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이형석의 영화X정치] 이번 대선에서의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 올해 치러지는 제 19대 대통령선거에서 최종대결구도는 어떻게 될까. 몇 명의 후보와 정치세력이 맞붙는 게임이 될까.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인용 여부와 맞물려 지금으로선 대선이 5월이 될지 12월이 될지 모르는 마당에 최종대결의 양상까지 예단하긴 어렵다. 하지만 몇 명의 후보가 출마하든 이번 대선은 이념 지형이나 세력 구도가 크게 3분된 상황에서 치러질 것이라는 전망은 해볼 수 있다. 정치권의 이런 저런 얘기도 종합하면 결국은 ‘삼각축‘으로 귀결된다. 

[그래픽디자인=이은경/pony713@heraldcorp.com]

▶보수-진보-중도의 삼각축

보수-진보-중도의 싸움이다. 물론 정당ㆍ세력별 연대나 대선주자간 단일화 여부에 따라서는 최종 투표 용지 위에 기록되는 유력 후보의 이름은 3명 혹은 4명, 5명도 될 수는 있지만, 이념 및 정치세력의 대체적인 분포는 보수-진보-중도로 나뉜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현재 교섭단체 기준 4당 체제에서 모두 후보 선출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 지난 제 18대 대선처럼 보수-진보간 양자대결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과거의 대선과는 분명 다른 양상이다. 물론 예전에도 주류 정당 소속이 아닌 제 3후보가 주목받은 사례는 심심치 않게 있었다. 1992년 정주영 후보, 2002년 정몽준 후보, 2007년 문국현 후보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올해는 보수와 범민주 진영을 대표하는 두 주류 정당 이외의 세력이 ‘중도’ ‘제3지대’라는 이름으로 이념과 세력을 정립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차이가 있다.

보수에서의 ‘비박’(非박근혜계)‘, 범민주진영에서의 비문’(非문재인) 등 중도나 제3지대를 표방한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은 각 진영 패권투쟁에서 비주류였다. 이들의 분별정립, 즉 분당과 창당은 정치적 이해에서 비롯됐지만, 스스로 정체성을 ‘개혁 보수와 온건 진보의 결집’으로 ‘이념화’하고 있다.

이처럼 3자대결이라면 문재인ㆍ안희정 두 유력 주자를 거느린 범민주진보진영과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 국무총리 및 새누리당 주자들이 가세한 범보수 진영,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포진한 ‘중도’ 혹은 ‘제3지대’ 간 경쟁 구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교섭단체 기준으로 3자대결이라면 ‘(새누리당+바른정당) vs (국민의당) vs (민주당)’ 혹은 ‘(새누리당) vs (바른정당+국민의당) vs (민주당)’이 될 가능성이 높고, 4자대결이라면 ‘새누리당 vs 바른정당 vs 국민의당 vs 민주당’이다. 최종후보가 누가 되든 이념지형으로는 보수와 진보, 중도세력간의 싸움이다.

보수-진보-중도의 3자 대결이 될 때는 보수-진보의 양자대결과는 전략도 다르고 승부 예측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보면 결국은 누구를 ‘저격’할 것인가의 문제, ‘관중’의 입장에서는 누구를 ‘응원’할 것인가의 문제다.

과연 누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대권’을 얻을 것인가. ‘총잡이 모델’의 게임이론과 ‘중도의 심리학’은 3자대결의 선거판에서 좋은 참고가 된다. 


▶3자대결의 총잡이 게임이론-‘놈놈놈’ 중 살아남는 놈은?

1966년작인 세르지오 네오네 감독의 서부극 ‘석양의 무법자’는 세 총잡이의 이야기다. 원제가 ‘좋은 자, 나쁜 자, 못난 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다. 김지운 감독의 영화인 2008년작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이하 ‘놈놈놈’)은 제목부터 캐릭터까지 ‘석양의 무법자’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석양의 무법자’에서는 3명의 총잡이가 금괴를 놓고 서로 추격전과 총격전을 벌인다. ‘놈놈놈’도 3명의 주인공이 보물지도를 두고 뺏고 뺏기고 쫓고 쫓기는 싸움을 벌인다. 3자가 목표물을 얻기 위해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대결을 벌인다는 설정이 공통점이다.

‘석양의 무법자’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3명의 총잡이가 한 자리에 모여 결투를 하는 대목이다. 이는 ‘놈놈놈’에서도 재현된다. 삼각형 구도로 서 있는 3명의 총잡이. 적도 동지도 없는 사이. 무조건 살아남아야 하고, 살아남는 사람만이 목표물을 얻을 수 있는 상황. 관객들의 관심은 이렇게 모아진다.

‘그들 각각은 누구를 쏠 것인가? 누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것인가.’

이는 게임이론 중 ‘총잡이 이론’과 비슷한 상황이다. 총잡이 이론이란 3명의 총잡이가 결투를 벌일 경우의 전략과 승부 예측 모델이다. 3명의 총잡이 중 A는 명중률 100%, B는 70%, C는 30%라고 가정하면 이들 각각은 어떤 전략을 취하는 것이 유리하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확율은 얼마나 될까.

이 모델은 의외의 결과 때문에 유명하다.

먼저 결투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명중률이 낮은 사람부터 순차적으로 쏘는 방식이다. 이 경우 C가 먼저 쏘게 되는데, 누구를 향해 발사를 하는 것이 유리할까. 결론은 아무도 맞히지 않도록 오발탄을 날리는 것이 C에게 가장 유리하다. C가 명중률 최고 총잡이 A를 쏴 죽이게 되면 다음 발사 차례인 B는 당연히 C를 쏘게 될 것이므로 명중률이 더 낮은 C가 불리하다. C가 첫 차례에서 B를 쏴 죽이면 명중률 100%의 A만 남게 되므로 C는 더 불리하다. 그러므로 C는 아무도 죽이지 않아야 한다.

이번엔 3명이 한꺼번에 총을 쏠 경우 생존 확률이 가장 높은 사람은 누굴까. 예상 밖으로, 명중률이 가장 낮은 C다. 왜냐하면 A는 자신이 죽을 확율을 낮추기 위해 B, C 중 명중률이 높은 B에게 총을 쏠 수 밖에 없다. B도 명중률이 높은 A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B는 명중률 100%인 A에게 총을 맞을 수 밖에 없으므로 무조건 죽는다. B로부터 총을 맞는 A는 죽을 확률이 70%다. C는 아무에게서도 총을 맞지 않는다. 


▶중도의 딜레마-모두가 원하지만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다

극단을 벗어난 합리적인 노선. ‘중도’나 ‘제 3지대’가 환영받는 것은 ‘합리성’ 때문이다. 많은 유권자들이 보수-진보의 장점만 받아들이고 폐단을 극복하겠다는 중도세력이나 제3지대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최종 선택에서 유권자들이 중도나 제3지대의 후보들의 이름에 도장을 찍을까.

지난 2012년 EBS는 대선 특집 ‘다큐프라임-킹메이커’편에서 실험을 했다. 당시 각 대선 후보의 열렬한 지지자 20여명을 모아놓고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와 경쟁 후보의 ‘모순된 발언’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관찰한 것이다. 각 실험참가자들이 각 후보들의 발언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를 대답하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각 발언을 들을 때 실험참가자들의 뇌의 변화도 관찰했다.

그랬더니 실험참가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모순된 발언에 대해서는 잘못된 점을 알아차리는 정도가 약했다. 반면 경쟁 후보의 발언이 가진 모순점은 상당히 잘 찾아냈다. 왜 그럴까. 실제로 뇌를 기능자기공명장치로 촬영한 결과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발언을 들을 때는 감정을 처리하는 부위, 즉 내측중간전두엽 등이 더 활성화됐다. 즉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말을 들을 때는 매우 감성적으로 되는 반면, 경쟁 후보를 대할 때는 이성적인 상태로 변하는 것이다. 이는 정치심리학자인 미국 애머리대 드루 웨스턴 교수가 지난 2004년 한 실험을 재현한 것이다.

드루 웨스턴의 실험은 특정 입장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가 새로운 정치적 정보를 만날 때 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중도’가 주장하는 합리성이 실제로는 기존 좌우 성향의 유권자에게는 통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얘기다.

중도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예는 또 있다. ‘프레임 전쟁’을 쓴 버클리대 언어학과 조지 레이코프 교수는 “중간(중도)은 은유다, 그것도 잘못된 은유다. 중도를 위한 이데올로기는 없다. 중도파의 신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도는 어떤 문제에는 보수적이고, 어떤 영역에서는 진보적이라는 의미다. 다양한 조합이 존재할 뿐”이라고 말한다.(EBS, ‘킹메이커’에서 재인용).

EBS 다큐프라임에선 이와 관련한 실험도 했다. 실험참가자들에게 2012년 당시 보수-진보를 가르는 의제였던 무상급식, 한미FTA, 대기업규제, 의료민영화 등 20가지 항목을 정해 질문으로 만든 뒤 5점 척도로 찬반 정도를 표하게 했다. 1은 매우 찬성, 2는다소 찬성 3은 상관없다 4는 다소 반대 5는 매우 반대 라는 식이다. 그리고 나온 결과에 따라 각 실험참가자들을 보수파/중도파/진보파로 나누었다.

이 중에 관심은 ‘중도파‘였다. 중도파들은 각 질문에 대해 3점 안팎을 줬을까. 아니면 각 질문에 대해 보수ㆍ진보 입장이 뚜렷했는데 전체 평균을 내보니 3점 근처가 됐을까. 결과는 후자에 가까왔다. 사안별로는 찬반,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의 입장이 뚜렷했으나 양쪽의 의견 분포가 비슷해 평균이 중도에서 수렴된 것이다.

이는 ‘중도’와 ‘제3지대’를 선언한 정치세력이 가진 딜레마를 보여준다. 실제 ‘중도파’ 성향의 유권자라도 ‘중도’를 선언한 정치세력을 지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조지 레이코프 교수와 EBS실험은 보여준다. ‘중도파’ 성향의 유권자들은 각 사안에 대해 보수-진보 입장이 뚜렷하기 때문에 오히려 보수-진보 어느 한쪽을 지지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말이다.

이는 최근 안희정 충남지사에게 쏠리는 중도ㆍ무당층의 지지를 이해할 단서가 된다. 안 지사는 대표적인 386 학생운동 출신에 ‘친노’로 분류되는 인사다. 우리 사회의 범민주진보 진영 ‘주류’라는 얘기다. 그러나 최근 대권 행보에서는 사드 배치를 비롯한 안보, 보수 정부의 경제 정책 등에 대해 상당히 ‘우클릭’한 입장을 보여줬다. 그래서 중도ㆍ무당층과 심지어는 보수성향 유권자층 일부까지 안 지사의 지지로 돌아선 것이다.

정작 ‘중도’와 ‘제3지대’ 등을 표방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대권주자로는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 남경필 경기 지사의 지지율이 하락세거나 정체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되는 현상이다.

▶누구를 쏠 것인가, 누가 이길 것인가.

‘석양의 무법자’와 ‘놈놈놈’은 서로 다른 결론을 낸다. ‘석양의 무법자’는 클린트이스트우드가 맡은 블론디, 즉 ‘좋은 자’가 이기는 분위기다. 반면 ‘놈놈놈’에선 송강호가 연기한 ‘이상한 놈’이 말하자면 ‘의문의 1승’을 거두며 최후에 웃는자가 된다. 두 영화 모두 공통된 것이라면 ‘나쁜 놈’은 죽는다.

이번 대선에서는 과연 누가 ‘좋은놈’이 되고 누가 ‘나쁜놈’이 되고 누가 ‘못난놈’이거나 ‘이상한놈’이 될까. 그리고 누가 최후에 웃는자가 될까.

결과는 알 수 없지만 다만, 이번 대선이 ‘나쁜놈, 더나쁜놈, 제일나쁜놈’의 대결이 아니기를, ‘좋은분, 더좋은분, 제일좋은분’의 대결이기를 바랄 뿐이다.

suk@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