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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석의 영화X정치] 헌법과 증언, 블랙리스트-조윤선과 트럼보의 경우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 “증인, 맞습니까 아닙니까? 예 아니오로만 답하시오.”

“의원님, 제가 준비한 성명서를 읽어도 될까요?”

“안됩니다.”

“그럼 제가 쓴 글을 보여드릴까요?”

“안됩니다.”

“그럼 제가…”

“됐고, 묻는 말에나 답하시오. 맞습니까? 아닙니까?”

“제가 범죄를 저질렀나요? 그렇다면 증거는 뭐지요?”

“증인, 질문하지 말고 내 질문에 대답이나 하란 말이요!”

“그럼 제 투표 기록을 알고 싶으신 겁니까, 조합 가입 여부를 보여줄까요, 아니면 내 종교가 뭔지 궁금합니까?”

“질문에 답이나 하시오. 맞습니까, 아닙니까?”



▶두 개의 청문회, 하나의 블랙리스트: 2017년 한국의 최순실 국조특위와 1952년 미국의 반미조사위원회

대화의 앞 부분만 보자면, 마치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제 7차 청문회에서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이 조윤선 문화체육부장관을 다그쳤던 장면같다. 당시 이 의원은 18차례나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존재 여부를 추궁한 끝에 “사실이라는 판단이 든다”는 조 장관의 답변을 얻어냈다.

하지만 위 대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트럼보’ 속의 한 장면이다. 1952년 미국 국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국과 미국, 그리고 무려 64년간이라는 시공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문화계의 이른바 ‘빨갱이’(공산주의자 혹은 좌파)를 색출하거나 감시ㆍ단속하기 위한 정부의 ‘블랙리스트’를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 모두 국회에서 구성한 특위 청문회에서 조사위원인 국회의원과 증인과의 사이에서 오고간 공방이라는 점도 같다. 하지만 입장은 정반대다. 미국에서 증인을 다그친 것은 1947년에 구성된 반미활동조사위원회(House on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 HUAC)였고, 증인으로 불려나온 이들은 공산주의 활동 혐의를 받던 영화인들이었다. 반미조사위는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작성’과 해당자들의 단죄를 위해서 구성됐고, 최순실 국조특위는 블랙리스트의 실체 규명과 주동ㆍ관련자 처벌을 위해 만들어졌다.

1940년대 후반에 시작돼 197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미국 정부의 공산주의자 색출작전은 공공연하게 합법의 형태를 띠고 이어진 반면. 박근혜 정부에서의 이른바 ‘좌파ㆍ진보 문화인 고사 작전’은 은밀하고 비합법적인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점이 다르지만, 민주주의의 근본을 정면으로 위배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두 개의 헌법, 두 종류의 증언거부

미국에서 반미조사위와 ‘블랙리스트’를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 1999년 제71회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이다. ‘에덴의 동쪽’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워터프론트’ 등의 명작들을 만든 엘리아 카잔 감독이 당시 평생공로상 수상자로 호명됐다. 그런데 축하와 환호로 뜨거워야 될 시상식장에 긴장감이 흘렀다. 일부는 기립박수를 쳤지만, 일부는 팔짱을 낀 채 미동도 하지 않고 무대만 노려봤다. 역대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 수상 장면에선 일찌기 볼 수 없었던 장면이었다. 엘리아 카잔이 1950년대 반미조사위에 동료를 공산주의자로 고발했던 전력 때문이었다.

영화 ‘트럼보’는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까지 최고조에 이르렀던 미국의 공산주의자 색출 운동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반미조사위는 할리우드의 영화인들을 청문회로 불러내 공산주의 활동을 자백하도록 했을 뿐 아니라 동료들을 고발하도록 했다. 증언을 거부하면 감옥으로 보냈다. 할리우드의 영화인 수백명이 공산주의자로 고발됐고, 일부는 감옥에 갔으며 일부는 외국으로 망명했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동료를 고발한 ‘배신자’가 돼야 했다.

‘트럼보’는 이 때 마지막까지 증언을 거부했던 시나리오 작가 달튼 트럼보(브라이언 크랜스톤 분)의 삶을 그렸다. 달튼 트럼보는 ‘로마의 휴일’ ‘스파르타쿠스’ 등을 쓴 당대 최고이자 전설적인 작가다. 반미조사위의 블랙리스트에 오르기 전부터 이미 최고의 작가로서 부와 명성을 누렸던 트럼보였지만, 그는 자신의 신념을 마지막까지 굽히지 않았으며 반미조사위의 증언을 끝까지 거부했다. 그에게 돌아온 것은 영화계의 냉대와 여론의 비난이었으며 차디찬 감옥행이었다. 일도 완전히 끊겼다. 영화는 그가 가족을 위해 가명을 써 가며 정부의감시를 피해 싸구려 B급 영화 시나리오까지 인쇄기로 찍어내듯 써내려갔던 시기를 인상적으로 담아냈다. 동료들의 배신과 가족의 위기 속에서는 그는 버텨낸다. 그는 11개의 가명을 써 시나리오를 썼고, 그 가짜 이름으로 아카데미를 수상한 작품이 ‘로마의 휴일’이다.

그의 증언 거부는 미국 정부의 반공주의에 반하는 행위였지만, 헌법을 마지막까지 지켜내기 위한 노력이었다. 오랜 시간 고통과 희생을 대가로 한 것이기도 했다. 영화에도 곧잘 인용되는 미국의 수정헌법 제 1조는 “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거나, 발언의 자유를 저해하거나, 출판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 그리고 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영화 ‘래리 플린트’에서 포르노업자까지도 보호했던 조항이다. 대한민국 헌법으로는 언론ㆍ출판, 집회ㆍ결사의 자유를 보장한 제21조와 가장 가깝다.

트럼보의 행위는 고통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헌법을 지키기 위한 ‘당당하고 아름다운 증언거부’였다. 그러나 60여년 후 대한민국의 정부와 국회청문회의 일부 증인들이 보여준 것은 오로지 부와 권력을 위해 헌법조차 무시하는 ‘비열하고 추악한 증언거부 혹은 허위증언’이었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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