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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촌은 지켜질까?…뜨는 동네의 딜레마 젠트리피케이션
2000~2010년 젠트리피케이션 사례
홍대·가로수길 등 핫플레이스 망라
홍대→상수동 쫓겨나도 같은 현상 반복
도시변화의 불가피한 상황인지
주민 자생적 노력으로 극복 가능한지
서촌·종로3가등 통해 생각거리 제공



2009년 크리스마스 이브, 홍대 앞 한 건물에 세들어 있던 칼국수집 ‘두리반’이 강제철거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건물주가 4년 넘게 이 곳에서 장사를 하던 이들에게 이주비로 건네 준 돈은 300만원. 거리로 내몰린 부부는 두리반으로 들어가 농성을 시작했고 젊은 예술가들이 속속 합류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문화예술운동으로 이어진 두리반 사건은 531일간 점거투쟁 끝에 양측의 합의로 막을 내렸다. 이 사건은 도심 재개발로 거주민들이 쫒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인식을 불러오는 시발점이 됐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ion)’은 영국의 전통적 중간계급인 젠트리(gentry)에서 파생된 용어로, 노동자들이 주로 사는 런던의 버려진 공장이나 창고지대에 예술가들이 들어와 작업하면서 시작됐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상가임대차 문제가 부상한 것은 자연스럽고도 흥미롭다. 건물주의 횡포로 생업을 아예 접거나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2010년대 중반에 이에 반발하는 집단적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에서)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푸른숲)는 신현준 성공회대 교수가 주축이 된 동아시아연구소가 2000년대말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서울에서 진행된 젠트리피케이션 사례들을 현장 중심으로 담고 있다. 서촌과 홍대, 가로수길을 비롯, 한남동, 해방촌, 종로3가, 구 구로공단, 창신동 등 최근 몇 년간 가장 큰 변화를 보인 서울의 핫 플레이스들이 망라돼 있다.

이들은 당초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독특한 매력이 있던 곳들이다. 예술적인 장소들이 많아 입소문이 나고 찾는 발길이 많아졌다. 이에 따라 스타일리시한 카페나 레스토랑 등이 들어서고 부동산 시세와 임대료가 올랐다. 결국 그 곳에서 장사를 하거나 예술활동을 하면서 동네 문화를 만들던 이들은 높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밀려나고 상권의 성격도 바뀌는 과정을 밟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인디문화를 이끌었던 홍대 예술가들이 상수동, 망원동, 성산동, 연남동 등으로 옮겨가면서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저자들은 현장에서 만난 이들을 통해 젠트리피케이션이 터전에 대한 불안감, 두려움, 혼란, 무력감, 허무주의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보고한다.


이 책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개념과 사례들을 다루고 있지만 서울의 동네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로도 읽힌다.

구 도심의 가장 오래된 동네인 서촌의 경우, 한옥, 일식가옥, 양옥 등 낮은 층의 오래된 주택과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어우러져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장소감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런 존재감은 주민의 보존 노력보다는 권위주의 시대 정부의 강압정책탓이 크다는데 아이러니가 있다. 권력의 중심인 청와대와 역사유적 경복궁, 자연경관 인왕산에 접해 있다는 이유로 이곳은 1970년대부터 20년간 고도지구, 미관지구, 경관지구 등의 이름으로 정부의 엄격한 규제를 받아왔기에 역설적으로 보존이 잘 된 것이다.

서촌이 주목받게 된 아이러니는 또 있다.

2000년대 인사동, 북촌, 대학로 등이 천편일률적인 개발로 본래의 매력을 상실하면서 서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매력으로 부각된 것. 서촌을 만든 이들은 첫번째 이주자들인 문화예술인들이다. 이들의 이동은 느리고 소규모로 진행됐으며, 토박이들은 고급취향을 가진 이들의 이주를 반대하지 않았다. 저자들은 이들을 신주민, 현대판 중인이라 부른다. 이들이 서서히 서촌을변화시키면서 서촌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2010년 서촌이라는 지명이 대중적으로 확산될 무렵에는 토박이들 중심으로 세종마을로 지명을 바꿔야 한다는 운동이 전개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새로운 주민들로 결성된 서촌주거공간연구회 같은 곳을 중심으로 이상 기념관 설립, 사직단복원 반대운동이 펼쳐지기도 한다. 한편으론 지역사회에 뿌리내리지 않는 글로벌한 창의적 자영업자들도 자리잡는다.

그렇다면 서촌도 삼청동이나 가회동처럼 바뀔까? 저자들은 “서촌은 도시에 남은 진정한 동네라는 이상을 표상한다”며, “이 매력적인 동네가 나름의 항체를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노인들의 파라다이스’로 불리는 종로3가는 그야말로 별천지다. 종로3가의 피크 타임은 오후1시. 노인들이 모여드는 이 시간, 중고시계, 보석, 음악CD, 야한 동영상 등 노인의 눈길을 끌 만한 물건들을 파는 가판이 늘어서지만 정작 이들은 물건 파는 일보다 어울리는데 흥이 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노인들의 공간이동 역시 서울시 정비사업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1998년 문화재 보존을 위한 성역화가 이뤄지면서 노인들은 파고다 공원에서 종묘공원으로 이동한다. 다시 2007년 종묘 일대 성역화 사업이 시행되자 노인들은 종묘 공원에서 파고다공원으로 옮겨 간다. 탑골공원을 시작으로 낙원상가까지에는 이들을 위한 싼 국밥집, 이발소, 콜라텍, 술집 등이 줄줄이 이어져 있다.

그런데 노인들은 왜 종로3가를 자신들의 낙원으로 선택한 걸까? 저자들은 지하철 1호선,3호선, 5호선이 모두 지나가는 교통의 유리함이 일과 오락을 모두 해결해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들의 노인탐색은 성매매가 이뤄지는 돈의동 쪽방촌까지 뻗는다. 돈의동과 이웃한 유흥가였던 익선동은 사정이 좀 다르다. 골목 골목 낮은 한옥집들이 현재 한옥 집단지구로 화려한 변신을 꾀하며 공방, 게스트하우스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거대한 도시 변화의 불가피한 현상인지, 주민의 자생적 노력과 정책적 개입이 어느 정도 이를 막을 수 있는지 여러 사례를 통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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