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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의 흔적’ 덧입은 풍경을 거닐다
청년작가 허수영 개인전
학고재갤러리 1월8일까지



언뜻 보면 거대한 수풀이다. 나무가지와 풀들이 이리저리 엉켜 어지럽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아래 꽃과 나무와 새로 돋을 잎눈도 조용히 자리잡고 있다. 캔버스 안에는 4계절이 담기기도 하고, 등산하며 만난 산의 정경이 중첩되기도 했다. 덧칠에 덧칠을 더해 시간의 흔적을 풍경화로 담았다. 젊은 작가들 중에서도 ‘그림 잘 그리는’ 작가로 꼽히는 허수영(32)의 그림이다.

학고재갤러리는 9일부터 허수영의 개인전을 연다. 2013년 인사미술공간 개인전 이후 3년만이다. 최초 공개하는 ‘1년’시리즈를 비롯 16점이 선보인다. 



허수영의 작업은 ‘덧칠에 덧칠’을 더해 시간의 흔적을 담아낸다. 레지던시 작업실 앞 잔디밭을 그린 ‘잔디 01’은 사실 3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이다. 겨울이었던 레지던시 입주 당시 잔디밭은 모래알갱이 투성의 누런 풀밭이었다. 작가는 그 모래 잔디밭을 그리고 봄이 된 풍경을 그 위에 덧입혔다. 새싹이 난 잔디를 덧그리고, 잡초를 덧그리고, 풀이 시들면 시든대로 낙엽이 떨어지면 낙엽을 더했다. 이렇게 ‘더이상 손을 댈 수 없을 때 까지’그린 그림은 시간의 흔적을 담아냈고 그만큼 깊이감도 깊어졌다.

사실 ‘1년’ 시리즈는 작가의 독특한 작업방식에 대한 일종의 해결책이도 하다. 작가는 “작품할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언제 멈출 것인가’ 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완성’이라고 생각했다가도 일정 시간이 지나 꺼내보면 빈 공간이 보여 다시 작업하기 일쑤였다는게 그의 말이다.

결국 인위적 시간을 끌어들였다. 지난 3년 동안 수차례 레지던시에 선정 돼 정착과 떠남을 반복하면서 레지던시 기간을 작품의 기한으로 활용한 것이다. 레지던시 기간동안 한 장소를 거의 매일 방문해 그곳의 풍경을 한 폭의 캔버스에 겹쳐 1년의 시간을 담았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눈이 내리는 설경, 꽃이 흐드러진 봄날, 짙은 녹음의 여름 그리고 울긋불긋한 가을이 누적돼 있다. 중첩된 색채감과 두꺼운 질감으로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낸다. 분명 특정 공간의 재현이지만 풍경이 아닌 추상에 가깝다.

“이 짓거리에는 끝이 없다. 끝없는 붓질의 고행이 그림의 진실”이라는 작가노트의 말 처럼 회화의 본질에 다가가는 그의 작품은 묘한 떨림이 있다. 전시는 내년 1월 8일까지.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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