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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북 국군포로 딸·손자의‘푸드트럭 꿈’
함경도 출신 김영순·이소사 母子
北서 국군포로 자손이라고 멸시
외조부 고향 부산에 꿈같은 정착
“南서 가장 맛있는 토스트 만들것”


굶주림과 죽음의 문턱을 넘어온 탈북소년이 푸드트럭 사장이 되는 소박한 꿈을 이뤘다. 그것도 국군포로였던 외할아버지의 고향, 부산에서 어머니와 함께 자립의 기반을 마련한 것이어서 그 의미가 남달랐다.

사람들이 쉴새없이 오가는 관광지나 거리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푸드트럭(junkluggerㆍ길거리에서 음식이나 음료 따위를 만들어 파는 트럭)’. 적은 돈으로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수 있어 인기가 높다. 창업비용이 적고, 자신이 가진 능력을 맘껏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요즘 젊은이들의 창업 열기가 뜨겁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푸드트럭 창업’은 그저 꿈과 같은 일이기도 하다.

함경도 출신 이소사(23)씨와 어머니 김영순(51)씨다. 탈북민 모자(母子)인 이들은 어엿한 푸드트럭 셰프였다.

지난 주말, 부산 강서구 렛츠런파크 앞마당에는 작고 앙증맞은 푸드트럭 하나가 정차해 있었다. 트럭 앞에선 10여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저마다 ‘행운’을 주문하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햄과 치즈를 고소하게 구워 빵사이에 넣은 토스트와 달콤함으로 무장한 호떡, 부산의 대표 먹거리 어묵을 파는 푸드트럭이다.

줄을 선 이들이 저마다 행운을 달라고 하는 이유는 메뉴판에 적힌 ‘행운토스트’와 ‘행운호떡’ 탓이었다. 트럭안에서 바쁜 손을 놀리고 있는 이들은 평안북도 함경도 출신 이소사(23)씨와 어머니 김영순(51)씨다. 탈북민 모자(母子)인 이들은 어엿한 푸드트럭 셰프였다.

함경도 출신인 이들 모자가 ‘따뜻한 남쪽나라’의 부산 강서구에 둥지를 틀게된 스토리가 이색적이다.

이들은 외할아버지가 국군포로라는 이유로 북한사회에서 멸시받아왔고,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밀수까지 감수해야했다. 아들 소사씨가 15세 때, 영양실조로 생사를 넘나들자 살기위해 목숨을 건 탈북을 감행했다. 2년간 머무른 중국에서는 집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숨어 살면서 가슴 졸였고, 2년 후 드디어 꿈에 그리던 한국, 외할아버지의 고향인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에 온 소사씨는 살아야겠다는 절박함으로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마쳤고 지게차, 굴착기, 대형면허 등 자격증을 따 건설회사에서 지게차 기사로 일해왔다. 어머니도 식당일을 하면서 힘을 보탰지만 한국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모자가 함께살 작은 아파트를 분양받았지만 분양금을 제때 내기 어려워 항상 쪼들린 삶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이들 모자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탈북 8년 만에 지난해 11월 푸드트럭을 얻게 됐다. 아들 소사씨가 ‘탈북민 푸드트럭 만들기 프로젝트’의 1호 창업자가 된 것이다.

소사씨의 푸드트럭 주력 음식은 토스트다. 소사씨가 토스트에 관심을 가진 것은 건설회사에 다니면서였다. 회사 근처 토스트가게에서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한끼를 해결할 수 있는 토스트가 남한 음식중 최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작은 토스트 가게였는데 주문이 끊이지 않았어요. 저거다 싶었죠. 제가 운전하고 손맛 좋은 어머니가 조리를 한다면 적은 돈으로도 창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업을 꿈꾸게된 소사씨에게 창업자금이 문제였다. 고민하던 소사씨는 우연히 지난해 8월 ‘탈북민 푸드트럭 사업’을 공모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통일부가 아이디어를 내고, 한국마사회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이 차량과 장소를 지원하는 사업이었다. 면접에서 ‘가장 간절한 지원자’라는 평가를 받은 소사씨는 “굶어 죽지않기 위해 탈북한 소년이 창업의 꿈을 이룬 것이 아직도 믿겨지지 않는다”며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큰 도움을 받은 나는 진짜 행운아다”고 말했다. 결국 소사씨는 지난해 11월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으로부터 푸드트럭을 무상 제공받고 2년간 이곳에서 운영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푸드트럭의 상호는 ‘베스트’. 남한에서 가장 맛있는 토스트를 파는 가게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이들 모자는 자신들이 만든 음식에 ‘행운’이라는 이름을 붙여 손님들이게 행운을 나눠주고 싶어했다. 금토일요일에만 영업을 하지만 매출이 100만원을 넘을 정도로 불티가 난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지게차 운전을 하고 주말에는 푸드트럭을 운영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소사씨는 어머니와 함께 열심히 푸드트럭을 운영해 또다른 탈북민들을 돕는 사람이 되려는 새로운 꿈에 부풀어있다. “어머니가 더 나이 들기 전에 꼭 음식점을 차려드리고 싶습니다.” 간절한 소사씨의 꿈이 조금씩 무르익어 가고 있다.

부산=윤정희 기자/cgn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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