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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119. 배타고 1시간 거리의 아프리카…낯선 ‘모로코의 향기’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세비야를 떠나는 날이다. 축제의 거리만큼이나 시끄럽던 호스텔은 여전히 어수선하다. 처음에 낯설던 풍경도 며칠 사이 익숙해졌다. 다시 못볼 것이라 생각하니 오히려 그 풍경들이 더 품속으로 파고든다.
아침의 청소부들, 출근하는 사람들, 몇몇 부지런한 관광객들을 지나치며 걷는다. 버스 출발까지는 시간이 넉넉해서 배낭을 지고 천천히 걸어서 세비야의 마지막 풍경을 눈에 담는다. 거리에 서서 1유로를 넣어주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어주던 은빛 귀부인 동상 퍼포먼스의 주인공이 이제 막 준비를 하고 있다. 축제가 돈 벌 기회가 되고 일자리가 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떠나는 마당에서 생각하게 된다. 부활을 축하하는 거리에서도 삶은 치열하다. 엽서에 이미 사놓은 우표를 붙여 고풍스러운 세비야 우체국에서 부치는 것으로 나는 세비야 부활절 축제의 한 가운데에서 비껴나간다. 


오늘의 여정은 타리파(Tarifa)라는 스페인 남단의 도시로 가서 배를 타고 모로코로 입국하는 것이다. 세비야 버스 터미널로 가서 버스 시간을 보니 하루에 두 대 뿐인 버스 중에서 한대는 30분 전에 출발했고 오후 2시 버스만이 남아있다. 호스텔에서 서둘러 나왔는데도 세비야의 마지막 아침 풍경을 본다고 어슬렁거리다가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친 것이다. 배낭도 무겁고 이미 마음으로는 세비야와 작별인사도 마치고 온 차에 다시 세비야 구시가로 가는 건 싫어서 버스터미널에 앉아 세 시간쯤을 버티기로 한다. 물과 간식거리를 사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음악을 듣다 보니 시간이 지나간다. 낯선 곳으로의 떠남을 음미해 보는 이런 시간도 나쁘지 않다.
세비야에서 타리파로 가는 버스 안에서 한국인 여자가 말을 건다. 버스를 놓쳐서 실망스러웠는데 늦은 버스에서는 이런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유럽을 여행 중인 대학생 둘이 모로코(Morroco)로 가는 중이라고 한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데 뒷좌석의 터키인 사업가까지 끼어들어 서로의 여정을 나눈다. 어쨌든 모두들 오늘 모로코로 가는 사람들이어서 혼자가 아닌 게 모처럼 위안이 된다.


스페인의 타리파에서 모로코의 탕헤르는 페리로 국경을 넘어야 하지만 정작 이동시간은 1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거리다. 승선 후에도 이야기는 계속된다. 터키인 아흐멧은 사업차 방문이라 모로코의 수도인 라바트(Rabat)로 가는 중이고 한국인들은 사막 여행을 위해 모로코에 간다고 한다. 항구인 탕헤르(Tangier)에서 하루를 머물지, 마라케시(Marrakesh)로 직접 갈지 의논을 하게 된다. 한국인에게는 더욱 낯선 곳이라 첫 날을 함께 할 동행이 생기는 것은 대환영이다. 아흐멧은 은근히 라바트로의 동행을 원하는 눈치지만, 한국인들은 마라케시로 가기로 의기투합한다. 


그러는 사이 페리는 지브롤터 해협(Strait of Gibraltar)을 건넌다. 모로코 입국 도장은 배 안에서 찍어준다. 모로코는 여행정보가 많지 않아 긴장된다. 페리를 타고 모로코에 도착하는 순간 만나는 사람을 조심하라는 경고가 많다. 유럽에서 모로코에 오는 사람들이 이곳 물정에 어두운 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여러 번 방문한 아흐멧도 있고 한국인이 셋이나 되니 마음이 놓인다.


버스를 타야 하는 아흐멧과는 항구에서 헤어지고, 한국인 두 명과 동행이 되어 마라케시로 가는 야간열차를 타러 간다. 배에서 내릴 때 잠시 보았던 풍경에 비해 기차역은 외관도 멋지고 쾌적하다. 탕헤르에서 하룻밤 머물고 가려했는데 어쩌다가 마라케시행 기차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다. 기차표를 사고 나서 택시 타고 올 때 눈여겨보아둔 맥도날드로 간다. 아랍어로 적혀 있는 간판과 외관이 남다른 분위기다. 옆에서 햄버거를 먹는 여자들의 옷차림이 무슬림의 나라에 왔다는 걸 깨닫게 한다.


드디어 모로코에 도착했다. 세비야에서 타리파는 버스로, 타리파에서 탕헤르는 배로, 탕헤르에서 마라케시는 열차로 이동 중이다. 하루에 버스, 배,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일은 긴 여행 중에도 처음이다. 산티아고 길 이후에 사라졌던 낯선 여행지에서의 긴장감이 오랜만에 팽팽히 조여진다. 유럽과 다른 모로코의 향기에 설렌다. 기차 안은 생각보다 훨씬 쾌적하다. 이베리아 반도를 떠나 북아프리카 땅을 달리는 밤이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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