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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도 하역스케줄‘0’…물류종사자들“우리는 죽어가고 있다”
배 한척 사람 한명 없어…작업 ‘올스톱’
근로자 “정부·한진 틈새 애꿎은 우리만…”
“산업기반 무너질라”부산민심도 요동


5일 한때 한진해운의 자랑이었던 부산 신항만 한진해운 터미널 초입에 들어섰다. 화물을 실은 트럭들이 줄지어 들어갔다. 지난해 4월 방문했을 때의 분주함과 다를게 없어보였다. 하지만 그 것도 잠시. 차들이 향하는 곳은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두는 야드(작업장)였다. 그곳에는 한진해운이 아닌 다른 해외 선사들의 선박에 실릴 화물이 차곡차곡 쌓였다. 머스크나 MSC와 같은 해외 선사의 배를 기다리는 화물이었다.

한진해운의 컨테이너 부두로 이동했다. 약 1.1km되는 폭의 하역장에는 배는커녕 사람 한명 찾아볼 수 없었다. 매일 쉴틈 없이 배가 정박해 있고, 선원, 트럭 운전사, 갠트리 크레인 기사 등 평균 600~700명의 인력이 오가며 근무하던 공간이다. 한때 하루처리 물동량만 1만3000TEU(1TEU는 6m짜리 컨테이너)에 달할 정도로 생기가 넘치던 곳이 시간이 멈춘 듯 ‘올스톱’ 됐다. 한진해운 터미널 관계자는 “이런 광경은 처음이네요. 지금쯤이면 한참 바쁠 시기인데…”하며 슬픔에 젖었다. 

[지난 5일 부산 강서구에 위치한 한진해운 부산 신항 컨테이너 부두 하역장에 배 한척 없고 사람 한명 없는 모습. 600~700여명이 근무하던 작업장이 한진해운 법정관리 이후 올스톱됐다.]

법정관리 신세가 된 한진해운이지만 한때 세계 8위로 이름을 날렸던 글로벌 선사였다. 한진해운 바로 옆 터미널에서는 스위스의 MSC 선박에 컨테이너 화물이 차곡차곡 실리고 있었다. 바다 건너편에는 CMA-CGM 선박이 유유히 움직이고 있었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한참을 멍하니 다른 국적 선박들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떨궜다.

5일과 6일, 이틀 연속 한진해운 하역 스케줄은 ‘0’였다. 들어오는 배가 없기 때문이다. 작업 스케줄이 한 건도 안 잡힌건 신항만 개장 이후 이날이 처음이라고 했다. 지난주엔 당장 일용직 화물 운송 기사들 110명이 구조조정됐다. 하루 평균 3~5척 정도는 신항만에 들어왔던 한진해운의 배가 난민처럼 공해 상을 떠돌면서 일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5일 기준 한진해운 선박 141척 가운데 73척(컨테이너선 66척, 벌크선 7척)의 배가 정처 없이 떠다니고 있다. 전세계 24개국 44개 항만에서 한진해운 선박의 입항을 금지했다. 바다 위 떠도는 시간이 더 길어지면 선원들의 생존도 위협받는다. 한진해운 노조는 “선원들이 항만에 들러서 물, 식량 등을 공급받아야 하는데, 최소한의 생존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분노했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만난 바다 사람들의 기개는 꺾이지 않았다. 한진해운에서 25년째 근무한 조규성 해사기획팀장은 “배에서 불안하겠지만 (법정관리이후)도망치려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며 “슬프지만 끝까지 자랑스러운 점”이라고 말했다.

부산에선 하필이면 왜 최성수기에 법정관리를 결정했느냐는 원망도 쏟아졌다. 터미널 관계자는 “지금이 최고 성수기로 넘어가는 시점인데, 하필 이 시점에 법정관리로 가게되면서 손해가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한진해운 터미널에도 여러 화주들이 찾아와 거센 항의를 했다. 혹시 짐을 잃을까 두려운 화주들이 무작정 터미널로 찾아와 대체선박을 투입해달라고 항의하는 통에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정박한 배 한 척 없는 한진해운 컨테이너 부두. 저 멀리 다른 해외 선사의 선박이 컨테이너를 싣고 운항중이다.]

화주들의 피해도 심각하지만, 장기적으론 한진의 물량은 머스크나 MSC 등 해외 선사들이 뺏어갈 가능성이 높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상선으로는 커버가 안 된다. 그동안 한진이 쌓아온 영업망을 현대가 가져가는게 아니라 상당 부분 공중분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미 대만의 양밍이나 중국의 코스코는 부산항으로의 경로 변경을 검토중이다.

더 큰 문제는 해운항만 물류를 기반으로 하는 부산지역의 산업기반이 붕괴될 가능성이다. 특히 컨테이너 수리업체, 한진해운 선박 선원, 선원 물품 공급 업체, 청소, 생수, 기름 등 공급업체 등 해운업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온 중소업체들은 존폐 기로에 섰다. 금융위가 한진해운 중소 협력업체를 위해 8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지만, 장기적으론 한진해운의 부재로 부산항 자체의 물동량이 감소하게 되면 이들의 생존 기반이 흔들린다. 나아가 한진해운 선박이 빠지면 환적 화물이 점차 감소할 가능성도 있다. 당장 부산항 전체의 1950만TEU 중 55%가 환적 화물인데, 홍콩, 대만 등지로 빠져나가면 부산 신항 자체의 붕괴도 거론된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수천억의 유동성 문제로 정부와 한진 신경전 벌이는 사이에 부산의 해운업 항만물류 종사자들은 죽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현지 민심도 요동치고 있었다. 부산의 한 택시기사는 “부산 전체가 충격을 받은 상황”이라며 “부산에서는 역사적으로 이번 (한진해운 법정관리라는)정부 결정이 나중에 혹독한 평가받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말했다.

부산=조민선 기자/bonjo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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