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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욕망, 그리고 파멸…끈적한 잔상 남기는 악마 같은 뮤지컬 ‘더 데빌’
‘X 캐릭터’ 선악 상징 화이트·블랙
빛·색채로 등장인물 감정 변화 표현


살갗을 파고드는 강렬한 유혹을 거부할 수 있는 인간이란 과연 몇이나 될까. 선과 악의 갈림길에 선 인간의 선택과 그에 따른 질문은 어쩌면 인류가 시작될 때부터 시작됐을지 모른다. 성경 속 아담과 이브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는 것부터 독일의 문호 괴테가 60년에 걸쳐 집필했다는 고전 ‘파우스트’에 이르기까지. 악마와 결탁한 인물의 심판과 구원에 관한 이야기는 긴 세월에 걸쳐 사람들의 머리 위를 떠다니고 있다.

현대 사회를 사는 인간이라고 해서 이 선택에서 자유롭지 않다. ‘파우스트’를 원작으로 지난 2014년 초연된 뮤지컬 ‘더 데빌’은 선과 악의 기로에 선 한 남자의 욕망과 파멸을 중독성 넘치는 음악과 강렬한 무대 연출로 표현해 당시 공연계에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다. 관객들이 익히 알고 있었던 기존 뮤지컬 문법을 무너뜨리고, 여태껏 전혀 보지 못한 방식으로 작품을 풀어냈기 때문이다.


약 2년 만에 돌아와 지난 14일 개막한 ‘더 데빌’은 작품의 일부 장면을 수정, 보완해 다시 관객들 앞에 섰다. 초연보다 조금 더 친절한 방식으로 재구성됐으나, 괴작(怪作) 혹은 문제작(問題作)이라는 평가를 받은 작품은 여전히 신선한 충격을 줄 만한 요소들로 가득했다. 명확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분명한 메시지를 전혀는 다른 뮤지컬과 달리, ‘더 데빌’은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록 음악과 몽환적 이미지로 꽉 찬 장면들로 관객을 휘몰아친다.

물론 원작이 있는 만큼 줄거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월 스트리트의 전도유망한 주식 브로커 ‘존 파우스트’는 사랑하는 여인 ‘그레첸’과 행복한 미래를 꿈꾸지만, 주가 대폭락 사태인 ‘블랙 먼데이’를 맞이한 이후 모든 것을 잃고 추락한다. 그가 실의에 빠진 틈을 타 악의 상징인 ‘엑스-블랙’은 유혹의 손길을 뻗치고, 블랙의 제안을 받아들인 존은 타락해간다.

이미 어둠에 물든 사회는 인간이 빛이 아닌 어둠을 따랐을 때, 선을 신봉하는 타인을 짓밟고 올라갈수록 더 많은 기회를 안겨준다. 성공과 쾌락이라는 마약에 중독된 존은 펜트하우스에 살면서 그레첸의 목에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박힌 목걸이를 걸어줄 수 있게 됐지만, 더 많은 부를 얻을수록 그의 영혼은 피폐해진다. 극 중 그레첸은 존의 영혼을 상징하는 인물로 보이기도 하는데, 존이 악에 물들어 갈수록 그레첸은 어둠의 심연으로 빨려 들어간다.

초연 때 선악을 넘나들며 미스터리함을 증폭시켰던 ‘X’가 이번에는 각각 선악을 상징하는 화이트와 블랙 두 개로 나뉘면서 4인극이 됐다. 이는 각 캐릭터의 상징성과 장면의 구체성이 더해지면서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 됐다. 엑스 화이트와 엑스 블랙 사이에서 존과 그레첸이 점점 변화해가는 모습 또한 훨씬 인상적으로 구현됐다.

더욱이 선과 악이 빛과 어둠으로 표현되는 만큼, 100대가 넘는 무빙 라이트로 엄청난 조명을 그야말로 쏟아 붓는다. 빛과 함께 시시각각으로 움직이는 색채의 변화 속에서 등장인물의 감정 변화를 느낄 수 있는데, 마치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 여러 장을 동시에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인간의 영역이 아닌 것 같은 고음으로 내지르는 목소리, 시뻘건 피가 흐르는 듯한 조명, 고대 그리스 비극을 떠올리게 하는 코러스 5인의 기괴한 몸짓들까지. ‘더 데빌’은 괴상하면서 환상적인 것을 표현할 때 쓰는 그로테스크(grotesque) 기법으로 표현된다. 어쩐지 자연스럽지 않고 괴이하게 느껴지는 끈적한 잔상들이 막이 내린 후에도 계속 눈귀에 맴돈다. 무언가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악마 같은 뮤지컬임에 분명하다.

임병근, 고훈정, 조형균, 장승조, 이충주, 박영수, 송용진, 정욱진, 리사, 이예은, 이하나 출연. 내달 30일까지 서울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1관. 관람료 3만 3천~6만 6천원.

뉴스컬처=양승희 기자/yang@newsculture.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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