 살이되든 친구처럼 격의없이 지낸다.

영화는 싱글맘 슬하에서 자라는 한 소년의 정신과 정서, 육체의 변화 과정을 섬세하고, 극적이며, 현실감 넘치게 포착했다. 특별하다할 것 없는 일상의 사소한 사건들을 통해 한 소년이 느끼는 감정의 변화를 스크린 밖으로 전했다. 


▶권위적인 의붓아버지 VS 자유분방한 친아버지

이 소년은 18살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두 의붓아버지를 겪는다. 어머니 올리비아가 아이들의 생부와 헤어져서도 다시 두번의 재혼을 하고 이혼을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두 의붓아버지와 친아버지와의 대조적인 성격이다.

소년의 첫번째 계부는 어머니 올리비아가 대학에서 만난 교수 빌이다. 처음에는 아이들과 잘 지내는 듯 하지만, 2~3년이 지나서는 아이들을 지나치게 통제하는 권위주의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알콜 중독에 상습 폭력까지 이어진다.

두번째 의붓아버지는 어머니가 교수가 된 후 만난 퇴역군인 출신의 학생이었다. 그 역시 소년의 자유로운 감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머리모양부터 옷매무새, 귀가시간까지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다. 그도 역시 폭력적인 성격을 드러내 결국 부부는 헤어진다.

반면, 소년의 친아버지 메이슨 시니어는 아이들과 성이나 연애 이야기까지 가감없이 나눌 정도로 개방적이다. 영화는 소년이 성장하는 대로 2002년초부터 2013년까지의 시대상을 다양한 장치로 담아냈는데, 예를 들어 닌텐도류의 휴대용 게임기부터 아이폰까지 진화하는 소년의 전자기기가 그렇다. 시대에 따른 유행 영화나 히트곡들도 다양하게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재미있는 것이 지금은 전 대통령이 된 버락 오바마의 첫 대선인 2008년 당시의 에피소드다. 여기서 소년의 친아버지 메이슨 시니어는 일주일에 하루 아이들과 만나는 날에 남매와 함께 차를 타고 오바마의 선거 홍보물을 돌린다. 어린 남매도 가가호호 다니며 어른들에게 오바마 지지를 호소한다. 심지어 메이슨 시니어는 아이들에게 오바마의 상대 후보인 공화당 대선후보 존 매케인의 설치홍보물을 몰래 훔쳐오도록 시키기도 한다. 굳이 감독은 왜 아이들의 친아버지가 오바마의 선거 홍보를 돕는 에피소드를 구상해 영화 속에 넣었을까?


▶‘엄격한 아버지’는 공화당, ‘자상한 부모’는 민주당

흥미로운 것은 또 있다. 아이들의 어머니 올리비아는 두 번의 재혼을 하는데, 두명의 새 남편은 모두 대저택의 소유자들이다. 또 두 남자 모두 권위주의적 성격에 폭력과 알콜중독 성향을 갖고 있었다. 두번째 재혼 상대자는 이라크 파병군 출신으로 설정돼 있는데 영화 내내 군복을 입고 나온다. 두번째 재혼 남편은 결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집이 문제가 돼 아내와의 불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이처럼 소년의 의붓아버지와 친아버지는 전혀 상반된 유형이다. 의붓아버지들은 경제적 능력이 있는 대신 엄격한 ‘권위주의형’이다. 반면, 친아버지는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자상한 성격이다. 정치적으로 읽자면 전자는 공화당, 후자는 민주당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실제로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미국의 보수-진보 정치세력이 사용하는 언어와 담론을 분석해 공화당은 ‘엄격한 아버지’, 민주당은 ‘자상한 부모’ 모델에 입각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를 담은 책이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다.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이론’의 주창자로 특정한 정치담론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뇌에 특정한 ‘회로’가 생겨 이것이 보수, 진보의 세계관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대중들이 가지는 정치적 입장은 논리적이거나 심리적인 원인보다는 뇌의 물질적인 작동에 의해 생기는 결과라는 것이다.

‘엄격한 아버지’ 모델은 ▷아버지는 험한 세상으로부터 가정을 보호한다 ▷살기 힘든 세상에서 가족을 부양한다 ▷자녀들에게 옳고 그름을 제대로 가르친다는 믿음에 기초해 있다. 이로부터 공화당의 경제, 교육, 대외정책의 담론이 형성된다. ‘건국의 아버지’ ‘미국의 딸’ 등도 이들이 자주 쓰는 표현이다.

반면, ‘자상한 부모’ 모형은 성별 중립적이며 ‘보살핌’이라는 역할에 기초해 있다. 조지 레이코프는 ‘보살핌’이란 ▷보살피는 대상, 즉 자녀들에 대한 감정이입 ▷자신과 타인에 대한 책임 ▷가정, 공동체, 국가, 세계를 위한 헌신 등을 의미한다. 이로부터 민주당이 구사하는 경제, 복지, 대외정책 등의 담론이 구성된다.

조지 레이코프는 진보주의자의 시각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이 구사하는 담론 전략을 분석했지만, 미국의 정치담론의 특징을 ‘가정’ 모형으로 두고, 공화ㆍ민주 양당의 모델을 엄격한 아버지와 자상한 부모로 유형화한 것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는 어떨까. 미국과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을 것이다. 더 상세한 분석이 필요한 일이긴 하다. 다만 분명한 건 광장에 촛불과 태극기를 들고 나온 이들은 각각 국가와 정치지도자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을 머리 속에 담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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