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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진상규명 덜 된 일제 만행들
5000여명이 희생된 우키시마(浮島)호 피폭,침몰 사건은 잊을 수 없는 일제 만행인데, 여전히 진상규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해방된 지 일주일 남짓 지난, 1945년 8월24일 오후 5시20분, 일본 교토 마이즈루 앞바다에서 4703t 짜리 일본 해군 수송선인 이 배가 폭발과 함께 침몰했다. 강제징용된 조선인 귀향객 8000여명을 태우고 부산으로 항해 중이었다. 사건발생 일주일만에 일본은 ‘조선인 524명 사망, 미군 기뢰에 의한 폭발’이라고 발표한다.



하지만 지난해에야 입수된 일본 외무성 기록문서 ‘함정조난표류관계잡건’의 ‘우키시마호 인양요청서’에는 탑승인원이 8000여명으로 기록돼 있고, 당시 해군운송본부의 문서에는 그 배에 폭발물이 실려있었으며, ‘선내 폭발물을 육지에 격납하거나 해상에 투기하라’는 운수본부장의 지침을 어기고 폭발물을 배에 실은 채 출항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제의 거짓말이 드러난 것이다. 당시 문서에는 징용자 급여 책정이 없었음도 확인됐다.

일제가 망한 후에도, 배상액을 크게 낮추고, 징용의 참상을 축소하기 위해 ‘과실(過失)’로 위장한 고의 폭발을 감행했을 것이라는 추론만 있을 뿐, 아직 진상이 가려지지 않고 있다.

분노할 일은 지금도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는 위안부 참상 말고도, 많다.

1923년 9월 관동대지진때 일본 관헌이 개입된 조선인 학살로 확인된 희생자만 6661명에 달한다.

또 만주에선 일본군 생체실험으로 조선인 3000여명이 장기출혈, 투입된 바이러스에 서서히 죽어갔다.

일본측이 50여년간 은폐했던 1942년 2월의 조세이탄광 수몰사건(183명 사망) 등 감춰진 피해 제보는 여전하다.

정부는 지혜롭되,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 다시 맞은 삼일절, 소녀상 문제까지 일본에 끌려다녀서야 되겠는가. 함영훈 선임기자/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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