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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km는 눈앞인데…풀코스인지 하프코스인지 누구도 모르는 대선 마라톤
[헤럴드경제=김상수 기자] 마라톤은 흔히 인생에 비견된다. 생사의 극한에 도전하는 드라마가 있고, 국력을 뛰어넘는 승자가 있다. 대선 역시 곧잘 마라톤과 비유한다. 외롭고 혹독한 레이스를 홀로 달려야 하는 장기전이다.

마라톤은 일견 단순해 보인다. 그저 열심히, 끈기 있게 달리면 된다고 보기 십상이다. 유니폼과 운동화만 있으면 된다. 심지어 올림픽 마라톤 최초로 2연패를 달성한 아베베 비킬라는 맨발로 경기에 임했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열려 있다. 

[그래픽디자인=이은경/pony713@heraldcorp.com]

허나 마라톤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우수한 심폐기능과 각근력, 지구력, 페이스 배분, 장거리 호흡법 등 사전 준비가 없는 마라톤은 완주조차 불가능하다.

특히나 마라톤은 세계 신기록이란 용어를 쓰지 않는다. 30도가 넘는 고온부터 영하의 날씨, 평탄한 길부터 가파른 언덕길까지 국가ㆍ지역마다 코스가 극명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날고 긴 마라토너라도 코스를 대비하지 않는다면 필패다. 

[그래픽디자인=이은경/pony713@heraldcorp.com]

올해 대선 마라톤도 이 같은 기본을 상기시킨다. 일단 출전 선수도 많다. 여야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후보가 20여명에 이른다. 유니폼과 운동화만 있으면 되니 참가에 의의를 두는 선수부터 지난 대회에서 탈락한 선수까지 총집결했다.

불과 몇km 지나지 않아 중도 포기한 선수도 있다. 세계적으로도 명성을 떨친 ‘유망주’였지만, 한국 특유의 험난한 지형을 간과한 탓이다. 그는 “제가 주도해 정치교체를 이루겠다는 순수한 뜻을 접겠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 말처럼 마라톤은 순수하게 임할 경기는 아니다. 

[그래픽디자인=이은경/pony713@heraldcorp.com]

마라톤에서 주요한 터닝 포인트는 11km다. 11km를 지나면서 선수는 음식물을 섭취하고 이후 스펀지로 물을 공급받는 ‘스펀지 포인트‘가 나온다. 11km까지 버티면 우선 한숨 돌리고 향후 완주 전략을 재설계할 수 있다.

대선 마라톤에선 11km 지점이 ‘당 경선’과 유사하다. 이 지점까지만 버티면 금전적ㆍ정책적으로 당의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캠프도 제대로 구축하게 된다. 각 당이 경선 룰 논의에 돌입한 걸 감안하면, 올해 대선 마라톤은 현재 9~10km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 셈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11km를 돌파하지 못한 채 포기했다. 

[그래픽디자인=이은경/pony713@heraldcorp.com]

물론 11km까지 가는 여정 역시 결코 쉽지는 않다. 올해 대선 마라톤은 초반부터 유난히 변수가 많았다. 세계사적인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 정국에 몰려 선수들은 엉겁결에 출발선에 섰다. 새누리당의 분열로 국회 5당체제까지 출범, 분당과 통합 변수 속에 여전히 피아도 구별하기 힘들다.

더 큰 난제가 있다. 이 마라톤은 결승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42.195km를 달려야 할지, 하프 마라톤인지, 30km인지, 심지어 11km를 통과하자마자 끝날지 누구도 답을 주지 못한다. 대통령 탄핵이 즉각 인용될 수도 있고, 혹은 아예 기각될 수도 있다. 

[그래픽디자인=이은경/pony713@heraldcorp.com]

마라톤의 핵심은 페이스 안배다. 전반에 체력을 아끼고 후반에 선두권으로 치고 가거나 초반부터 선두권을 유지하며 레이스를 이어가든 그 전략이 승패를 좌우한다. 그런데 어느 거리에서 마라톤이 끝날지 알 수 없으니 전략을 세우기가 힘겹다. 지난 대회 경험이 있는 문재인ㆍ안철수란 두 유력 선수에도 올해 대선은 쉽지 않은 승부다. 

‘페이스메이커’도 관심사다. 통상 페이스메이커는 30km 내외를 달린다. 페이스메이커도 아무나 할 수 없다. 무작정 선두를 치고 나가면 30km를 달릴 힘이 없다. 경쟁자를 유인할만한 완급조절을 발휘해야 한다. 올해 마라톤에선 문재인 후보가 초반부터 꾸준히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로선 페이스메이커마저 필요 없을 듯하나, 여전히 경기 초반일 뿐이다. 때론 불쑥 등장한 페이스메이커가 오히려 완주, 우승한 사례도 적지 않다. 

[그래픽디자인=이은경/pony713@heraldcorp.com]

마라톤 역사에서 빠지지 않는 선수가 도란도 피에트리다. 그는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 여유롭게 1위를 달리다 결승선 10여터 앞에서 탈진으로 쓰러졌다. 42km 넘게 달려 1위를 유지했다가 불과 10여미터를 앞두고 쓰러져 결국 실격했다. 막판까지 안심할 수 없는, 안심해선 안 될 대선 마라톤이다.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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