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쉼표] 모자장수
여왕에겐 적어도 일관성은 있었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892년)’의 저자 루이스 캐럴은 그렇게 그렸다. 여왕은 ‘저 놈들의 목을 베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영(令)은 서지 않았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극형 지시가 농담 수준으로 풀이돼서다. 처형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왕은 최소한 악인은 아니었다.

동화 속 문제적 인물론 모자장수(hatter)를 꼽을 수 있다. 일관성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다는 측면에서다. 종잡을 수 없는 세상에서 헤매는 주인공 앨리스에게 모자장수는 거만하다. 시간과 안면(?)을 터 시간을 대리지배할 수 있다고 뻐긴다. 


사진출처=123RF

그러나 그의 시간은 오후 6시에 고정돼 있다. 여왕이 ‘저 놈은 시간을 죽이고 있다. 목을 베어라’라고 지목한 여파다. 모자장수는 “저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폐하”라고 줄을 댔다.

처지에 따라 표변(豹變)한다. 요즘 말로 암(癌)유발자다.

탄핵정국 속 말장난이 가관이다. 여왕ㆍ앨리스ㆍ모자장수를 고안해 동화에서 고급 언어유희를 구사한 루이스 캐럴엔 한참 질 떨어지지만, 실제 상황이라 짚어봄직하다. ‘세월호 참사’ 뒤 34일만에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고 눈물 흘렸다.

안색은 2년 7개월만에 확 바뀌었다. 그는 헌재에 “대통령에게 국가의 무한책임을 인정하려는 국민적 정서에만 기대 헌법과 법률의 책임을 문제삼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라고 했다.

‘키친캐비넷’, ‘백악관 버블’같은 용어로 비선실세에 격(格)도 준다. 법기술자에 기댄 논리는 모자장수의 거드름이다.

계절은 겨울의 한복판에 들어섰는데, 현기증은 가시지 않는다. 앨리스의 키를 망원경처럼 줄였다 늘이는 유리병과 케이크를 강권하는 ‘이상한 나라’에서 우린 아직 빠져 나오지 못했다.

홍성원 기자/hongi@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