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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카페]국가부채 긴축으로 해결하면 망한다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15.2%와 비교해 현저히 낮은 편이지만, 최근 증가속도가 빨라 걱정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올해 국가 부채는 44.8%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일본의 사례를 볼 때 증가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 채무의 적정 수준에 대해선 전문가들간에 이견이 있지만 마크 블라이스 미국 브라운대 국제정치경제 교수는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긴축을 시행하는 나라들에 위험성을 경고한다. 긴축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수준이 아니라 파탄을 몰고온다는 것이다.

그는 저서 ‘긴축:그 위험한 생각의 역사’(부키)을 통해 20세기 초 긴축 재정이 경제와 사회를 어떻게 망가트렸는지 보여주며, 긴축이 우리를 구해줄 것이란 통념을 뒤집어 엎는다.
[사진=긴축/마크 블라이스 지음, 이유영 옮김/부키]

긴축은 임금과 가격, 공공지출 삭감을 통해 국가 경제의 경쟁력을 회복한다는 취지의 자발적 디플레이션 정책이다.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방법은 국가 예산, 부채 그리고 재정적자를 줄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긴축 옹호론자들은 이를 통해 ‘기업신뢰도’를 제고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이는 사실과 다르다. 긴축이 ‘씀씀이가 헤픈’ 국가들이 야기한 ‘국가부채 위기’로 얘기되는 건 오해다. 2010년 그리스를 시작으로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의 소위 국가 부채 위기는 과도한 지출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은행들의 문제라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흔들렸던 은행들을 구제한 결과다. 엄청나게 많은 자산을 보유한 은행들을 그대로 망하게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 경제가 금융자본에 인질로 잡힌 대가였다. 그 결과, 각종 공공 지출의 대규모 삭감을 요구하는 긴축정책은 은행의 책임을 시민들에게 전가시킨 셈이 됐다.

저자는 긴축정책의 효과는 소득분포에 따라 다르게 체감된다며, 긴축정책이 이루어지면 소득분포 하단에 위치한 이들이 최상단에 있는 이들보다 잃는 것이 많다고 지적한다. 최상단에 위치한 이들은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의존도가 훨씬 낮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보유한 부의 총량이 더 크기 때문에 잃는다 해도 견딜 여력을 더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긴축정책의 대가는 컸다. 미국의 후버 대통령은 ‘흥청망청 쓰면서 번영에 이를 수 없다’며, 긴축을 실행했다가 대공황을 낳았다. 영국은 금본위제로의 복귀를 위해 긴축을 수행하다가 수렁에 빠졌다. 일본 역시 금본위제로의 복귀가 문명 표준이라 여기며 긴축을 주장해 경제를 망쳤다. 결과는 나치즘과 군국주의였다. 프랑스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자산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군비조차 축소하는 긴축을 실행했다가 나라를 잃었다. 위기 때 긴축은 더 심한 불황과 위험을 가져온다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런 학습효과에도 불구하고 유럽이 최근 긴축을 강제하는 데에는 절약은 선이고 낭비는 악이라는 도덕적 잣대때문이라고 저자는 본다. 이는 애덤 스미스를 비롯해 공급 중심으로 경제를 이해하는 이들이 오랫동안 기대어 온 논리로 독일 총리 메르켈 역시 긴축을 주장하면서 이러한 논리를 사용했다. 

저자는 또한 긴축정책이 기업을 비롯한 투자자들에게 추가적인 세 부담이 없을 것이라는 신뢰를 주어 투자를 활성화하고 경제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란 논리를 펴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음을 지적한다.

2013년에 쓰인 이 책은 저자의 주장대로 유럽은 2014년에서 2016년 사이, 긴축을 받아들인 국가들은 저성장의 늪에 빠져있고,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고 있으며, 불평등이 심화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는 정치변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의 국민전선,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이탈리아의 오성운동 등 유럽에서 극우, 포퓰리즘으로 기성정치를 흔들고 있다.

그렇다면 긴축 외에 대안의 길은 무엇일까?

저자는 무엇보다 위기의 진원지인 투자은행이라는 모델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투자은행들을 구제하고자 엄청난 재정을 투입하는 대가로 각종 재정정책과 공공지출을 줄이는 것이 경제 전체를 망카트린다면, 당장의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은행이 파산하도록 두거나 투자 은행 모델 자체에 상당한 제약을 가하는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예로 아일랜드는 은행을 국가가 구제해 여전히 천문학적인 비용을 부실 채권을 처리하는데 사용하고 있는 반면, 아이슬란드는 부실 은행을 청산하고 건전한 실업률과 경제 성장률로 회복하는데 성공했다.

국가부채 극복의 방법도 저자는 들려준다. 기본적으로 국가부채는 경제성장으로 극복해야 하지만 당장의 국가 부채를 줄이면서 불황을 이겨내려면 증세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는 무엇보다 공정하다. 위기를 발생시킨 은행시스템을 통해 자산을 늘린 이들과 구제금융으로 위기의 책임을 피해간 이들에게 고통을 분담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과 부채에 관해 막연히 갖고 있는 개념이 실제 어떤 결과를 낳는지 그 허상과 작동하는 방식을 명쾌하고 짚어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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