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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2년전 가을, 그와 악수했다. 해외 순방에 동행하려고 탄 대통령 전용기에서다. 이륙 직전, 그와 청와대 출입기자가 하는 통과의례다. 차례가 왔다. 소속사ㆍ이름을 말하자 그는 “잘 보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뜨끔했다. ‘무슨 기사를 마음에 담아둔 건가’ 짧은 시간, 흔들렸다. 졸필(拙筆)을 언급한 건 그저 인사치레라고 넘겼다.

‘전용기의 추억’을 복기한다. 그에게 불편했을 글이 몇 개 있긴 했다. 장관ㆍ수석비서관에게서 대면보고를 받지 않는다는 소식에 ‘대통령은 혼자 지내는 연습을 더는 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 게 그런 류(類)다. 특별할 게 없다. 모든 언론이 비슷한 충고를 했다. 중요한 건 그런 여론을 그가 직접 보고 들었을텐데도 불변했단 점이다. 아니면 단 한 글자도 읽지 않았던 거다. 그가 공식석상에서 했던 발언에 밑줄치며 분석했던 추억은 그와 ‘비선실세’ 최순실의 내밀한 왕래, ‘국정운영 콜라보’ 덕분에 불쾌한 과거로 남게 됐다.

그의 국무총리들은 어떤 추억을 갖고 있을까. 거론하기 민망한 사례가 널렸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자리가 시궁창에 처박힌 듯 만신창이가 됐다. 황교안 총리의 어정쩡함을 생각하면 안쓰럽다. 그가 “대면보고 늘려 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라고 쏘아붙이던 작년 1월 기자 회견장엔 황 총리가 법무부 장관 신분으로 앉아 있었다. 영상을 자세히 보면, 황 장관은 터저 나오는 기침을 제어하려 손수건으로 입을 연신 틀어 막는다. 행정수반에게 누를 끼치지 않겠다는 모습은 사투에 가깝다. 그 해 봄, 황 장관은 총리로 지명된다. 그 총리는 얼마 전 문자 메시지로 사실상 해고 통보를 받았다. 국정농단 파문으로 코너에 몰린 대통령이 자기 사람에게 내린 처방이 이런 식이다.

그는 위기 모면 카드로 김병준 교수를 총리 내정자로 택했다. 야권을 배제한 채 지명했기에 사달이 났다. 김 내정자는 선의가 어찌됐든 권력욕에 눈먼 사람으로 인식하는 대중이 적지 않게 됐다. 순서가 뒤바뀐 해법을 내고, 언론이 릴레이식 의혹을 제기하면 마지못해 ‘뒷북 사과’를 하는 행태의 희생양들이다.

그는 ‘2선 후퇴’와 국회 추천 총리의 권한을 어디까지 인정하겠다는 말을 본인이 직접 하지 않는다. 청와대 참모의 입을 통해 의중을 판독하게끔 놔두고 있다.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반(反) 헌법적으로 사인(私人)과 나눠 쓰고, 이제와선 합헌적 권한 뒤에서 연명하기 위해 정치공학을 갖다대고 있는 걸로 비친다. 오락가락 야권도 문제지만 진심이 가려진 대통령, 이게 민심을 성나게 하는 지점이다.

판을 뒤집은 도널드 트럼프의 제45대 미국 대통령 당선은 국내 보수세력 결집의 도화선이 돼 그에게 기사회생의 여지를 줄 것인가. 최근 인터넷을 강타한 ‘대구 여고생 자유발언 동영상’ 시청을 그에게 권한다. 가녀린 여학생은 외친다. “그녀가 있을 때에도 국정이 제대로 돌아간 적이 있기는 했습니까. 도대체 당신이 만들고 싶었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당신이 되고자 했던 대통령은 어떤 사람입니까” 추억은 명백히 다르게 적히고 있다. hon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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