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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가온 한글날, 현주소는 ①] 교실을 점령한 ‘도깨비말’…선생님만 ‘왕따’
-학생들, 도깨비말ㆍ귀신말로 불리는 소집단 언어사용

-또래집단 유대감 강화 도구로 사용…하나의 문화현상

-교사-학생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 저해한다는 의견도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1. 서울 마포구에 살고 있는 중학생 조모(14) 양은 올해초 단짝 친구로부터 배운 도깨비말로 대화를 나누는 데 푹 빠져 지내고 있다. 평범한 대화와는 다른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조 양은 “특히 친하게 지내는 또래 집단마다 각자 외계어에 넣어 사용하는 자음이 다르고, 같은 자음을 사용하는 친구들끼리는 더 큰 유대감을 느끼는 것 같다”며 “선생님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친구들끼리만 공유하는 비밀 이야기를 할 때면 안도감과 친근함이 더 커지는 점 때문에 외계어를 자주 사용한다”고 했다.

#2. 서울 송파구 소재 초등학교에서 6학년 담임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이모(35ㆍ여) 씨는 최근 교실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수업 중 지시를 잘 따르지 않은 여학생 단짝을 불러 질책을 하던 도중, 두 학생 모두 언짢은 표정으로 이 씨를 번갈아 보며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주고 받았기 때문. 나중에야 이 씨는 여학생들이 나눈 말이 ‘도깨비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씨는 “아이들의 또래문화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가끔 알아들을 수 없는 또래 언어로 학생들이 대화하면 의사소통이 단절된채 왕따가 된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고 했다.

최근 초ㆍ중ㆍ고교 현장을 중심으로 학생들 사이에 그들만의 언어인 ‘도깨비말’이 놀이처럼 일상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를 두고 새롭게 학교 교육현장에 나타난 또 다른 형태의 또래문화라는 의견과 동시에 교사와 학생간의 소통 단절을 가속화하는 요인이 된다는 의견으로 나뉘고 있다.

7일 전국 초ㆍ중ㆍ고교에선 도깨비말을 구사하는 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강원도 춘천에 사는 중학생 조모(14) 군은 “같은 반 여학생들을 중심으로 도깨비말을 사용해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꽤 있으며, 특히 선생님을 비롯해 어른들이 듣지 않았으면 하는 비밀 대화를 나눌 때 주로 사용한다”고 했다.

도깨비말은 최근 TV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한 걸그룹이 직접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며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당시 출연한 한 걸그룹 멤버는 “선생님이 (또래 친구들의 대화를) 못알아듣게 하기 위해 도깨비말을 썼다”고 말하기도 했다.

도깨비말은 표현하려는 단어나 문장의 음절을 초성, 중성, 종성으로 나눴을 때, 초성과 중성을 사용한 뒤 음절을 나눠 정해놓은 특정 자음을 앞글자의 중성과 종성에 붙이는 방식으로 활용된다. 자음으로 ‘ㅂ’을 사용하는 것을 통상적으로 ‘도깨비말’이라 부르고, ‘ㅅ’을 사용하는 것을 ‘귀신말’이라 부른다. 예를 들어 한글날을 도깨비말로 표현하면 ‘하반그블나발’, 귀신말로 표현하면 ‘하산그슬나살’이 된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국어학자들은 도깨비말이 지난 1950년대 10대 사이에서 유행한 ‘비밀언어’와 유사성을 띤다고 설명한다. 조성문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도깨비말로 불리는 이 같은 현상은 누가 따로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10대들이 초성과 중성을 중심으로 구성된 우리말의 음절 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만들어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국어 문법 파괴보다는 우리말의 특성을 잘 파악한 뒤 그들만의 또래 문화로 발전시킨 경우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사춘기에 들어선 10대들이 그들만의 욕구와 감정을 풀어내는 도구로 도깨비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김하수 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10대는 물론 어른들도 자신들의 응집력을 강화하거나 우애를 돈독하게 하기 위해 소집단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며 “어떤 집단이든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감정 해소 등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역할을 도깨비말이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교실 내 의사소통 과정에서 교사를 배제하기 위한 학생들의 언어로 사용되는 점은 구성원간의 물리적, 심리적 간극을 확대시킨다는 게 학교 현장의 목소리다. 서울 은평구 소재 중학교 교사 최모(51) 씨는 “또래간의 놀이에 활용되는 것은 인정하지만, 교사를 배제하기 위해 실제 학급 내 의사소통 구조에서 활용될 경우 교사-학생간의 이해 폭을 좁히는 효과를 낼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한 만큼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는 도깨비말을 두고 ‘또래 문화’에서 나타나는 단순한 소집단 언어라는 의견과 교사와 학생 사이의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사진은 학교 교실.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헤럴드경제DB]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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