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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차 그리고 강제성채권] 집·차 살때 즉시 채권 깡…할인율도 모른채 ‘눈 뜨고 코 베인다’
강제성 채권 90% 이상 매입 즉시 매도
일반인에 생소한 채권 ‘바가지’성 많아
중간 거래자 잇속에 불법 유입 우려도

#1. 얼마 전 4억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한 김모 씨는 영수증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여윳돈이 없던 김씨는 법무사의 말대로 국민주택채권을 산 즉시 매도해 37만원을 냈다. 하지만 할인율이 과도하게 책정됐었다. 22만원만 내도 됐다.

김씨는 “채권 자체가 생소해 법무사에게 믿고 맡긴 게 화근”이라면서 “강제로 사야 하는 것도 말이 안되는데 사기까지 당했다니 더 화가 난다”고 말했다.

#2.1년 전 새차를 사고 등기를 한 강모 씨는 최근 차를 바꾼 친구와 대화를 하다 어이없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새차를 등록할 때 의무적으로 채권(지역개발채권+도시철도채권)을 사야하고 이걸 자동차대리점에서 즉시 매도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점이다. 강씨는 “영업사원으로부터 관련 내용을 전혀 듣지 못했다”면서 “도대체 얼마의 채권을 사서 얼마의 할인율로 매도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친구들 대부분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고 말했다.

국민주택채권, 지역개발채권 등 강제성채권은 집이나 차를 살 경우 의무적으로 사야 하지만 거래방식이 난해한 채권이라 피해를 더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4년 종이거래에서 방식으로 매매가 진행돼 국민들의 피해가 더 커진다는 지적이다.

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강제성채권의 총 발행액은 20조 1615억원으로 국민주택채권이(16조 1741억원)으로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어 지역개발채권(2조 9869억원), 도시철도채권(1조 1795억원) 순이다.


강제성채권 90%이상은 매입 즉시 매도되고 있다. 만기까지 보유하면 원금에 이자까지 받을수 있지만 실익(만기 5년에 금리 연 1.75%)이 적어 매입자 대다수 보유보단 팔아 등기비용부담을 줄이길 선호하기 때문이다. 국민주택채권의 경우 은행에 매도되는데 은행은 매입한 국민주택채권을 지정된 증권사로 넘긴다. 증권사는 이 채권을 보유하거나 채권시장에 내다 판다.

하지만 일반인에 생소한 채권이어서 법무사 등 대리인을 통해 거래되는 경우가 많다. 매입자가 바가지를 씌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얘기다.

이로 인한 도덕적해이도 심각하다. 업계에 따르면 3~5%까지 할인율을 부풀리는 관행이 일반적이다. 1300만원어치의 채권에 대해 60만원 이상을 법무사가 추가로 챙기게 된다는 것이다.

부동산 등기에 밝은 한 법무사는 “대부분의 주택 매수자는 채권이 뭔지, 채권의 필요성도 못 느낀다”면서 “대부분 등기대행을 맡긴 법무사의 결과를 그대로 따르는 게 일반적이다.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없다고 보면 된다”고 털어놨다.

지역개발채권ㆍ 도시철도채권도 마찬가지다. 일부 자동차 판매 영업사원들은 차량 구매자들이 공채 의무 매입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악용해 ‘채권매도금액’을 부풀려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있다. 구매자들이 취ㆍ등록세와 같은 규모가 큰 세금이나 등록 부대비용 전체 금액만 확인하고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심지어 채권매도금액 영수증 자체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 자동차 대기업 영업사원은 “(채권매도금액은) 수백만원대에 이르지 않기 때문에 고객들은 취득세 영수증만 보는 경우가 많다”며 “그래서 5만원에서 10만원 정도를 편법으로 탈취하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또 다른 영업사원도 “잘 지켜지면 좋겠지만, 아직도 손님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공채 영수증(채권매도금액 영수증)을 안 드리고 몇만원 정도를 쌈짓돈으로 챙기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유통시장을 거치면서 중간거래자들의 잇속만 키워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증권사 브로커의 경우 국민주택채권 거래를 통해 엄청난 이득을 올렸다”면서 “재주는 몸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버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각종 범죄에 이용되기도 했다. 국내 한 대형 시중은행 직원들은 지난 2013년 3년간 100억원이 넘는 국민주택채권을 위조ㆍ횡령했다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불법 사금융시장으로 유입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

수년 전 차를 구입한 고모 씨는 “등기소 앞에 소위 ‘깍두기 머리’를 한 건장한 남성이 ‘채권을 팔지 않겠냐’고 회유했다”면서 “불법 대부업체인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시대가 바뀐 만큼 국민주택채권의 운용방식도 변해야 한다”면서 “강제부과하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시장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사는 즉시 되팔아야 하는 비정상적인 구조도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혜진ㆍ장필수 기자/hhj6386@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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