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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은 노인의 날 ①] “‘니 몇살이야?’…실버 또래문화의 세계
-‘말다툼땐 먼저 나이 말하면 지는 것’ 문화 형성
-탑골공원, 친박 ‘북문파’와 반박 ‘남문파’로 갈려
-빈부격차에 따라 소일거리 보내는 곳 너무 달라

[헤럴드경제=구민정 기자] ‘또래 문화’란 동년배나 비슷한 나이를 가진 일정 집단이 향유하거나 즐기는 문화를 말한다. 보통 10대와 20대들의 문화가 관심의 대상이 된다. 노인들의 또래 문화는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엄연히 노인들 역시 또래집단 내에서 향유하는 특유의 문화가 있다.

우선 “너 몇 살이야?”란 대화가 시작되면 먼저 답하면 안된다. 먼저 말하는 사람이 불리하다. 나중에 나이를 밝히는 사람이 앞선 사람보다 무조건 많게 부르기 때문이다. 실제 나이와는 상관 없이 말이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은 노인들의 ‘아지트’다. 탑골공원 노인들은 ‘남문파’와 ‘북문파’로 나뉘어 정치ㆍ사회에 대한 갑론을박을 벌인다.

올해 72세인 박성범 씨는 지난 6월, 서울 종로구 종각역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집으로 가던 중에 한 노년 남성과 말싸움에 휘말리게 됐다. 이어지는 말다툼 중에 상대 노인은 박 씨에게 “니 몇 살이야?”라고 물었다. 박 씨는 “내 나이 올해 일흔 둘이요”라 답했다. 그러자 상대편 노인이 “야, 내가 올해 일흔 다섯이야”라며 “나이도 어린게 어디서 반말이야!”라며 화를 냈다. 순간 박 씨는 나이가 많은 형씨라는 생각에 기가 죽었다. 하지만 이후 역무실 직원이 조사차 물어볼 때 확인한 바론, 박 씨가 더 나이가 많았다. 박 씨는 “할아버지들은 얼굴만 보면 막상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며 “그래서 말싸움 할 때 나이로 기를 죽이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했다.

‘노인 아지트’ 탑골공원에서도 노인들의 또래 문화를 찾아볼 수 있다. 종각 쪽으로 난 ‘남문파’와 세운상가 방향의 ‘북문파’ 노인들 무리가 다르다는 것.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탑골공원은 서울의 중심부에 있고, 비교적 넓은 공공장소여서 노인들이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기에 최적이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은 노인들의 ‘아지트’다. 탑골공원 노인들은 ‘남문파’와 ‘북문파’로 나뉘어 정치ㆍ사회에 대한 갑론을박을 벌인다.

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지일종(71) 씨는 “동네 노인정이라고 할 만한데가 없다”며 “여기(탑골공원) 왔다갔다 하면서 시간 보내고 하는 거지. 다른 데는 눈치 안보면서 시간 때울 데가 잘 없다”고 말했다. 지 씨는 “나는 매번 이쪽(남문)에 앉는다”며 “저쪽(북문) 가서 앉으면 저쪽 양반들이 쫓아낼지도 몰라”라며 웃었다.

북문은 친박(親朴)의 땅이고, 남문은 소위 반박(反朴)의 영역이다. 지 씨는 “아무래도 노인들끼리 정치나 역사 얘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생각이 갈린다”며 “그렇게 정치 얘기로 싸우다가, 지금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 때만큼 잘하지 못하고 있다는 양반들은 남문에 모여 앉고, 지금 대통령도 잘한다고 보는 노인들은 북문에 모여있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문파인 지 씨는 “지금 대통령은 우병우 사태를 봐도 그렇지만 아버지 때만큼 잘하지 못한다”며 스스로를 ‘반박’으로 칭했다.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 뒷편 골목은 노인들 사이에서 ‘하리우드 거리’라고 불린다. 이곳의 식당과 찻집은 경제적으로 비교적 여유로운 노인들이 찾는다.

빈부의 격차에 따라 여가시간을 보내는 곳도 다른 것으로 파악됐다. 여윳돈이 있는 노인은 종로 일대 중에서도 허리우드 거리, 경제적 여유가 적은 노인의 경우 탑골공원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허리우드 거리’는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 뒷편, 영화인들이 자주 찾는 거리를 말한다. 이 곳은 오래된 다방과 문화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허리우드 거리의 한 카페를 찾은 차모(68) 씨는 얼마 전까지 대학에서 교수로 지내다 은퇴했다. 차 씨는 “평일 낮 인사동 거리는 생동감 있고 아직 찻집이 많아 시끄러운 걸 싫어하는 나에게 딱 맞는 놀이터”라며 “일주일에 두번 정도는 들려 책을 읽거나 친한 학자들을 만난다”고 했다. 반면 근처 탑골공원엔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이 많았다. 탑골공원에서 만난 한 노인은 “버스타고 탑골공원에 온다”며 “어디 들어가 놀래도 돈이 있어야 노는데 돈도 없고, 허리가 아파 이제 경비일도 못본다”며 탑골공원을 찾는 이유를 댔다.

전문가들은 노인들의 또래문화가 경제력에 크게 좌우된다고 말한다. 염지혜 중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특히 남성 노인들은 젊은 시절 여가생활을 즐기는 생활보다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기에 바빴다”며 “노인들은 사회생활을 할 때와 달리 급속히 줄어든 인적 네트워크와 부족한 경제력으로 제대로 된 취미생활을 향유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korean.gu@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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