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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133. ‘특별한 인연’ 말라가…“반갑다, 맥도날드”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모로코 쉐프샤우엔에서 만난 인연들 덕분에 스페인 말라가(Malaga)로 오게 되었다. 자신들도 여행 중이면서, 굳이 비어있는 아파트 빌려 줄 테니 꼭 말라가에 가라고 권하던 해맑은 얼굴들이 아른거린다. 느닷없는 동양여자의 출현에 버지니아의 아버지 후안과 그 이웃들은 미소와 친절을 잃지 않는다. 유쾌하고 친절한 안달루시아의 기운이 그대로 전해져 저절로 웃게 된다. 후안이 준비해 놓은 과자에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열쇠꾸러미를 들고 아파트를 나선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열쇠를 주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그 친절함, 순수함을 선뜻 받는 나는 과연 자격이 있는 것일까?

주택가를 돌아 시내로 나가는 노선이라 정류장이 가깝고 편리하다. 중심가 근처에 교통량이 밀집해 있어서 버스타고 내리기엔 좋다. 게다가 다음 정류장 이름이 버스에 표시되니 묻지 않아도 정류장 이름만 알면 된다.

버스에서 내려 걷다가 맥도날드를 발견한다. 배는 고프지 않지만 이곳이 반가운 이유는 무료 와이파이를 쓸 수 있어서다. 버지니아의 아파트는 모든 것이 완벽하지만 단 한 가지, 주인이 상주하고 있지 않은 관계로 인터넷을 쓸 수가 없다. 말라가에 대한 정보라고는 마리아와 버지니아가 수첩에 정리해준 것뿐이라 맥도날드에 들어가 일단 정보검색부터 한다.

오후 6시가 넘은 시각에서야 말라가의 구시가인 센트로(Centro)지구로 들어선다. 각종 의류, 화장품 등의 현대적인 매장이 들어서 있는 아름다운 거리에 깜짝 놀라게 된다. 말라가는 상상하던 것보다 엄청나게 큰 도시다. 센트로 지구는 관광명소라더니, 바닥에는 대리석이 깔려있고 대성당, 로마시대 유적, 이슬람 유적들이 근처에 줄지어 있는 곳이다.

오늘은 잠깐 둘러보는 기분으로 시내로 나왔을 뿐인데 공휴일이라 사람도 많고 관광객도 많다. 아름다운 거리를 따라 걷다보면 새로운 풍경이 나타나 마음을 빼앗는다. 단체 관광객인 듯한 노인들이 노천 카페에 앉아 왁자지껄 맥주를 마시는가 싶더니 놀랍게도 즉석 아카펠라 공연이 펼쳐진다.

행인들이 멈춰 서서 거리에 넘쳐흐르는 화음에 귀를 기울인다. 말라가라는 도시에 대해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오게 된 나에게는 이 하모니가 환영의 합창으로 들린다. 서있는 청중들의 박수에 다시 한 곡이 시작된다. 나이 지긋한 분들이 부르는 생기 가득한 합창이 골목에 메아리친다.

합창이 끝나고 발걸음을 돌려 피카소 미술관 앞을 찾아간다. 마리아가 내 수첩에 “말라가에서 가야할 곳 - 레스토랑편”에 적어놓은 토르메스(Trmes) 레스토랑을 찾아간다.

주문을 하고나서 웨이터에게 몇 년 전에 이곳에서 일했던 마리아를 아느냐고 묻는다. 웨이터는 무슨 말인지 모르는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하긴 마리아라는 이름은 너무 흔하다. 아이패드에 저장된 마리아의 사진을 보여주니 그제야 안다며 웃는다. 그녀가 지금 모로코에서 휴가 중이고 나와는 그곳에서 만난 친구라고 이야기하니 그는 너무 부러워한다. 혼자가 아니라 마치 마리아와 버지니아가 옆에 있는 것 같아 웃음이 난다. 피카소 미술관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맥주를 들이킨다. 

날이 저물면서 휴일의 밤을 즐길 사람들이 하나둘 커다란 레스토랑과 거리의 노천 카페에 모여든다. 아홉시는 되어야 저녁식사를 시작하는 사람들이니 해지는 거리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뉘엿뉘엿 해지는 센트로를 산책한다. 유리를 통해 로마유적이 보이도록 만들어 놓은 작은 피라미드 앞에서는 클래식 연주가 한창이다. 아름다운 선율은 행인들을 불러 모은다. 유적 앞에서 버스킹으로 이 멋진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이 도시가 좋아진다.

아름다운 구시가의 고즈넉한 건물 일층의 각종 매장에 불이 켜진다. 그렇지 않아도 대리석이라 반들거리는 바닥은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에 환히 빛난다. 다른 날과 달리 돌아다니면서도 시계를 본다. 막차를 놓치지 않도록 너무 늦지 않게 귀가해야 한다. 

아름다운 곡선 끝에 매달려있는 신호등과 야자수가 잘 어울리는 말라가의 풍경은 이색적이다. 미리 가지 않았으면 막차를 놓칠 뻔 했다. 거의 막차인 버스는 여행자의 것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하루가 버스에서 저문다. 오늘 첫 날이라 내리는 정류장을 잘 보아야 하는데 가다보니 거의 다 도착한 시점에서 길이 조금 달라진다. 아무래도 오가는 버스노선이 마지막에 달라지는 것 같아 대충 버스에서 내린다. 대강 방향만 잡고 걷다보니 아파트 밀집 지역이라 복잡해서 길을 잃는다. 분명히 방향은 맞는데 아까 나올 때 눈에 익힌 버지니아의 아파트는 나오지 않는다. 그 사이 해가 져서 캄캄해진 거리는 한산하다.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걱정은 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집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많은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개를 산책시키러 나온 남자에게 주소를 보여주고 길을 묻는다. 그도 잘 모르는 주소지만 핸드폰으로 검색까지 해서 친절히 길을 알려준다. 이제는 길을 잃어야 여행하는 맛이 난다면 과장일까?

드디어 버지니아의 아파트에 도착한다. 아파트 건물과 중문과 집까지, 세 개의 열쇠를 사용하고서야 집에 들어간다. 아무도 반기지 않는 집이지만, 마음은 여행 중의 그 어느 때보다 편하다. 넉 달이 넘는 떠돌이 생활에서 내 집 같은 안정감은 처음인 것이다. 처음부터 그랬지만 말라가와는 정말 특별한 인연이다.

정리=강문규 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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