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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로이의 여인들, 판소리를 만나다
-여인들의 사랑·배신·분노·상실 등 비극적 감정 판소리로 극대화…창극 ‘트로이의 여인들’11일부터 무대에…‘헬레네’남자로 파격변신


고대 그리스의 시인 에우리피데스의 ‘트로이의 여인들’이 판소리를 입고 재탄생했다.

국립극장(극장장 안호상)과 싱가포르예술축제가 공동제작하는 국립창극단(예술감독 김성녀) 신작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이 11일부터 오는 20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 오른다. 



싱가포르 출신의 연출가 옹켕센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장 비극적 작가’라고 평가한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에 판소리 특유의 극한 감정표현을 결합해 원본의 비극성은 극대화하는 한편, 시대적 장식요소를 배제해 사랑, 배신, 분노, 상실 등 가장 기본적인 감정을 날 것 그대로 끌어냈다. 그는 “판소리는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공연 장르 중 하나”라며 “그리스 연극에서 그린 전쟁의 비극,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여인들의 삶에 초점을 맞췄고, 판소리로 감정을 풀어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연출가의 의도대로 ‘트로이의 여인들’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했다.

가장 큰 파격은 ‘인간이 낳은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이자 트로이 10년 전쟁의 발단으로 꼽히는 ‘헬레네’를 남자가 연기한다는 점이다. 헬레네역은 ‘창극 아이돌’로 불리는 소리꾼 김준수(25)가 맡았다. 


옹켕센 연출은 스파르타의 왕비였지만 트로이 왕자와 사랑에 빠져 고향을 도망쳐온 헬레네가 사실은 아무곳에도 속할 수 없는 이방인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이곳(트로이)에도 저곳(스파르타)에도 속하지 못하는 헬레네의 상황을 제 3의 성으로 설정하고, 다른 여인들과 차별화 될 수 있도록 남성 소리꾼을 캐스팅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무대위의 헬레네는 분명 남성적 목소리를 내지만 외모, 자세, 스타일 모두 절세미녀의 그것이어서 남자가 헬레네를 연기한다는 느낌이 없었다. 남장여자가 아닌 ‘아름다움의 결정체’헬레네의 모습이었다. 김준수는 “여성 캐릭터라 고민이 많았지만, 안숙선 선생께서 ‘판소리 춘향가를 완창할 때 남자 소리꾼이 춘향이 되어 소리도 하고 발림도 하지 않느냐’는 조언에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배남식 작가는 원작인 에우리피데스 ‘트로이의 여인들’과 장 폴 사르트르의 1965년 동명작품을 바탕으로 창극 극본을 다시 썼다. 한국 판소리의 거장 안숙선이 작창을, 작곡과 음악은 정재일 감독이 나섰다. 이번 공연에서는 소리꾼과 고수가 판을 이끌어가는 판소리 형식이 그대로 살아있다. 합주보다 악기 하나와 소리꾼이 짝을 이루며 극을 채운다. 트로이의 마지막 왕비인 헤큐바엔 낮고 중저음인 대금이, 아이 잃은 엄마인 안드로마케에겐 슬픔 가득한 아쟁이, 적장의 아내로 팔려가는 트로이의 공주 카산드라에겐 대금이 어우러진다. 이방인인 헬레네는 서양악기인 피아노가 짝이다. 정재일 감독은 “서양음악을 작곡하는 사람이 국악을 서양식으로 해석하려고 들면 그 맛이 모두 사라진다”며 “안숙선 선생의 작창을 최대한 살리면서 보조하고, 설명하는데 치중했다”고 말했다.

부드러움 속에 강인함을 지닌 헤큐바 역은 김금미가, 트로이 군대의 수장이자 왕자였던 남편 헥토르를 잃고 아들을 지키는 안드로마케는 김지숙, ‘태양의 신’아폴론과 적장 아가멤논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카산드라는 이소연이 연기한다. 입장료는 2만~5만원.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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