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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교육기적 일구는 ‘괴짜쌤’
평범한 기술교사서 가수·국내 1호 모험상담가로
금연송·게임송으로 흡연·게임중독 확 낮춘 방승호 교장의 ‘별난 교육론’




교장실이란 단어는 잘못한 게 없는 학생들도 긴장하게 하는 기묘한 힘이 있다. 하지만 서울아현산업정보학교 교장실은 다른 교장실과는 사뭇 다르다.

다가갈수록 고소한 뻥튀기 냄새가 코를 찌른다. 방송국 세트장 느낌인 교장실은 마이크, 기타와 호랑이 얼굴 등 우스꽝스러운 탈들로 가득하다. 사방에 붙은 수백 개 노란색 포스트잇에는 전교생 아이들 꿈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초코파이 등 간식도 먹을 수 있다.

모두 국내 1호 모험상담가이자 히트곡 가수이기도 한 이 학교의 방승호(55) 교장이 일궈낸 변화다.

지난달 인터뷰를 위해 서울 마포구 아현산업정보학교를 찾았을 때 방 교장은 등산복을 입고 형광 파마 가발을 쓴 채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기타를 쳐 달라”는 제자들의 요구에 망설임 없이 노래를 부르고 “선생님 짱”, “대박” 등의 외침을 듣는 모습에 권위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김동환(18) 군은 “이렇게 아버지 같으면서 ‘괴짜’인 교장 선생님은 우리나라 통틀어 이 분 밖에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호객행위’하는 괴짜 선생님=아이들 사이에서는 ‘모르면 전학생’인 방 교장의 괴짜 기질은 매년 첫 학기부터 빛을 발한다. 방 교장은 3월이 되면 ‘호객행위’를 벌인다. 매일 20곳 넘는 교실을 모두 찾아가 창문을 열고 “얘들아,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소리친다. 이어 “교장 선생님 방승호라고 해. 앞으로 잘 지내자”며 손을 내민다.

2~3주가 지나면 작전을 바꾼다. 호랑이 탈을 쓰고 엉금엉금 돌아다니며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어흥”하고 달려든다. 본격적으로 같이 노는 거다. 이때부터 “교장실에 놀러 오면 커피ㆍ초코파이도 무한 리필이니 언제든 오라”는 말도 슬쩍 흘린다.

“매일 70~80명의 아이가 교장실에 와 마음껏 떠드는 모습을 보려면 천천히 벽을 허물어야 해요. 특히 우리 애들처럼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에게는 더 조심스레….”

아현산업정보학교는 일반계 고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1년간 위탁교육을 해주는 특성화 학교다. 입학하는 아이들은 음악, 미용 등 예체능 위주 수업을 들으며 학기 초 방 교장의 명함을 받는다. 명함 앞면에는 모험상담가ㆍ교장이라는 말이, 뒷면에는 ‘가수 방승호’와 지금까지의 히트곡이 적혀 있다.

방 교장은 명함을 주며 “언제든 상관없이 ‘카톡’해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때문에 요즘도 스마트폰은 밤낮없이 아이들의 ‘카톡’으로 불이 난다. 보기만 해도 미소짓게 하는 탈을 쓰고 돌아다니는 ‘괴짜 쌤’은 이렇게 진심어린 스킨십을 주고받는 사이 점차 아빠처럼 변한다.

“그때부터 진정한 교육이 시작되는 거죠. 얼마나 재미있어요.” 방 교장은 “이때부터는 내가 학교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난다”며 웃었다.

▶“중1 때 기타 사주신 어머니 덕…엇나가지 않아”=“제가 자유분방한 교육을 추구하는 이유는 어머니 영향이 제일 큰 것 같아요.” 방 교장은 중학교 1학년, 모닥불 앞에서 기타를 치는 형들의 모습에 속된 말로 ‘뻑이 간’ 이후 어머니에게 무작정 기타를 사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만류할 줄 알았던 어머니는 앞장서서 방 교장을 가게로 데려갔다. 그는 “당시 기타는 술ㆍ담배만큼이나 학생들에게 해롭게 취급되던 시절”이라며 “넓은 이해심으로 자유롭게 키워주신 덕에 오히려 엇나가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방 교장의 신념은 모험상담을 접하며 더욱 굳어졌다. 처음 모험상담을 접한 건 1998년 미국 연수에서였다.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숲속에서 10일간 익힌 모험상담은 그의 인생을 바꿨다.

이전만 해도 1988년 이후 줄곧 교편만 잡아 온 평범한 기술교사였다. 전구 하나 갈 줄 몰랐지만 웃기게 가르치는 재주 하나로 학생들에게 인기를 얻던 시절이었다. “모험상담이란 상담자ㆍ내담자 간 놀이를 하며 자연스레 속마음을 주고받는 기법이죠. 세상에 그렇게 재미있는 것이 있는 줄 처음 알았어요. 그냥 미쳐버렸죠.”

그의 표현대로 모험상담에 미친 채 귀국한 방 교장은 2003년 한서대 대학원에서 모험상담으로 국내 1호 박사 학위를 땄다. ‘기적의 모험 놀이’, ‘우리집 모험 놀이’ 등 전문 서적도 다수 펴냈다.

▶학생들의 날개를 달아준 모험상담=“그런데 모험상담이 어떻게 이뤄지는 거예요?” 갑자기 모험상담 과정이 궁금해졌다. 그러자 방 교장은 눈을 감아보라고 손짓한다. 눈을 뜨자 그는 “두 손바닥 중 동전을 숨겨놨는데 어디 있는지 꺼내보라”며 대뜸 손을 내민다. 왼손을 뒤집으려 하자 1분가량 웃음 섞인 실랑이가 벌어졌다. 힘을 주는 통에 뒤집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땀을 빼며 동전을 꺼내자 방 교장은 그제야 “모험상담 첫 단계는 놀이로 접촉하는 것”이라며 “1분도 되지 않지만 그사이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눈 것처럼 가까워진다”고 했다. 방 교장은 직접 개발한 2ㆍ4ㆍ16인용 등 3000여 개의 모험상담 놀이를 토대로 학생들과 상담을 진행한다.

어느날 한 제자의 어머니가 방 교장에게 찾아왔다. 어머니는 함께 온 아들의 손을 그에게 쥐어주며 “제발 우리 아들 졸업만 하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당시 중학생이던 제자는 ‘게임 과몰입’에 약간의 ‘약물 의존’ 증세도 보이는 듯 했다고 방 교장은 회상했다.

“학교에 오지 않으면 아이 집으로 찾아가 모험상담을 했죠. 처음에는 제 괴짜 기질 때문인지 경계하던 아이가 수차례 모험상담 끝에 마음을 열었어요.“ 결국 중학교 졸업을 걱정하던 그 제자는 대학까지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방 교장은 “특별한 것이 기적이 아니다. 이상하게 보일 수 있는 이러한 교육이 매번 기적을 일궈가고 있다”고 말했다.

▶“담배ㆍ게임 과몰입…해결책은 음악”=방 교장는 실제로 앨범을 낸 ‘가수’이기도 하다. 시도 때도 없이 부르는 노래는 그를 더욱 ‘괴짜’로 보이게 했지만 생각도 못 한 업적(?)을 일구도록 도와줬다.

수년 전 서울 중화고 교장으로 있을 때 교장실에 한 여학생이 찾아왔다. 화장실에 담배 냄새가 심해 양치질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방 교장은 다음날 여자 화장실 앞에 섰다. 기타를 치며 생각나는 대로 노래를 불렀다. “다 되는데 담배는 안 되는 것 같다/ 이놈의 자식들 혼을 내야지만/ 막상 보면 천진한 얼굴….” 작곡가 안영민ㆍ가수 김그림 씨와 함께 만들어 온라인 실시간 검색어 100위 안에도 들었던 ‘노 타바코(No Tabaccoㆍ금연송ㆍ2014년)’가 만들어진 순간이었다.

더 뿌듯한 건 교내 담배꽁초가 ‘확’ 줄었다는 교사들의 전언이었다. 방 교장은 “이 노래를 수만 번 부르는 사이 학교 흡연율이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지금은 버스킹 그룹을 만들어 아예 거리공연도 펼칠 지경”이라고 했다.

그는 이제 음악을 통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는 게임이다. ‘돈 워리(Don’t Worryㆍ게임송)’란 이름으로 이달 중 선보일 노래는 그간 게임 과몰입 아이들과 모험상담에서 오간 내용이 가사에 그대로 들어간다.

인터뷰를 하다 말고 갑자기 방 교장은 기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능숙하게 기타를 치며 ‘금연송’과 ‘게임송’을 불렀다. “하루 종일 앉아 게임만 하는 것 그것이 전부였어/ 따가운 시선과 지겨운 잔소리 하지만 후회 없어 너라면 할 수 있어/ 내가 뒤에 있을게….” 방 교장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즉석 공연을 마친 후 “금연송도 먹혔는데 게임송도 안 될 리가 없다”며 웃었다.

▶“학교 PC방 개설,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냐며 혼났지만…”=아현산업정보학교에 처음 왔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학생들의 게임 과몰입을 없애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는 고민 끝에 보란 듯이 학교에 PC방을 만들어버렸다.

“학부모들은 아연실색했죠. 하지만 모험상담을 하다 보니 아이들이 몰래 게임을 하고, 그 때문에 피해의식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당당히 학교에서 게임을 시키면 분명 나아질 게 있을 거라고 믿었죠.”

아이들의 변화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몰래 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사라지니 공격성이 줄었다. 마음 놓고 몰입하니 집중력도 좋아졌다.

방 교장은 기세를 몰아 게임으로 영어와 인문학을 가르치는 수업을 개설했다. 제자들과 함께 게이머 지망팀을 창단하며, 보드게임 제작 프로젝트도 진행하는 등 ‘말도 안 되는 일’을 계속 벌였다.

방 교장은 “지금은 프로 e스포츠단에서 보고 싶다며 먼저 연락이 온다”며 “아이들 또한 70% 이상이 자기 꿈을 찾고 대학에 간다”고 했다. 이어 “얼마 전에는 독일 보드게임 박람회에 초청받아 아이 2명이 독일을 다녀오기도 했다”고 밝혔다. “눈높이에 맞춰 진심으로 다가간 결과”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 뿌듯함이 묻어나왔다.

방 교장은 아이들이 슬며시 다가와 “그때 모험상담 한 이후로 지각 한 번도 안 했어요”라며 작은 변화를 털어놓는 모습을 보면 절로 신바람이 난다고 했다. 그럴 때면 “짜식(?)들, 내가 너희들 때문에 살고 있는 거 알지?”란 말을 빼놓지 않는다.

방 교장은 자신을 ‘B급 교장’, ‘B급 가수’라고 취급한다. 그러면서 “내 마음대로 아무 곳에 수십 년을 매달리다 보니 전문가라고 명함도 내밀고 행동할 힘이 생겼다”며 앞으로도 계속 도전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랐다. “지금 아이들을 보면 모두 싸이ㆍ서태지 같은 재능을 가진 것 같습니다. 내가 더 망가지는 한이 있어도 모두 최고의 자리로 올려주고 싶습니다.”

방 교장의 좌우명은 ‘선빵ㆍ후조치’다. 그는 “될까 말까 고민될 땐 일단 지르고 보자는 뜻”이라며 웃었다.

이원율 기자/yul@heraldcorp.com

사진=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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