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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마도 그 공연] 사실 우린 누구나 ‘함께’이고 싶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연극 ‘고모를 찾습니다’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에그머니나!’, ‘뭐하는 거지?’, ‘으이그…쯧쯧’, ‘또 시작이구먼’, ‘귀엽네…’, ‘그런 사연이 있었구먼…’

2인극이나 화자는 1명이라고 했다. 그런데 연극을 보는 동안 둘이 서로 대화하는 듯한 환청이 들리는 듯하다.

침묵으로 대화를 완성시킨 연극 ‘고모를 찾습니다’는 그만큼 관객과 ‘공감’을 형성하며 무대를 이끌어간다.

예술의전당은 내달 11일까지 ‘고모를 찾습니다’를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다. 이 작품은 곧 세상을 뜰 것 같다는 고모 그레이스의 편지를 받은 조카 켐프가 30년 만에 고모를 방문해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총독문학상을 두 차례나 받은 캐나다의 대표 작가 모리스 패니치가 1995년에 쓴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이미 전세계 26개국 무대에 올라 많은 사랑을 받은 수작으로, 고령화 사회와 노인 고독사 등 우리 사회에도 이미 만연한 문제들을 유쾌하고 담백하게 풀어냈다.


30년만에 찾아온 조카는 오매불망 고모의 죽음만을 기다린다. 둘의 기묘한 동거를 담은 스토리 속엔 ‘외로움’, ‘고립’, ‘고독사’라는 무거운 주제가 유쾌하고 담백하게 자리잡았다.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켐프는 고모의 죽음을 오매불망 바란다. “비가 오네요”, “오늘은 산책을 다녀왔어요” 등 일상적 이야기를 풀어가다가도 갑자기 고모의 장례 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화장으로 해드려요?”, “장기는 어떻게 할까요?”, “고모 물건들을 경매로 팔아 장례 비용을 만들어야겠어요”라고. 심지어 외로움에 지쳐 건강까지 약해졌던 고모 그레이스가 조카의 방문으로 활기를 띄며 건강을 회복하자 “요즘 고모 건강이 걱정돼요. 점점 좋아지고 있거든요”라는 식의 블랙 코미디까지 선보인다.

안타깝게도 켐프의 바람과는 정 반대로 고모와의 기묘한 동거는 부활절, 크리스마스, 새해까지 1년이나 이어진다. 그 사이 켐프의 과거사가 조금씩 드러나며 그의 캐릭터가 구축된다. 켐프는 조울증을 앓았던 삼류 마술사인 아버지와 ‘한손에는 담배, 한손에는 술병을 들고 있어 자기를 돌볼 손이 없었던’ 어머니 밑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켐프에겐 어릴 적 잠시 본 고모는 자신의 인생을 밝혀줄 빛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멀다면 먼 친척인 고모의 편지를 받자마자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한달음에 고모를 찾아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에피소드들이 겹쳐지며 ‘말이 지나치게 많은’ 그와 ‘말이 지나치게 없는’ 그녀는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따뜻하게 보듬어 간다.

연극은 90여분간 길지 않은 시간에 암전을 통한 장면 전환이 36차례나 된다. 짧으면 1분 안팎, 길면 4∼5분. 암흑의 무대를 채우는건 인물들의 감정, 계절, 상황의 변화를 담은 음악이 담당했다. 극은 스타카토처럼 흘러간다.

극 전체 대사의 98%를 담당한 켐프역의 하성광은 캐릭터의 ‘수다스러움’을, “소통의 부재로 말을 안 하고 못해서 뭉쳐있던 것을 고모라는 편안하고 따뜻한 상대를 만나 봇물 터지듯 쏟아낸 것”이라며, “난생 처음 말을 이렇게 많이 하지 않았을까”라고 해석했다. 



그레이스 역으로 2인극 무대에 처음 오른 정영숙은 40년 연기 내공을 보여준다. 표정만으로 그레이스의 내적 심리를 표현하는 것은 물론, 켐프의 대사마저 모두 응대한다. 켐프가 말할 때 그레이스의 반응을 유심히 봐야 극 후반 반전의 의미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



연출을 맡은 구태환은 “현대인이 안고 있는 고립이라는 문제, 문명이 발달할수록 혼자 사는 것이 편리해지면서 문명이 고립을 가속하는 문제를 이 작품에 담아보려고 했다”며, “결국 인간이 인간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냐고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입장권은 3만5000~5만원. ‘문화가 있는 날’인 오는 30일엔 30% 할인한다.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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