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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동산 공공연한 비밀 ①] ‘법 밖의 법’…‘인정계약’에 알고도 당한다
-“빌딩거래 90%는 제값보다 더 내”…내년부턴 빌라도 주의보

-정보 비대칭 강한 부동산시장…이 점 악용한 ‘인정계약’ 기승

-주로 토지,빌딩시장서 관행…상가권리금 뻥튀기 배경이기도

-내년부터 주택시장 꺾이면 빌라 중심으로 성행할 가능성 커



[헤럴드경제=박준규 기자] 레몬시장(lemmon market)은 시장에서 질 낮은 제품이 비싸게 팔리는 현상을 일컫는 경제학 용어다. 판매자-구매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 때문이다. 부동산시장도 대표적인 레몬시장이다. 종류가 다양하고 입지, 상태, 가격 등이 천차만별이어서다. 소비자들이 정확하고 풍부한 정보를 손에 쥐고서 구매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온라인 공간이 성장하면서 부동산시장의 정보 비대칭이 크게 개선됐다. 정부와 지자체는 물론 민간업체들도 다양한 부동산 통계를 제공한다.

하지만 사각지대는 여전히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정작업’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나에게 1억원에 처분하고자 하는 땅이 있다고 치자. 중개업자는 나에게 “1억원에 무조건 팔아준다. 대신 더 높은 가격으로 거래를 성사시키면 차액은 내 몫으로 하겠다”고 접근한다. 내가 중개자의 제안을 ‘인정’한다면 중개인은 1억500만원이든 1억2000만원이든 재량껏 매수자를 찾는다. 만약 1억1000만원에 계약을 성사시키면 1000만원은 중개자가 가져간다. 중개수수료도 챙긴다.

이같은 방식은 소위 업브리핑, 순가계약 등의 은어로 불리기도 한다. 중개인이 계약 과정에서 과도한 이익을 가져가는 건 현행법 위반이자 동시에 소비자 기망행위다.

매수자와 중개인의 입을 맞춘 뒤에 시세보다 높은 가격으로 거래를 맺는 ‘인정작업’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정보가 제한적인 토지나 빌딩 거래에서 기승이었는데, 내년부턴 주택시장까지 타겟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강서구 일대 주택가.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토지ㆍ빌딩시장선 오래된 관행=인정작업은 그간 토지ㆍ빌딩시장에선 공공연히 이뤄졌다. 땅이나 건물은 지역이나 입지, 조건에 따라 시세가 제각각이어서 매수자 입장에선 접근하기 어렵다. 그만큼 중개자들이 ‘작업’을 하기가 용이하다.

소규모 빌딩을 전문으로 하는 한 중개법인 관계자는 “매도자가 원하는 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예비 매수자에게 일단 제시한다. ‘업 브리핑’이라고 하는데 이후에 ‘최대한 낮춰보겠다’며 적당한 매도가를 찾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문 투자자가 아니면 해당 부동산의 진짜 시세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다”며 “업계의 관행”이라고 했다.

빌딩 투자를 하는 연예인들은 이런 인정작업에 걸리기도 한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한 빌딩을 매입하며 화제를 모은 배우 A씨는 시세보다 5억원 이상을 더 지불했다. 청담동 빌딩을 사들인 가수 B씨도 2억원 가량 비싼 가격에 계약했다.

차액이 얼마냐는 온전히 중개인들의 역량에 달렸다. 만약 매도자가 원한다면 나눠 가지기도 한다. 중개업계 관계자는 “연예인들은 사생활을 지키고자 여기저기 중개를 의뢰하지 못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라며 “저금리 덕에 지난 2년새 빌딩 거래가 많았는데 정직하게 거래된 건 10%도 안될 것”이라고 했다.

▶권리금 치솟는 이유도=천정부지로 치솟는 상가 권리금도 인정작업의 결과물이다. 영업장의 영업가치 같은 무형의 가치가 반영된 권리금은 ‘부르는 게 값’이다. 중개업자들은 이 점을 노려 권리금 뻥튀기에 나선다. 기존 세입자(양도인)에게 권리금을 얼마큼 받아주겠다고 약속하고, 새로운 세입자(양수인)에겐 권리금을 그보다 높여 불러 차익을 가져간다.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하다가 올해초 문을 닫은 이상일(가명) 씨는 “상가 권리금은 순전히 기획부동산이라고 부르는 업자들이 좌지우지한다”며 “가게를 내놓는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강남에 있다는 컨설팅업체가 ‘권리금 받아주겠다’며 연락하더라”고 했다.

법 밖의 개념이던 상가 권리금은 지난해 시행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에 언급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불어나는 권리금을 제약하는 내용은 없다. 한 업계 관계자는 “부동산에서도 가장 더럽다고 보는 게 창업 쪽이다. 권리금은 무조건 양도자와 중개자의 ‘딜’이 있다”고 했다.

한 온라인 카페에서 ‘빌리 팔아준다’는 홍보글이 올라와 있다. [카페 화면 캡처]

▶내년부터 빌라도 빨간불=내년부턴 주택시장에서도 인정작업이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들이 꼽는 인정작업 ‘0순위’는 빌라다.

환금성이 낮다는 이유에서 주택시장 상황이 위축될수록 빨리 처분하려는 집주인이 늘어날 수 있어서다. 더구나 검색만 하면 시세 정보가 줄줄이 뜨는 아파트와 다르게, 빌라는 정보도 제한적이다. 중개업자 입장에선 최적의 조건이다.

낮은 가격에 나온 매물들을 확보한 뒤에 수백만원 정도를 더 얹어서 거래를 성사시키는 행태가 빚어질 수 있다.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행여나 팔지 못할까 걱정하는 집주인들의 불안 심리를 이용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손해’라고 하며 매물을 내놓을 것을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2~3년 사이 전국적으로 빌라는 우후죽순 생겼다. 올해 말까지 11~12만 가구가 인허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도 14만가구 가량이 인허가를 받았다. 대표적인 ‘빌라촌’인 강서구 화곡동, 은평구 신사동 일대에는 ‘빌라 팔아드립니다’는 전단지들이 나돈다.

n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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