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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가보지 않은 길…중간 부재의 사회를 살며
‘역대 최저’, ‘사상 최고’ 기사는 이처럼 극단을 지칭하는 단어들을 선호한다. 의미 부여가 돼야 기사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어도 기사에는 중간 지대가 설 곳이 적다. 애매모호하게 중간지를 지향하는 기사를 썼다가는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그저 그런 기사를 썼다는 비판에 직면하곤 한다.

포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이제는 기사가 여론을 좌우하는 시대가 아니라 하는데. 이상하게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역대급’ 이라는 단어가 자주 들린다. 몸담아 취재하고 있는 금융의 영역도 다르지 않다.

기준금리는 연 1.25%의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 중이다. 가계부채는 1300조원에 육박하며 역대 최고치를 연일 갱신하고 있다. 또 상반기 활발하게 진행된 조선ㆍ해운 등 취약업종 구조조정 여파로 상반기 국내 대기업에 대한 은행권의 부실채권 규모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역대 최저 금리의 덕에 올해 전국 아파트의 평균 청약경쟁률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팍팍해진 살림 덕에 지난해 보험사기 적발액은 6549억 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마치 자석이나 된 것처럼 양 극단을 가리키는 통계치들을 검색만으로도 손쉽게 접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극단만 있고, 중간이 없는 사회. 각각의 통계가 가리키는 바는 다르겠지만, 궁극에는 양극화의 심화를 나타내는 증거들임은 분명하다. 이를 두고 급격한 고령화와 저성장, 저물가, 저금리가 일상화된 상태인 뉴노멀의 사회라 표현하며 국가 전체의 비상 플랜을 요구하는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하지만, 더욱 염려스러운 건 경제 구조에서 이뤄지는 부의 양극화가 아닌 듯싶다. 부의 양극화가 사회 전체의 의식과 영혼의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우려에서다.

경제적 약자는 스스로의 생존권을 지키고자 부를 거머쥔 강자를 부정하고, 강자는 약자들의 나약함과 이기심을 탓한다. 최근 일련의 파업과 조선ㆍ해운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기저에는 모두 이런 사회의식의 양극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판단이다.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고사하고, 서로를 무너뜨려야 내가 살 수 있다는 극단의 이기심이 사회 전체에 팽배한 모습이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체 모를 ‘합리적 중도’를 표방하고 나서는 것도 극단에 치우친 사회의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는 방증이 아닐까.

더욱 서글픈 건 이런 극단의 갈등 상황 속에서 사명감으로 갈등의 최전선에서 중심을 지켜야 할 사회 지도층들은 구호만 있을 뿐 역할과 책임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얼마 전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우리나라 사회신뢰도와 공정성에 대한 인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본인이 경제적으로 ‘중산층 이하’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90%를 웃돌았다고 발표했다.

사회 전체의 의식과 영혼마저 9대1의 중간 부재의 사회로 가게 될까 벌써부터 섬뜩하다. ‘잘하지도 못하지도 말고 중간만 하라’며 우스갯소리도 던지던 말이 해를 거듭할수록 참으로 쉽지 않은 말이었음을 새삼 느끼곤 한다. 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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