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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나지 않은 친일파 소송 ①] 이완용 땅, 국고 환수한 것은 고작 0.09%

  • 기사입력 2016-08-15 10:00 |고도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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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1주년, 마침표 찍지 못한 친일파 청산

-“재산환수, 법테두리서 완료할때 됐다” 의견

-전문가들 “독립유공자 예우ㆍ지원 재점검을”



[헤럴드경제=고도예 기자] 광복 71년인 15일, 일제 강점기의 잔재인 친일파 청산은 여전히 미완으로 남아있다.

지난 2010년 정부는 친일파 168명의 토지를 국가에 귀속시키기로 결정했지만, 이들의 후손들이 연달아 소송을 내며 맞섰기 때문이다. 

광복 71년이 됐지만 친일파 청산 및 재산환수는 미완으로 남아있다. 사진은 한일합방에 찬성한 내각 각료들이 일본 견학 당시 찍은 사진. [사진출처=헤럴드경제 DB]

15일 법무부에 따르면 이날 기준 친일재산환수 관련 소송 97건 중 93건이 종결됐다. 국가는 이중 91건에서 이겨 승소율이 97.8%에 이른다. 정부의 별도 조처가 없다면 남은 4건이 해결되는 대로 친일파 재산 환수 작업은 마무리된다.

남아있는 4건은 모두 친일파 이해승과 관련된 소송이다.

조선 왕실 종친인 이해승은 일제강점기 친일 인사로 돌아선 인물이다. 그는 한일합병 이후 최고 귀족인 ‘후작’에 봉해졌다. 이완용이 주도한 친일 단체의 고문으로 활동했고, 1942년에는 전쟁 중이던 일제에 국방헌금을 모아 전달하기도 했다.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는 이해승의 300억대 재산을 환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해승의 손자인 그랜드힐튼 호텔 회장 이우영 씨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소송을 냈다.

이해승의 재산에 대해 10여년간 지지부진한 소송전이 이어졌다.

하급심의 판단이 엇갈린 가운데, 대법원은 2010년 이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작위를 받았다 해서 한일합병에 공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자 국회가 특별법을 개정했다. 일제 시대 작위를 받았다면 재산환수가 가능토록 법조항을 고쳤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재심을 청구했고, 항소심 재판부는 이해승의 재산을 환수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현재 이해승의 재산 환수 여부를 심리하고 있다.

이해승의 재산까지 환수된다면 168명 친일행위자의 재산 2475 필지(약 1267억원)가 국고로 돌아온다. 이미 친일파 송병준과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을 지낸 민병석, 중추원 참의 박희양 등의 일부 재산이 국가에 반환됐다.

다만 국가가 돌려받은 것은 친일파들이 일제 강점기 보유했던 재산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현행 상법 상 후손들이 물려받은 토지를 팔거나 법인 재산으로 등록하면 환수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친일 재산의 대부분은 재산조사위원회의 심사 대상에도 오르지 못했다.

가령 을사오적 이완용은 일제강점기 여의도 면적 두 배에 가까운 토지를 소유했지만, 국고로 돌아온 것은 이 토지의 0.09%에 지나지 않았다. 친일파 송병준의 경우에도 일제강점기 당시 받은 토지의 0.04%만 환수 대상이 됐다.

전문가는 친일파 청산의 마무리와 함께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지원 검토를 동시에 주문하고 있다.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이송순 교수(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박사)는 “그간 재산환수를 위한 특별법에는 친일 재산이라 하더라도 명백한 행위가 뒷받침 되지않으면 환수할 수 없다는 취지가 있었다“며 ”역사적으로 책임을 물어야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실정법상 한계가 있었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그러나 분명히 친일파 세력에 대해 역사적으로 첫 제재를 가했다는 의의가 있다”며 “재산 환수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완료하고, 그 정신을 바탕으로 독립 유공자들에 대한 예우와 지원사항을 다시 점검해 후손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yea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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