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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혼도 쉬어가다…‘바람 아래의 땅’ 키나발루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4100m 영봉’ 열대~온대 완벽한 생태계…세계 3대 석양·반딧불·레포츠천국 그곳은 ‘인생 활력 충전소’

‘바람 아래의 땅’은 어떤 곳일까. 보르네오섬 북서쪽 4분의1을 차지하는 코타키나발루의 별명이다.

문득, 캔사스의 ‘Dust in the Wind(바람 속 먼지)’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세상 시름이 먼지 되어 바람에 날아가 버렸으니, 바람 아래의 땅은 청정무구(淸淨無垢)일 것이다.

4100m 높이의 키나발루(Kina Balu)산은 예로부터 원주민들에게 ‘영혼의 안식처’로서 숭배받던 곳이다. 이곳에서 남쪽 직선거리 150㎞나 떨어진 봉가완 지역 보르네오 골프클럽의 블루라군을 낀 11번홀 티박스에서도 훤히 올려다보는 거대한 자연 신전이다.


키나발루 영봉(靈峰)은 대보름을 맞은 지난 11일 코타키나발루의 세계 3대 석양과 반딧불을 구경하러 온 여행자, 쌀쌀한 한국을 떠나 골프를 즐기려는 골퍼, 바닷가에서 패러세일링 등 호핑을 즐기는 레포츠마니아, 이곳을 지켜온 카다잔족 아낙들의 아름다운 미소를 넉넉한 자태로 굽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당찬 위용과는 다르게, 자신을 찾은 트레킹족은 편안한 오솔길로 품었다.

1964년 말레이시아 국립공원이 된 데 이어 2000년 이 나라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키나발루산 정상은 이날 아침부터 허리에 걸린 구름의 호위를 받으며 근엄한 자태를 뽐낸다.

8부능선까지 1박2일이 필요하다. 코타키나발루 시내에서 차를 타고 넉넉한 속도로, 평지에 이은 완만한 오르막길을 2시간쯤 가야 해발 1563m 지점의 관리사무소를 만나는데, 이곳이 출발점이다. 일반인들은 해발 3353m 지점의 라반 라타 캠프까지 오른다. 멋진 일출을 보려면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야한다.

의외로 험하지 않고 소박한 트레킹 길이다. 길가에는 실 폭포, 열대활엽수, 신비스런 주홍의 야생화, 직경 1m에 육박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꽃 라플레시아 등이 차례로 보이더니 고도가 높아질수록 식생은 작고 강한 것으로 변한다. 한국 시골의 온대성 무화과와 산딸기, 바위 틈새로 자라나는 새싹 모양의 가녀린 풀, 옅은 분홍 실 모양의 꽃이 반가움과 신비감을 함께 선사한다. ‘가장 완벽한 생태계’라는 석학들의 평가를 실감한다.


트레킹길 중간 협곡 사이에 놓여진 길이 157m 캐노피워크(Canopy Walk) 흔들다리 역시 키나발루산의 명물이다. 소소한 감동을 만나는 숲을 벗어나면 중간 중간 키나발루산 위용이 큰 감흥으로 끼어든다.

바람 위, 아래의 경계선엔 어느 날 세찬 바람이 침노했으리라. 무슨 곡절인지 절반쯤 뿌리를 드러낸 거목은 생존을 위해 땅 위 사방으로 뿌리를 뻗으며 제 몸을 지탱한다. 평지에 영혼의 안식을 선사하려고 버텨준 수호천사의 몸부림이다.

6부능선을 넘을 무렵 구름과 햇빛이 교차한다. “산을 넘는 구름 보고 목이 메어 우노라네~” 키나발루산 기슭에 걸린 구름을 보고 조두남 식 감흥이 돋는다.

스위스 리기산 운무나 백두대간 동쪽 해무가 평평한 구름바다라면, 키나발루산 등산객 발 아래 펼쳐진 운무는 기암괴석 같은 피겨를 시시각각 다르게 연출한다.

관리소에서 6시간 걸쳐 라반 라타에 도착하면 감동은 절정에 이른다. 휴양과 낭만의 도시로만 알던 코타키나발루에 이런 장쾌함이 있을 줄이야. 세찬 바람을 모두 떠안은 듯, 바람이 패어놓은 바위산 결은 거칠면서도 칼퀴로 긁어 놓은 것 처럼 일관된 평행의 무늬를 보인다. ‘바람 아래의 땅’에서 노니는 지구촌 여행자들의 휴식과 건강을 지탱해준 에너지 발전소 답다. 하산길 나발루 휴게소에서 내가 올랐던 산을 쳐다 보면서 감흥을 정리한 뒤 인근 포링 유황 온천에서 몸을 풀면 되겠다.

코타키나발루의 매력은 산토리니, 피지와 함께 세계 빅3로 꼽히는 석양이다. 북에서 남으로 해안 선셋 명소는 시내 북쪽의 제셀턴포인트, 시그널힐 전망대, 공항 근처에 있는 수트라하버 호텔&리조트, 수트라하버 앞바다의 5개 섬인 툰구압둘라만 해양공원, 남쪽 봉가완 지역 보르네오 골프클럽 해안코스와 탄중아루 해변 등이다. 해안 야자수와 아이들의 노는 모습이 붉은 노을과 병치혼합을 이룬다. 전통 및 현대 건축미가 어우러진 사바 주립 모스크와 키나발루산 8부능선에서 바라보는 석양도 장관이다.

보르네오 GC와 수트라하버 GC에서 골프 라운딩을 막 끝내고 레스토랑에서 즐기는 석양은 맥주ㆍ포도주의 취기와 어울려 흥을 돋운다. 코타키나발루가 주도인 사바주의 하늘색 원기둥형 주 청사는 이탈리아 피사의 탑 모양인데, 곧다. 카메라를 살짝 기울여 지는 해를 드리운다면 ‘보르네오 사탑’, 작품이 되겠다.

말레이시아 초대 총리의 이름을 딴 툰쿠 압둘 라만 국립공원은 이 나라 국왕이 자주 라운딩과 휴양을 즐긴다는 수트라하버 호텔&리조트 인근 선착장에서 5~8km 떨어진 가야, 마누칸, 사피, 술룩, 마무틱 5개의 섬을 통칭한다. 스피드보트로 10여분이면 당도하는데, 육상엔 야자수, 바다엔 산호초가 조화를 이루고, 코발트빛 바다에서 스노쿨링과 각종 해양스포츠를 체험한 뒤 해산물 BBQ를 즐기는 곳이다. 사피섬의 패러세일링에 몸을 맡긴 여행자의 환호가 싱그럽다.

해가 지면 보르네오 GC 인근 스르방이나 클리아스 또는 나나문 강을 따라 진행되는 반딧불투어를 빼놓지 말자. 수천개 작은 별들이 하늘에 박힌 큰별 사이를 헤집고 다닌다.

코타키나발루는 한국인이 최고의 손님이다. 스카이스캐너가 2016년 한해 한국인이 검색한 항공권 2600여만건을 분석한 결과, 전년 대비 항공권 검색률이 가장 크게 증가한 여행 도시로 코타키나발루(7배) 2위에 꼽혔다.

시내와 보르네오 GC사이에는 페트로나스 석유공장이 있는데, 삼성이 지었고, 이는 코타키나발루를 한국인의 힐링장소로 만드는 계기로 작용했다. 1970년 중반까지 보르네오 원목으로 큰 돈을 벌었던 한국인 가구사업자들은 원목수출금지조치가 내려진 이후 이곳에 정착해 살던 중, 번 돈이 다 떨어져 갈 무렵 이 석유공장 건설의 통역원으로 고용된다. 넉넉한 월급을 받게되자 비즈니스 마인드를 발휘해 식당, 관광, 유통 매장을 차려 부활에 성공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인 친화적인 여행생태계를 조성하게 된 것이다.

카다잔족 원주민 60%, 중국계 30%, 필리핀계 등 10%가 공존하는 이곳은 팜유, 석유, 먹거리 등 자연자원이 풍부하고 살림살이가 넉넉하기에, 거지 없고, 매춘부 없고, 가정부 없는 자존심의 ‘3無’ 도시이다. 밤이 되면 시내는 들썩인다. 가장 큰 재래시장 ‘필리핀 마켓’은 육해공 식재료와 공예품에 이르기까지 있을 것은 다 있고 온갖 인종이 즐기는 곳이다.

해양자원 면에서는 호주 퍼스의 로킹엄, 아열대 우림지대라는 점에서는 중국 광둥성 허위안, 아시아서 이름난 골프장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한국의 용인을 닮았다. 용인을 비롯한 이 세 도시는 모두 코타키나발루의 자매도시이다. 힐링 에너지 충전소에 포용의 덕목까지 갖춘 이곳에 한국에 대한 사랑이 커져만 간다.

함영훈 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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