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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핵인용] 아버지는 ‘총탄’으로, 딸은 ‘탄핵’으로 물러나다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 비극의 정치인생이 대를 이어 되풀이됐다. 아버지는 ‘총탄’으로 딸은 ‘탄핵’으로 최고 권좌에서 물러났다.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났다.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으로 물러난 대통령이 됐다. 임기 시작 1841일만이다.

이로써 아버지의 후광으로 정치계에 발을 딛고, 성공적인 경력으로 최고 권력까지 오르며 역시 헌정 사상 최초의 부녀 대통령의 영광을 이뤘던 박 전 대통령은 정치인생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비극을 안게 됐다. 


어머니인 육영수여사가 암살자의 총탄에 쓰러진 것이 지난 1974년 8월 15일,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된 것이 1979년 10월 26일이다. 이후 37여년만에 딸은 최초의 탄핵 대통령이라는 불명예 속에 권좌에서 내려오게 됐다.

박 전 대통령의 인생과 정치가 아버지와는 뗄 수 없는 것이었다. 영광과 오욕이 모두 그 속에 있었다. 결국은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대를 이어 비극적인 정치인생을 반복하게 된 원인으로 꼽힌다.

영애(令愛)에서 퍼스트레이디 대리, 국회의원을 거쳐 최고권좌인 대통령까지 오른 ‘정치인 박근혜’의 인생은 아버지와 그 지지자들이 구축한 ‘신화’로부터 끝까지 자유롭지 못했다. 어머니 고(故) 육영수 여사의 ‘국모’ 이미지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지배했고,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개발 신화’에 대한 강력한 향수가 정치와 통치 행위를 옭아맸다. 청와대에서 보낸 20대 시절 양 부모를 총탄에 잃은 비극적인 딸은 정치를 충성과 배신이라는 이분법의 언어로 이해했다. 인사는 공사(公私) 없이 김기춘ㆍ최태민ㆍ최순실 등 선친대로부터 내려온 인맥에 고착됐다. 경제정책은 ‘새마을 운동’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한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60~70년대 성장 신화의 재현에 바쳐졌다. ‘관 주도의 동원체제’와 ‘정경 유착’이 그 이면이었다. 남북관계는 ‘대치’일로였고, 언론과 교육은 ‘통제와 관리’의 대상이 됐다.

헌재의 탄핵 인용 사유 중 가장 중심에 놓인 ‘최순실 국정농단’에 아버지대로부터 내려온 사연(私緣)이 있었다. 최서원(최순실)씨는 아버지의 지인인 최태민씨의 딸이었다.박정희 정부 시대 최태민씨로부터 내려온 사연을 공식 통치행위에 동원한 것이 결국 탄핵의 근본적인 사유가 됐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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