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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실한 장사꾼 키우는 청년창업의‘키다리 아저씨’
‘윤민창의투자재단’에 300억원 출자…한국의‘카우프만 재단’꿈꾸는 손주은 메가스터디그룹 회장

“단 하루의 창업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0은 아무리 큰 수를 곱해도 결과가 나타날 수 없지만, 1만 만들어낼 수 있다면 커질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단 한 번의 도전은 젊은이의 삶을 180도 바꿀 수 있는 필수 조건이다.”

‘손사탐’(사회탐구영역을 가르치는 손 선생님)이라 불리며 서울 강남 학원계에서 수천명의 수강생을 몰고 다녔고, 초고속 인터넷의 발달이란 시대적 흐름에 맞춰 본격적인 온라인 교육 시장을 열어젖힌 선구자로 이름을 날렸던 손주은(56) 메가스터디그룹 회장. 그가 요즘 주변 지인을 만나거나 강연에 나설 때면 반드시 강조하는 말이 바로 ‘단 한 번의 창업(도전)’이다.


최근 서울 강남구 메가스터디그룹 본사에서 본지 기자와 만난 손 회장은 기술이나 아이디어로 창업에 나서고 싶지만 자본이 없어 꿈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을 돕기 위해 노력 중인 ‘청년창업 키다리아저씨’로서의 삶에 푹 빠져 지내는 모습이었다.

그동안 손 회장은 타인에 의해 설계된 시험에서 정해진 정답을 찾아 명문 대학에 진학하고, 각종 자격 시험에 합격해 법조인ㆍ의사가 되거나 대기업에 취업하는 학생을 길러내는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 걸어가고 있고 앞으로 걸어갈 삶에서 손 회장은 더 많은 청년들이 스스로 문제를 설계하고 이를 극복해내는 창업의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인생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돕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100만명이 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이어가며 다져진 그의 입담은 알려진 것보다 더 대단했다. 지난 인생과 철학, 계획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인터뷰의 특성상 어쩌면 분위기가 딱딱할 것 같았지만, 그의 달변에 세 시간이 어떻게 흘러간 지 모를 정도였다.

▶큰 돈 쉽게 벌었단 부채의식…한국의 ‘카우프만 재단’ 만들어 사회 환원=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딸의 이름을 따 설립한 ‘윤민창의투자재단’은 맨손으로 시작해 대한민국 사교육계를 대표하는 기업을 일군 자신의 경이로운 경험을 더 많은 청년들이 할 수 있도록 돕자는 그의 생각에서 비롯됐다.

손 회장이 300억원이란 거금의 사재를 출연해 재단을 만든 이유는 바로 사교육을 통해 너무나도 쉽게 큰 돈을 벌어들였다는 ‘부채의식’ 때문이다. 그는 “미친듯이 일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 달에 수억원의 수입은 한 일에 비해 너무나 큰 돈이라고 여겼다”며 “20여년 전부터 수강생들에게 향후 일정 시점이 되면 내 재산을 털어 인재양성을 위한 재단을 만들겠다고 꾸준히 약속해왔고, 윤민창의투자재단은 이를 실천에 옮긴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윤민창의투자재단은 지난달 1기 참가자를 공모했다. 그리고 선정된 이들에게는 창업자금으로 5000만원씩을 지원할 예정이다.

당초 손 회장이 구상했던 공익재단은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도 학업을 이어가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제공하는 평범한 장학재단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불과 4~5년전 과거 ‘손사탐’ 시절 가르쳤던 30~40대 제자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며 완전히 달라졌다.

어느날 손 회장에게 명문고ㆍ명문대를 졸업한 뒤 대기업에 입사해 만족스런 삶을 사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한 제자가 찾아왔다. 그리고 그 제자는 돈을 적게 벌어도 안정적인 생활을 즐기기 위해 현재 직장을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 준비에 들어간다는 말을 손 회장에게 남겼다. 그동안 여러 대기업으로부터 스카우트를 받으며 화려한 직장생활을 했지만, 직장인으로서의 삶에 한계를 느끼고 무기력감에 빠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학생은 손 회장에게 “헬조선에서의 이번 삶은 망했다”는 자조적인 말까지 남겼다. 손 회장은 “화려한 스펙을 지닌 친구조차 이렇다면 그런 조건을 갖추지 못한 청년들이 느끼는 무력함은 훨씬 더 클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며 “치열한 입시 경쟁 속에서 가르쳤던 청년들이 더이상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 것도 사교육계에 발을 담군 나의 책임이라 생각했고, 저성장이 지속되는 한국 사회에서 젊은이들에 의한 성장 엔진이 꺼지지 않도록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했다.

윤민창의투자재단이 닮아갈 롤모델로 손 회장이 지켜보고 있는 곳은 바로 미국의 ‘카우프만 재단’이다. 이 재단은 지난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18개 대학 캠퍼스에서 창업문화를 확대하기 위해 5000억원을 투입해 창업교육과 창업문화 확산 프로그램(KCI)을 지원한 바 있다.

윤민창의투자재단이 주요 타깃으로 하고 있는 지원대상은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운영 계획은 있지만, 안정적인 투자자금 회수를 최우선 목표로 하는 벤처캐피탈(VC)의 지원은 받기 힘든 청년들이다. 여기에 중ㆍ고교생들이 자유학기제나 동아리 활동 등을 활용해 소규모 창업을 하고, 이를 운영하는 경험을 함으로써 향후 창업을 위한 도전에 거리낌없이 뛰어들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한 ‘청소년 창업학교’ 프로그램도 현직 교사 3~4명과 함께 준비 중이다. 손 회장은 “비록 자금 회수에 실패한다 하더라도 청년ㆍ청소년들이 도전하고, 실패로부터 경험과 영감이란 자산을 얻어 다음 도전에서 성공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다면 재단의 역할은 다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기업이 팔 것은 ‘입시’ 아닌 ‘라이프스타일’=창업에 대한 생각 만큼이나 고민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지금의 손 회장을 있게 만들어준 ‘메가스터디’와 사교육 시장의 모습을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그가 최근 구상하고 있는 새로운 메가스터디의 모습은 어쩌면 윤민창의투자재단을 통해 청년들이 느끼는 ‘헬조선’의 무력감을 극복하고자 창업지원에 나서고 있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손 회장은 입시에 매몰된 교육산업은 조만간 붕괴된다는 생각을 기본으로 새로운 메가스터디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 중이다. 고입ㆍ대입ㆍ공무원시험 등 각종 입시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지금의 명성을 쌓아올렸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다소 모순적인 발상이다.

그는 현재 교육시장은 입시라는 틀 속에 갇혀 ‘불행’을 유통하는 굴레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손 회장은 “과거만 해도 부모들은 교육이 학벌과 소득이 증진된 더 나은 삶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를 바탕으로 자녀를 학원에 보냈다”며 “하지만 자신의 자녀만 학원을 다니지 않았을 때 받게 될 불이익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내는 경우가 많은 입시 중심 교육은 붕괴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손 회장이 현재 눈여겨보고 있는 벤치마킹 대상은 바로 일본의 ‘쓰타야’ 서점이다. 오프라인 서점은 망한다고 한 상황에서 책 안에 들어있는 삶의 양식과 철학, 행복 등을 판매함으로써 오프라인 서점만으로 연 매출 2조원에 영업이익을 1000억원이상 내는 신화적인 결과를 도출했다.

손 회장은 이 같은 시도가 한 때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 2조5000억원을 웃돌던 메가스터디를 부활시키는 발판이 될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코스닥시장에서 한 주당 가격이 38만5000원까지 치솟았던 메가스터디는 학령인구의 감소로 입시시장이 위축되면서 사세도 기울어 지금은 시총 3800억원(메가스터디ㆍ메가스터디교육ㆍ메가엠디) 수준으로 떨어졌다.

손 회장은 “최근 메가스터디 직원들에게 사교육업체가 사교육만을 판다면 틀림없이 망한다고 강조하고 있다”며 “교육 수요자들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고민을 해결하고 더 나은 라이프스타일을 팔 수 있는 진정한 교육 기업의 모습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

▶교실혁명, 4차 산업혁명에 맞는 교육 대전환 전제=자타 공인 사회ㆍ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손 회장에게 요즘 들어 고향사람들이나 주변인들이 정치에 한 번 나서보라 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세간의 시선에 대해 손 회장은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사교육에서 돈을 벌며 입시 위주의 교육 현실을 만드는데 일조한 사람들에게 한국 사회에서는 주홍글씨가 새겨져 있다”며 “그런 제 자신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후안무치(厚顔無恥)”라고 강조했다.

손 회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학제 개편이나 교육부 축소ㆍ폐지에 따른 국가교육위원회 설치와 같은 거대담론에 매몰되기 보다는 학생들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교실의 형태부터 바꾸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주장했다.

현재 한 교실에 학생들은 몰아넣고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근대 시민사회 초기에 정착된 구시대적 모형이란 것이다. 그는 ”지금은 보편적인 지식과 기능을 습득하기보다 어떻게 활용하고, 이를 통해 도전하고 체험하는 작업들이 중요한 시대가 도래했다”며 “사고력 교환 및 토론 중심 교육과 체험 중심 교육 등 근본적인 교실 혁명이 있어야 4차 산업혁명에 맞는 교육 대전환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신동윤 기자/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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