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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핵심판 '운명의 날'] “탄핵인용 땐 헌재 불바다”…끝까지 과격한 태극기집회
-선고 당일까지 “관공서 불 질러야” 과격 발언
-집회 초반 평화 기조 사라지고 분노만 남아
-전문가 “폭력 양상이 오히려 반감 불러와”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92일. 태극기는 헌재의 탄핵정국 내내 탄핵 반대의 상징처럼 쓰였다. 그러나 탄기국을 비롯한 탄핵 반대 세력의 과격한 행동은 탄핵 선고 당일까지 계속되며 비난을 받았다.

탄핵심판 선고를 하루 앞둔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살벌했다. 대통령탄핵기각을위한국민총궐기본부(탄기국)을 비롯한 탄핵 반대 단체들은 선고 막판 세를 과시하며 과격 발언을 쏟아냈고, 경찰도 120개 중대와 경찰버스 360대를 동원해 통제에 나섰다. 

[사진설명=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집회 참가자들은 헌재의 탄핵 선고가 예고된 10일 오전까지 1박 2일 노숙 투쟁을 벌이며 막판 세 과시에 나섰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일부 참가자들의 과격한 행동으로 소란을 빚기도 했다.]

이날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사거리에 모인 탄핵 반대 측은 밤늦게까지 초대형 스피커를 이용해 “탄핵 각하”를 외쳤다. 한 집회 참가자는 단상 앞에서 “혹시나 탄핵이 인용되면 탄기국에는 군인 출신이 많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며 “폭동은 아니더라도 관공서를 가만두진 않을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과격한 발언은 이날 밤늦게까지 이어지며 “종북 편을 드는 헌재를 불 질러야 한다”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국회의원도 과열된 집회 분위기에 기름을 부었다. 이날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한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집회 단상에 올라 “지금까지 특검이 한 게 뭐가 있느냐”며 “몇 달 동안 헛짓만 한 특검은 물러나고 박영수는 구속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원의 발언에 집회 참가자들은 환호하며 “탄핵을 각하하고 박영수를 집어넣어야 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집회 분위기가 심각해지자 경찰도 이날 오후부터 일선 경관들에게 간이소화기를 지급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경찰 관계자는 “만약의 위험한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현장에서 즉시 대처하고자 간이소화기를 지급했다”며 “화재 등의 유사 상황을 대비해 규정에 따라 나눠주고 경계 태세를 강화했다”고 말했다.

밤을 넘기며 집회 참가자는 줄었지만, 과격한 발언은 수위가 더 높아졌다. 이날 밤샘집회에 참여한 황모(70) 씨는 “저녁에 광화문에서 찾아온 촛불 집회 쪽에는 아직 생각이 덜 여문 젊은이들이 많은 것 같다”며 “인용 결정이 날 경우에는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모(45) 씨 역시 “만에 하나라도 헌재가 인용 결정을 내린다면 바로 보복에 나설 것”이라며 “야당과 촛불이 대통령의 약점을 잡고 권력을 약탈했듯 애국시민들도 이들을 다시 끌어내리겠다”고 주장했다. 경찰도 경비 병력을 서울 시내에 2만1600명까지 늘리며 비상상황에 대비했다.

탄핵 정국 초반의 차분한 분위기와 달리 탄핵 반대 측의 과격 행동은 탄핵 선고가 가까워지면서 점차 심해졌다. 지난 8일에는 가스총을 들고 탄핵 반대에 참석했던 50대가 경찰에 입건됐고, 탄기국 사무총장도 같은 날 의경 폭행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됐다. 지난 6일에는 탄기국 게시판에 죽창에 태극기를 단 사진이 올라와 물의를 빚기도 했다.

태극기가 탄핵 반대 운동의 전면에 나선 것은 지난해 12월 24일, 제6차 박근혜 하야 반대 집회의 부제로 ‘태극기 집회’가 선정되면서부터다. 태극기를 전면에 내세운 탄핵 반대 측은 집회마다 세를 넓히며 탄핵 반대 여론을 결집시켰지만, 점차 과격한 행동으로 물의를 빚으며 비판을 받았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탄핵 인용이 가까워지면서 위기감을 느낀 탄핵 반대 세력이 과격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라는 분석까지 내놨다.

전문가들도 심화하는 태극기의 과격한 행동에 우려를 나타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경제성장과 과거의 향수로 인해 굳어진 신념에 도전을 받으며 노년층이 더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는 것”이라며 “박정희 정권에 대한 향수가 박 대통령의 선거에 영향을 미쳤듯 지금까지 이어져 온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반응으로 표출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명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도 “보수 세력이 헌재의 선고가 가까워지면서 극단적으로 가고 있다”며 “최근 들어 과격한 발언을 하는 빈도도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그러나 헌재의 결과에 저항하거나 무력화하려는 폭력적인 시도는 여론의 폭넓은 지지를 받기 어렵다”며 “헌재의 선고 결과에 따라 어느 정도 혼란은 있겠지만, 국민에게 어필하는 정도는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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