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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훅INSIDE]최순실은 ‘키친 캐비닛’이 될 수 없는 이유
[HOOC=서상범 기자]‘키친 캐비닛(kitchen cabinet)’. 지난 주말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낸 탄핵소추에 대한 답변서에 등장하는 이 용어가 화제입니다. 우리말로 부엌을 뜻하는 키친(kitchen)과 내각을 의미하는 캐비닛(cabinet)이 합쳐진 단어인데요.
박근혜 대통령의 법률 대리인들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대통령의 탄핵소추 답변서에서 키친 캐비닛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HOOC은 키친을 활용한 광고이미지로 유명한 美 캠벨사의 포스터에, 박 대통령이 주장한 키친 캐비닛의 이미지를 구현해보았다

미국 정치권에서 은어로 사용되는 이 용어는 ‘정치인의 사적(私的)인 자문단’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식사자리에 초청받아 담소를 나누며 격의 없는 충고를 건네는 정치인의 지인이란 뜻으로 사용되죠.

지난 18일 국회가 공개한 대통령의 탄핵소추 답변서에서 대통령의 법률대리인들은 이 단어를 사용하며 “최순실씨가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친 것은 ‘국민 눈높이 자문’을 받은 것이라며 이를 속칭 ‘키친 캐비닛’이라고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최순실이란 존재가 국정농단 세력이 아닌, 미국 정치인도 종종 사용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창구’였다는 주장입니다.

이어 대리인단은 ‘백악관 버블’이란 용어도 사용하며 최 씨의 존재를 정당화했습니다. 이 단어는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갇혀 외부와 고립되는 상황을 뜻하는 은어는데요. 
눈에서 레이저를 쏘고 있는 최순실

대리인단은 “대통령이 국정수행 과정에서 지인(최순실)의 의견을 들어 일부 반영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있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즉 최씨의 역할은 ‘청와대라는 버블 안’에 갇힌 박 대통령을 바깥 민심과 연결하는 ‘출구’였다는 주장인 것이죠.

자신에 대한 혐의를 모두 인정할 수 없다는 대통령의 태도와 함께, 최 씨를 키친 캐비닛이라고 지칭한 대리인단의 주장에 대한 비판은 즉각적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한참 웃었다, 내각 어디를 전담했기에 캐비닛이라고 하는가. 프로포폴을 전담한 캐비닛이냐”고 반문하며 “최순실은 키친 캐비닛이 아닌 키친 오퍼레이터(operator)이다. 사실상의 조종자였다”고 질타했습니다.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자신의 트위터에서 “(대통령과 최순실)둘의 관계는 ‘치킨 캐비닛’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국민은 권력을 위임하지 않았다. 치킨들의 키친 캐비닛”이라고 쏘아붙였죠. 

이와 같은 정치권의 반발 외에도 최순실은 키친 캐비닛이 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다시 이 용어에 대한 정의를 살펴봐야 할 것 같은데요.

분명 ‘키친 캐비닛’은 정치인에게 여론을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죠.

이들은 사회적인 명망과 신뢰가 있는 존재로서, 정치인이 이들을 통해 국민의 대의를 수렴한다는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단순하게 정치인과의 친분이 있다고 해서, 진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또 해당 정치인과 어떠한 사적 이해나 정치 관계로도 얽혀 있지 않아야 합니다. 이해 관계가 없다보니, 이들이 정치인에게 전달하는 충고는 문자 그대로 순수한 의견 수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죠.

사전적 의미로도 이들 키친 캐비닛의 구성원들은 식당 안에서는 직위가 아닌, 서로를 성(姓), 퍼스트 네임으로 부르며 수평적인 대화와 토의를 주고 받습니다. 당연히 식당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식당 안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하거나, 정치인과의 관계를 들먹이며 자신의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지 않죠.

그러나 최순실은 어떤가요? 그녀가 사회적인 명망과 신뢰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요? 강남에 수백억원의 건물을 가지고, 수백번의 프로포폴 주사를 맞는 것이 일상인, 그녀의 의견을 국민들의 민심(民心)으로 볼 수 있을까요?

뿐만 아닙니다. 알려진 의혹들에 따르면 최순실은 식당 밖으로 나가는 순간, 그와 그 일가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사력을 다했습니다. 청와대의 식당은, 대통령의 의견 수렴 창구가 아닌, 최 씨 일가의 이익 창출을 위한 창구일 뿐이었죠.

덧붙여 키친 캐비닛이란 용어가 자리잡은 미국의 경우, 대통령은 자신의 키친 캐비닛 명단을 대중에 공개하기도 합니다.

박 대통령 측이 키친 캐비닛이란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아마도, 자신의 결백함과 최순실이란 존재에 대한 일종의 물타기를 위함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깜냥이 되지 않는 비유를 들어, 국민들의 공분만 증폭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지 않나하는 의문만 듭니다.

tig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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