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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첩·비망록은 특검 ‘최종병기’작성자가 부인해도 증거로 인정
‘물적증거의 왕은 수첩, 진술증거의 왕은 공범 진술.’

법조계에 전해지는 속설이다. 다른 핵심 증거들이 없다 하더라도 이 두 가지만 가지고도 유죄 판단의 주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현재 주목하고 있는 것도 수첩과 공범진술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 안종범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얽히고설킨 관계에도 이러한 속설을 대입할 수 있다. 혐의를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있는 박 대통령과 측근들에게 ‘증거의 왕’을 들이밀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물적증거와 관련 안 전 수석은 업무에 사용한 510쪽 분량의 수첩 17권을 남겼다. 안 전 수석은 박 대통령의 전화가 오면 일단 먼저 수첩에 ‘날림체’로 받아 쓴 뒤 다시 깨끗한 글씨로 정리할 정도로 꼼꼼한 성격인 것으로 알려졌다.

‘적자생존(받아 적어야 살아남는다)’을 충실히 따른 것으로 전해진 김영한 전 수석 역시 200페이지 분량의 업무수첩(비망록)을 남겼다. 박 대통령이 말한 부분엔 령(領)을, 김기춘 전 실장이 말한 부분엔 장(長)이라는 머리글자를 남겼다.

그렇다면 이 물적증거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형사소송법 제315조는 ‘당연히 증거능력이 있는 서류’로 ‘업무상 필요에 의해 작성된 통상문서’를 규정하고 있다.

‘업무상 통상문서’에 대해 대법원은 “정규적ㆍ규칙적으로 이뤄지는 업무활동으로 정보 취득 즉시 또는 그 직후에 이뤄졌고, 기계적으로 행해져 주관적 개입 여지가 없는지 등을 종합해 고려”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안 전 수석의 수첩과 김 전 수석의 비망록은 작성자의 주관이 개입할 여지 없이 기계적으로 작성된 통상문서로 판단될 가능성이 크다. 회의, 혹은 전화통화를 받아 쓴 정황이 드러나며 날짜의 흐름에 따라 차례로 작성됐기 때문이다.

글쓴이가 부인해도 통상문서의 증명력을 이기긴 어렵다. 연속된 기록 중 한 부분만 허위라고 법원에서 보진 않기 때문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월ㆍ화ㆍ수요일 연속된 회의에서 화요일 하루만 거짓으로 기록을 남길 이유가 없다는 의미”라고 했다. 안 전 수석이 혐의를 부인하지 않고 수사에 협조하는 것 역시 이러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김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 역시 마찬가지다. 김 전 수석이 죽기 전에 남긴 마지막 기록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특신상태’ (특히 신용할 만한 정황에 의해 작정된 문서)로 볼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특검은 김 전 수석의 비망록을 토대로 작성 상황을 역추적해 증명력을 더한다는 수사 방침을 세웠다.

김 전 수석의 비망록을 본 사정 당국 관계자들은 “죽은 김영한이 산 김기춘을 잡을 것”이라고 했다.

김진원 기자/jin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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