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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이우환 위작 탄생의 순간
이중섭의 그 유명한 그림 ‘황소’를 눈으로 본 건 1986년 호암갤러리에서였다. 그의 타계 30주기 특별기획으로 열린 ‘이중섭전’은 대표작부터 은박지 그림까지 그의 작품이 총망라된 첫 대규모 전시로, 이중섭의 생애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발디딜틈 없이 줄을 이은 관람객들은 특히 굵고 힘찬 선으로 꿈틀대는 소 앞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금세 뒷발을 박차고 그림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소들도 좋았지만 샛노란 보름달을 배경으로 나는 까마귀 그림이 애잔해 포스터를 샀던 기억이 있다. 

이후 그의 그림을 종종 보게 되면서 첫 감동도 흐릿해질 즈음, 또 한 번의 충격적인 만남이 생겼다. 2005년 서울옥션 경매에 나온 그의 그림 4점에 위작 시비가 인 것이다. 당시 그림의 소장 출처가 도쿄에 거주하는 이중섭의 아들이어서 충격은 더 컸다.

그림 감정이란게 안목 감정이나 작가의 ‘친자확인’이 전부였던 미술계에 처음으로 과학적인 도구가 동원된 것도 그 때다. 당시 한국감정협회측에 서 위작을 주장한 미술품감정가 최명윤씨는 이중섭의 ‘물고기와 아이’ 등 출품작 4점을 이중섭의 전작 도록에 나온 서체와 비교ㆍ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중섭은 서명으로 ‘중섭’을 썼는데, 쓴 방향과 붓, 연필의 각도가 일정한 특징을 보인 데 반해 위작은 크게 달랐다. 유족 측과 경매사, 감정협회의 공방 속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진 그림은 지문 필적 감정, 물감성분, 머리카락 DNA 분석까지 거치면서 위작으로 최종 판정났다. 당시 유족 측은 50년 전부터 보관해 오던 그림이란 일관된 주장을 폈다.

흥미로웠던 과학감정의 하나는 위작에서 발견된 금분가루였다. 이중섭의 그림에서 금분가루 사용은 알려진 적이 없어 미술계 비상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당시 이중섭의 아들 태성씨는 아버지가 일본에 왔을 때 진보조라는 재료상에서 금분을 구입해 그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 씨가 그림 ‘아이와 복숭아와 게’를 2000배율의 실체 현미경으로 검사한 결과, 금분이 아닌 구리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림은 탄생 당시 자신을 구성했던 여러 재료의 물성을 지문처럼 지니고 살아가게 된다.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이우환 화백의 위작과 관련, 경찰의 과학감정결과도 탄생의 순간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수사결과에 따르면, 연대가 서로 다른 못이 한 작품에 사용되고 캔버스와 나무틀을 일부러 오래 된 것처럼 만든 흔적이 확인됐다. 물감 성분도 달랐다. 작가가 “내 자식”이라고 주장하기에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번 사태로 미술품 유통 투명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숙제가 됐다. 시장은 시스템의 신뢰가 생명이다. 이중섭 위작 사태로 시장이 얼어붙었던 긴 동면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미술품 유통 이력 의무화, 공인 미술품감정사 제도 도입 등 정부가 뒤늦게 나선 점은 다행이다. 이와함께 작가의 작품 DB 구축, 전작 도록 작업도 작가의 진정성 입증이나 위작 근절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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