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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세월호 7시간과 사회적 신뢰
내가 유럽에서 유학하던 시절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졌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진 것이다. 그 이후 유럽 사회과학의 가장 큰 관심은 과연 붕괴된 사회주의 국가들 내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제대로 정착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됐던 건 시민사회의 착근 가능성이었다. 다시 말해, 시민사회가 착근될 가능성이 크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잘 뿌리 내릴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민사회의 착근 가능성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이른바 ‘사회자본의 맹아’ 유무였다. 즉, 사회자본의 근간이 되는 사회적 신뢰의 씨앗이 그 사회에 존재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시민사회 착근 가능성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렇듯 사회자본 그리고 사회적 신뢰는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정치와 사회를 보면 사회적 신뢰가 거의 망가진 것 같은 느낌이다. 바로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 때문이다. 최순실의 존재를 모르던 시절에는, 많은 이들이 청와대와 정부의 언급을 믿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일 위안부 협상에 있어서 이면합의는 없다는 걸 분명히 말했을 때도 당연히 믿었고, 세월호 7시간의 의혹에 대해서도 적절히 대처하고 있었다는 정부의 발언을 믿었었다.

그런데 이런 언급의 사실 여부를 떠나 그런 믿음이 무색해진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젠 청와대나 정부의 말 하나하나를 검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됐다. 이런 상황은 우리 사회의 사회적 신뢰가 망가졌음을 의미한다.

상황이 이렇게 됐지만, 박 대통령과 그 주위는 아직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것 같다. 헌법재판소에서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자세한 행적을 제출하라고 요구했음에도 박 대통령 측은 제출 시한도 지키지 못했고, 그나마 제출한 내용은 헌재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사회적 신뢰가 이토록 망가진 상태에서, 지금이라도 제대로 대처하고 제대로 대답해야 하는데, 청와대는 영 그렇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만일 청와대 측이 지금의 상황을 억울하다고 생각한다면,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공개변론에 안봉근, 이재만 전 비서관을 출석하게 하여, 헌재에서 당당히 할 말은 하게 해야 하며, 이영선 행정관도 출석시켜 모든 걸 밝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재만 안봉근 두 전직 비서관은 도대체 어디 있는지 모르겠고, 이영선 행정관 역시 도무지 나타나질 않는다. 대통령의 표현대로 ‘엮였다면’, 그 엮인 걸 당당히 풀어야 하는데, 주요 증인들이 도무지 나타나질 않으니 안타깝다는 말이다.

그리고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이념 논쟁으로 이끌려는 듯한 느낌마저 주는 게 현실인데, 이것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박 대통령 탄핵에 대한 문제는 진보와 보수의 이념 문제가 아닌 옳고 그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지금 박 대통령 측의 행동과 언급은 박 대통령을 위해서는 좋은 일인지는 몰라도, 대한민국을 위해서 옳은 일인 것 같진 않다. 지금 대한민국을 위해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할 수 있는 일은 솔직해지고 당당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야만 희미하게 남아있는 사회적 신뢰의 불씨를 다시 살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적 신뢰가 다시 살아나야만 우리나라에서 다시금 시민사회를 논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지금이라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박 대통령의 임무이자 역할이라는 생각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박 대통령의 현명함과 지혜로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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