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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낙청 교수 “시급한 과제는 총리 교체”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계간 ‘창작과비평’ 명예편집인이 현 시국과 관련, 가장 시급한 과제는 ‘총리 교체’라고 밝혔다.

백 교수는 페이스북에서 ‘담대하고 슬기롭게 새시대를 열어갑시다’란 글을 통해 “현시점의 급선무가 국무총리 교체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부질없는 정교함 아니면 대책없는 강경함으로 인해 해결이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 교수는 사인이 시급한데도 그동안 동안 뒷전으로 밀린 것은 “‘대통령 2선후퇴 이후의 거국내각’이라는 허상에 매달린 야당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실질적인 권력을 선거도 없이 넘겨주기만 한다면 ‘퇴진’ 요구를 안할 수도 있다는 자세였기에 그 ‘2선’이 어디냐는 엉뚱한 문제로 한동안 논의가 겉돌았다”는 것이다.

야3당이 주도해 적합한 인사를 임명토록 하고 인준해 주면 그것만으로도 국민들은 안심해 더욱 담대해지고 정국 안정에도 도움이 될 터인데, 야당이 머뭇거리는 사이 총리의 조속한 교체는 어느덧 새누리당과 청와대의 당당한 의제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백 교수는 야당의 변화를 촉구했다. “야당 스스로 무엇을 잘못해왔고 어떻게 고칠 것이며 국민의 뜻에 한층 부합하는 어떤 실행을 보여줄지를 토론하고 고백하며 변화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비상시국기구 구상과 시민사회 동원과 현재 논의되는 특검과 탄핵소추 등에 다소 걱정스런 입장도 내비쳤다.

그는 끝으로 “박근혜 퇴진은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갈망해온 대전환의 시작에 불과하다”며, “ 100만인의 촛불은 이미 4월혁명과도 다르고 6월항쟁과도 다른 새로운 방식과 풍성한 집단적 지혜를 보여주었다. 그들의 담대함을 내것으로 삼아 남은 길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자고 제안했다.

다음은 백낙청 교수의 글 전문이다.


[담대하고 슬기롭게 새시대를 열어갑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14일 더불어민주당은 드디어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당론으로 채택했다고 합니다. 뒤이어 문재인 전 대표도 ‘조건 없는 퇴진’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대통령과 ‘영수회담’을 하자고 했던 추미애 대표의 결정이 역풍을 맞으면서 일어난 반전입니다. 단독회동을 기획했던 박근혜씨나 추미애씨 모두 이런 사태진행을 예상 못했을 겁니다. 100만 촛불 민심이 내린 퇴진 명령은 그토록 위력적이었습니다. 도도한 물길이 일단 형성되고 나면 개인의 수영실력에 관계없이 그 방향으로 떠내려가게 되어 있으니까요.

11월 12일, 두고두고 기념할 그날의 군중은 평화로우면서도 단호했고 담대했습니다. 대통령의 퇴진이 국가적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고들이 어찌 하나같이 사실무근의 협박만이었겠습니까. 말 그대로의 즉각 퇴진이라면 꽤 심각한 혼란이 뒤따를 수 있고, 세상이 혼란스러울수록 어려운 사람이 더 어려워지는 것도 숱하게 겪어본 현상입니다. 그런데도 모두가 아랑곳하지 않고, 어느 인기방송인의 선창을 따라 “무조건 방 빼!”를 태연하고 명랑하게 외쳐댔습니다. 어차피 획기적인 변화가 없이는 혼란과 불행이 가중되는 일만 남았음을 알기 때문이고, 손해보고 살아온 사람들이 손해보는 인생을 벗어날 길이 이대로는 안 보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순히 ‘질서 있게’ 물러남으로써 혼란을 최소화해줄 대통령이라면 애초에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겠지요. 따라서 단호한 명령을 실행에 옮길 단호하면서도 정교한 계획과 행동이 필요합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국민들의 지상명령을 받들기 위한 정교함이라야지 민의를 외면한 정교한 전략이라면 헛수고로 끝나거나 심지어 용서 못할 교란행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시시각각으로 급변하는 현실에서 너무 정교한 로드맵을 미리 만들어놓고 진행할 수도 없습니다. 어느 특출한 개인이 지침을 내려줄 상황은 더구나 아니고요. 정치인들 외에도 시위현장에서 발언하고 놀이하는 수많은 시민들, 기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활발한 토론을 통해 지혜를 모으고 합의의 수준을 높여가야 합니다. 저도 그 과정에 작은 이바지나마 하고자 몇마디 소견을 적고자 합니다.

시급한 과제는 총리 교체

저는 현시점의 급선무가 국무총리 교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문제도 부질없는 정교함 아니면 대책없는 강경함으로 인해 해결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퇴진했을 때 그의 갖가지 헌정유린 행위에 ‘호위무사’로 복무해온 인사가 권한대행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지요. 그런데도 이 시급한 문제가 그동안 뒷전으로 밀린 것은 ‘대통령 2선후퇴 이후의 거국내각’이라는 허상에 매달린 야당 탓이 크다고 봅니다. 실질적인 권력을 선거도 없이 넘겨주기만 한다면 ‘퇴진’ 요구를 안할 수도 있다는 자세였기에 그 ‘2선’이 어디냐는 엉뚱한 문제로 한동안 논의가 겉돌았습니다. 설혹 2선후퇴를 얻어냈더라도 누구를 총리를 시키고 각료직을 어떻게 나눌지 합의하는 일도 막막했습니다.

그러나 퇴진을 대전제로 삼는다면 총리는 한정된 기간, 한정된 업무에 골몰할 과도내각의 수반일 뿐입니다. 정치권도 지금은 차츰 그런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는 양상이지만, 여전히 ‘무조건 퇴진’ 선언 이후에 영수회담을 통해 인선을 하자는 둥 핵심을 벗어난 논의가 많습니다. 퇴진선언이 안 나오면 이대로 갈 건가요? 영수회담을 않고는 총리인선이 불가능한가요?

국회에서 총리를 추천해주면 그대로 임명하겠다고 대통령은 이미 국회의장을 찾아가 약속한 바 있습니다. (대통령의 약속이라는 게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물건이긴 하지만 퇴진선언을 조건으로 달지 않은 총리지명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물론 그 총리는 대통령 멋대로 생각한 총리이고 자신의 퇴진을 전제한 과도정부 수반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차피 국민의 힘으로 퇴진시켜야 할 대통령인데 그가 어떤 생각을 한다는 게 그다지도 중요할까요. 멋대로 생각하시라 해두고 야3당이 주도하여 적합한 인사--사심이 없고 소통능력과 관리능력을 갖춘 중도적 인사--를 임명토록 하고 인준해주면 됩니다. 그것만으로 국민들은 한결 안심하며 더욱 담대해질 수 있을 것이고 정국의 ‘안정’에도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야당이 머뭇거리는 사이 총리의 조속한 교체는 어느덧 새누리당과 청와대의 당당한 의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대통령의 탈당과 새누리당 지도부의 교체도 당연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원래는 그런 조치가 집권층의 상식적인 정국수습 방안이지만, 지금은 그래봤자 국민의 퇴진명령이 바뀌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버티기를 하고 있습니다. 상식에 어긋나지만 원래 그런 인사들이니까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요. 탈당을 언제 하건 국민들은 개의치 말고 단호하고 담대한 퇴진요구를 지속하면 됩니다. 구체적인 수순이나 시기는 정치현장의 선수들이 그때그때 상황을 봐가며 결정할 일입니다.

야당의 변화도 시급한 현안

그런데 정치현장, 특히 야권의 선수라는 사람들이 크게 바뀌는 일 또한 시급한 현안입니다. 추미애 대표의 최근 행동으로 그 점이 부각되긴 했습니다만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작금의 새삼스러운 사태도 아닙니다. 당대표, 원내대표 그리고 당의 유력한 대선후보로 꼽히는 전 대표를 포함한 제1야당 지도부는 촛불민심에 대해 오랫동안 ‘책임있는’ 거리두기로 일관했습니다. 실은 최순실 국정농단의 진상이 본격적으로 밝혀지기 이전에도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과 무책임을 통감하고 있었지만 ‘야당이 하면 뭐가 나아질까’ 하는 의구심으로 참아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참다 참다 못해 이제는 ‘무조건 방 빼’를 외치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제1야당이 자기네는 잘못한 것도 없고 고칠 것도 없으니 정해진 틀에 맞춰 내놓는 대통령후보를 국민들이 찍어주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면 ‘너희들도 방 빼’라는 함성이 곧 터질지도 모릅니다. 야당 스스로 무엇을 잘못해왔고 어떻게 고칠 것이며 국민의 뜻에 한층 부합하는 어떤 실행을 보여줄지를 토론하고 고백하며 변화해야 할 것입니다.

이 또한 구체적인 일정이나 방안은 현장에서 결정해야 합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두가지입니다.

비상시국기구 구상과 시민사회

하나는 전국적 퇴진운동을 통해 야3당과 시민사회가 함께하는 ‘비상시국기구를’ 만든다는 민주당측의 구상에 대해서입니다. 저는 이런 기구가 전혀 의미가 없지는 않으리라 봅니다만, 이것이 야당이 본질적으로 안 바뀌면서 바뀌는 시늉을 하는 데에 시민사회를 동원할 가능성을 먼저 경계해야 합니다. 또한, 설혹 그게 아니더라도 이런 기구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한정적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시민사회 측에서는 너무 크게 비중을 두고 매달릴 건 아니며, 시민사회의 주도력을 높이는 더 중요한 다각도의 작업들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고 믿습니다.

다른 하나는 2015년 문재인 당대표 시절 당 내분수습의 한 방안으로 제시됐던 이른바 ‘문ㆍ안ㆍ박 연대’에 대한 생각입니다. 문대표의 그 제안은 안철수 의원의 거부와 뒤이은 탈당으로 간단히 무산됐지만 사실상 처음부터 별로 설득력 있는 구상이 아니었습니다. 첫째 당의 대단합을 위해 제안했지만 대선후보 여론지지율 1, 2, 3위 인사들끼리 권한을 나누자고 했으니 소외되는 세력이 너무 많았고, 둘째로 당면목표가 20대총선에 대한 공동대응이었는데 박원순 시장은 선거운동과 당 운영에 깊이 개입할 수 없는 자치단체장 신분이었으며, 무엇보다 문재인씨가 법적인 대표로 있으면서 나머지 두분과 당권을 공유하겠다고 하니 누구더러 들러리 서라는 거냐는 의구심을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2016년의 현시점에서 보면 비록 안철수씨가 따로 당을 만들었고 손학규씨도 떠났지만 민주당의 남은 유력 대선후보 댓명만 모여도 당내의 꽤나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형국입니다. 게다가 문재인씨는 이미 대표가 아니며 대선후보들이 당의 공동대표가 되자는 것도 아니므로, 그들이 모이면 조기에 치러질 가능성이 높은 차기 대선을 앞두고 당이 어떻게 국민을 더 잘 섬기고 나라를 더 잘 이끌지에 관해 기탄없이 토론하고 국민과 소통하며 당의 공식 기구에 대해서도 일정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안철수, 손학규씨까지 포함하는 초당적 모임이 된다면 더욱 좋고, 그럴 경우 시민사회의 참여도 한층 의미있는 것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특검과 탄핵도 하기 나름

퇴진을 거부하는 대통령을 압박하고 여차하면 면직시키는 수단으로 특검과 탄핵소추가 있습니다. 둘다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너무 걸리며 기대하는 성과가 안 나올 수 있다는 걱정들을 합니다. 특검법대로 120일에 걸친 수사를 하고 거기서 구체적인 범죄사실이 밝혀졌을 때 그걸 근거로 탄핵을 발의해서 또 180일 기한의 헌재 판단을 기다린다는 ‘준법정신’에 충만한 자세라면 4ㆍ19 직후 김수영 시인이 말했듯이 “기성 육법전서를 기준으로 하고/ 혁명을 바라는” 바보짓이 될 겁니다(「육법전서와 혁명」). 하지만 국민의 단호한 명령을 이행하는 보조수단으로 활용하기로 치면 이야기가 달라지지요.

특히 탄핵과 관련해서는 국회에서 몇표가 필요하고 헌재에서 또 몇표가 필요한데 그게 되겠느냐는 걱정도 많습니다. 여당의 한 유력인사가 ‘하야 대신에 탄핵’을 하자고 하니 그런 의구심이 더욱 커지지요. 그러나 탄핵발의를 언제 할지는 현장의 선수들에게 맡기더라도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단호한 퇴진명령을 받드는 하나의 수단으로 헌법의 탄핵조항을 활용하겠다는 의지입니다. 게다가 거듭 말씀드리지만 상황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중입니다. 대통령을 탄핵해야 할 사유가 이제까지 나온 것만으로도 넘칩니다만 자고나면 또 터질 사안들이 아직도 많이 남았기 쉽습니다. 새누리당 의원이든 헌재의 일부 재판관이든 대통령 자신이든 실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요. 담대함을 잃고 지레 포기할 일은 아닌 것입니다.

4월과도 다르고 6월과도 다른 대전환의 시작

너무나 뻔한 이야깁니다만 박근혜 퇴진은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갈망해온 대전환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 첫 단계를 어떻게 넘어가느냐에 따라 다음 단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100만인의 촛불은 이미 4월혁명과도 다르고 6월항쟁과도 다른 새로운 방식과 풍성한 집단적 지혜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의 담대함을 내것으로 삼아 남은 길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십시다.

11/16 백낙청 드림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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