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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욕이 부른 주사기 공포…방치한 보건당국
[헤럴드경제=이태형 기자] 지난해 11월 서울 양천구 다나의원을 시작으로 C형간염 집단감염 사태가 끊이지 않고 있다. 보건당국이 원인을 조사한 결과가 사례별로 상이하긴 했지만, 집단감염 사태가 불거질 때마다 주사기 재사용 의혹이 제기됐다. 그런데 이런 ‘주사기 공포’의 확산을 막아야 할 보건당국은 아직도 정확한 원인이나 감염경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1일 의료계에 따르면 C형간염 집단감염이 발생한 병원 3곳은 모두 피로회복에 효과가 있다는 ‘푸르설티아민’ 성분의 마늘주사, 고용량 비타민을 주입하는 비타민주사, 피부재생을 돕는 자가혈주사(PRP) 등 기능성 영양주사를 주로 처방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집단감염 사실이 알려질 때마다 주사기 재사용 의혹이 불거졌던 이유다.
[사진=123RF]

이들 주사는 치료보다는 피부 미용이나 피로 회복 목적이 크다. 최근에는 동네의원을 중심으로 이른바 ‘칵테일 주사’가 성업 중이다. 기력회복이나 혈행 개선, 노화방지, 치매예방, 피부미용 등 건강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회사가 밀집한 도심에서는 점심시간에 맞춰 피곤한 직장인들이 칵테일 주사를 맞고 간이침대에서 잠시 눈을 붙이기도 한다. 여러 영양제 성분을 혼합해 쓰는 칵테일 주사는 건강보험 적용이 안 돼 의원마다 가격을 제각각 매길 수 있다. 학원가 주변 의원에서는 수험생이 맞으면 두뇌 활동이 촉진된다는 ‘브레인 주사’도 등장했다.

일선 의원에서는 환자들이 대형ㆍ종합병원에 몰리는 상황에서 이익창출을 위해 영양주사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는 게 의료계의 설명이다. 특히 일부이겠지만 이들 병원 중 주사기를 재사용하는데서 C형간염이 집단감염이 발생한다. 건강하고 싶고, 공부 잘 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개인은 감염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셈이다.
<그래픽><자료출처 : 건강보험심사평가원>

C형간염은 수혈이나 문신, 성관계 등 주로 혈액과 체액을 통해 감염된다. C형간염은 AㆍB형 간염과 달리 잘 알려지지 않은데다 증상이 거의 없어 감염되고도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아직 예방백신도 개발돼 있지 않다. 대신 치료제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돼 현재는 완치율이 90% 이상으로 높아졌지만 모르고 지나갈 경우 20년 후에는 30% 가량이 간경화로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건당국의 안일한 대처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C형간염에 걸리고도 치료를 받지 않은 사람이 25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정부 차원에서 시행하는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나온 수치다. 건강보험 통계상 실제 치료를 받은 환자는 약 7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나머지는 감염 사실을 모르거나 알고도 방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3~4년 전에 C형간염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연구용역 결과까지 받았지만 정부는 이제와서야 부랴부랴 C형간염을 표본감시에서 전수감시 대상으로 바꾸고 국가 건강검진에 C형간염 검사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최근 서울시 의사회는 성명서를 통해 “병ㆍ의원은 물론 각종 침구 시술, 불법적인 미용ㆍ문신 시술이 이뤄지는 곳의 감염 관리 실태도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며 “이참에 정부와 의료계가 제대로 된 감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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