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없는 유가족 공격” 비난봇물
일부 “힐러리에 투표” 변절선언도
# 1954년 미국 육군 청문회. ‘매카시즘’을 주도하며 늘 그래왔듯 공산주의자들을 가려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은 공격 대상을 잘못 골랐다. 매카시는 당시 육군 법률고문이었던 조셉 웰치의 사무실에 근무한 변호사가 과거 좌파 단체에 몸 담았다며 일격을 가했다. 이에 웰치는 “당신에게는 어떤 품위도 없는가, 결국 어떤 품위도 남아 있지 않게 된 것인가”고 물었다. TV로 생중계된 청문회에서 많은 이들이 마음에만 품었던 말을 내뱉은 웰치의 발언은 반향이 컸다. 결국 이를 계기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된 매카시는 그 해 12월 상원에서 불신임당했고 3년 뒤 세상을 떠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후보가 메카시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막말과 거침없는 언설로 지지율 상승을 이끌었지만 최근 임계점을 넘어선 발언이 트럼프 몰락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인의 심장부로 여겨지는 호국영령의 죽음을 비하한 트럼프의 발언 이후 공화당 의원들은 물론 트럼프 캠프의 내부참모들마저 트럼프에게서 발을 빼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심지어 적군인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에게 투표하겠다며 변절을 선언하는 이들도 잇따르고 있어 이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해롤드 폴랙 시카고대 교수는 이와 관련 1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을 통해 트럼프가 매카시와 같은 방법으로 패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폴랙 교수는 기존에 주류 정치인이나 일정 집단을 공격했던 것과 달리 “엘리트 정치인이 아닌 아들을 잃고 슬픔에 빠진 평범한 아버지”를 공격했다는 점을 실수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프랭크 런츠 공화당 여론조사원은 “트럼프가 다른 정치인들을 공격하는 것에 반발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면서 “그러나 일반 시민들을 공격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라고 말했다.
근거없는 추측에 기반한 공격이었다는 점에서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트럼프는 무슬림 교리 때문에 칸의 부인은 한 마디도 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지만 당사자 여성은 아들의 이야기를 할 때면 너무도 심각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입을 열지 않은 것이라고 사후 설명했다.
실제 도를 넘어선 트럼프의 막말 이후 트럼프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놓인 모습이다.
공화당의 3선 하원의원인 리처드 한나 의원은 2일 ‘시러큐스닷컴’ 기명 칼럼에서 “나로서는 트럼프 발언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는 공화당에 봉사하기에도, 미국을 이끌기에도 부적합하다”며 힐러리를 찍겠다고 공언했다. 공화당에서 힐러리를 찍겠다고 선언한 현역의원은 그가 처음이다.
트럼프 캠프의 ‘정권 인수위원장’인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도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그는 뉴저지 주 의회 의사당에서 관련 질문에 “키즈르 칸 부부 입장에서 보면 아들이 나라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은 그 고통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는 것”이라면서 “그것이 옳고 그르든 상관없이 그들은 하고 싶은 말은 뭐든지 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폴 라이언 의장실은 오른손에 작은 헌법 소책자를 든 사진을 홈페이지에 공개하면서 트럼프에게 일침을 가했다. 이는 칸을 연상시키는 사진으로, 사진 밑에는 ‘라이언 의장이 미 의회의 첫 번째 의무는 헌법을 준수하고 수호하는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차원에서 헌법 소책자를 들고 있다’는 설명이 달렸다.
라이언 의장은 이보다 하루 전 성명에서 “많은 무슬림계 미국인이 군대에서 용감하게 복무했고 희생을 했다”면서 “칸 대위가 바로 그런 용감한 군인의 한 사례다. 칸 대위와 가족들의 희생은 항상 존중돼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성명에서 “트럼프는 최근 며칠 동안 미군 전사자 부모들을 헐뜯는 언급을 했다. 그의 발언은 공화당은 물론 공화당 지도부, 공화당 후보들의 시각을 대변하지 않는다”며 거리두기에 나섰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에 대한 사과는 물론이고 조금의 물러섬도 없이 ‘마이웨이’를 고집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 버지니아 주(州) 애쉬번 유세에서 당내 ‘반(反)트럼프’ 인사들을 겨냥해 “나를 싫어하더라도 나에게 투표하고 충성해야 한다. 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단언했다.
트럼프는 또 애리조나 상원의원 경선에서도 매케인 의원을 지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수민 기자/smstor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