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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남자의‘정신적 명절증후군’
경기도 남양주에 사는 직장인 김재정(55) 씨는 설 연휴내내 심한 허리 통증에 시달렸다. 화장실, 베란다 등 집안 청소를 혼자 도맡아한 것이 화근이었던 것. 방문하는 친척들마다 그를 가정적인 남편이라고 칭찬했지만 그의 속은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다.

김 씨는 “첫째 며느리로서 고생하는 아내를 생각한 것도 있지만 사실 아내 눈치가 보여서 한 것 뿐”이며 “칭찬을 들으면서도 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는 아내와 부모님의 눈치가 보였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이어 “명절은 더 이상 쉴 수 있는 시간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집안일을 거드는 남성들이 많아지면서 명절 증후군을 호소하는 남성들도 늘고 있다.육체적인 명절 증후군을 겪는 남성들이 있는 반면 ‘눈치밥’에 지쳐 ‘정신적인 명절증후군’을 호소하는 남성들도 있다.

결혼 2년차인 직장인 김순우(32) 씨는 평소처럼 설거지를 하다 어머니가 쏜 ‘레이저빔’을 제대로 맞았다.

김 씨는 “어머니께서 겉으로는 쿨한 척 하셔도 아들이 장가가서 고생만 한다고 오해하시는지 설거지하는 모습을 마냥 곱게 봐주시지는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더 큰 걱정은 어머니가 아닌 아내의 ‘레이저빔’이다. 김 씨는 “어머니 눈치가 보여 부엌을 나오면 곧 이어 아내의 눈치가 기다리고 있다”며 “이래저래 중간에 끼여 불편하기만하다”고 했다.

남편들의 도움이 절실한 아내들도 사정이 있긴 마찬가지다.

경기도 파주의 주부 권은숙(55) 씨는 명절때마다 간절한 소원이 생긴다. 바로 해외여행을 가는 것. 권 씨는 “제사 준비를 건너뛰고 가족들과 해외에 나간다는 주위 친구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고 했다. 이어 “제수음식을 많이 간소화하긴 했지만 차례상에 이어 12명이 넘는 가족들 식사를 매 시간마다 챙기다 보면 쉴 틈이 전혀 없다”고 고단함을 토로했다.

서울에 사는 결혼 2년차 직장인 박예지(34) 씨는 지난 금요일 꼭두새벽부터 시댁에서 차례상 준비하는 일을 거들었다. 설 당일만큼은 차례를 지내고 최대한 빨리 친정으로의 ‘탈출’을 꿈꿨지만 시댁 친척들이 점심시간에 맞춰 방문하는 바람에 이마저도 실패했다. 박 씨는 “남편한테 그렇게 눈치를 주면서 빨리 친청으로 가자고 했지만 결국 늦어서 친오빠네는 얼굴도 보지 못했다”며 속상해했다. 이어 “새언니도 친정이 있을텐데 시동생을 마냥 기다려줄 수 없지 않느냐”며 같은 여자로서 이해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명절 증후군을 줄이기 위해서는 부부끼리 깊이 있는 대화가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핵가족이 많아지면서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명절이 더 힘들게 느껴지는 가정이 많아졌다”며 이럴수록 사소한 것이 싸움으로 번지기 쉽기 때문에 명절을 다 보낸 후 대화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유익한 의사소통을 나누기 위해서는 부부가 함께 산책이나 등산 등 취미 활동을 통해 감정교류를 먼저 한 후 대화를 해야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이현정 기자/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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