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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위작시장을 키울 수는 없다
#1. 지난 6월 스위스 ‘아트바젤’. 하이라이트 전시인 ‘언리미티드(Unlimited)’전은 동시대 미술시장의 축소판이었다.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작가, 그들의 의미있는 작품들이 한자리에 소환됐다. 놀라운 건 이 작품들을 “아무에게나 팔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름있는 미술관이나 돼야 소장할 수 있다는 것. 세계적인 화랑들은 그렇게 소속 작가와 작품의 ‘이력’을 관리하고 있었다.

#2.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감정ㆍ유통 분야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세미나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미국, 프랑스 미술품 감정 전문가들은 “작품 제작과 거래 내용의 정확하고 상세한 기록”을 강조했다. 작품 보증서나 거래 이력이 없다면 일단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우환 위작 사건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경찰은 압수한 13점 모두 ‘위작’임을 전제로 위조총책과 위조화가를 잡아들였다. 경찰청장도 나섰다. “모두 진품”이라고 주장한 이우환 작가에 대해 이상원 서울경찰청장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은가 의심스럽게 보고 있다”며 배경을 조사하겠다는 방침이다. 현재까지는 참고인 신분이지만, 이 씨도 조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으며, (진품 주장을) 사주하는 사람이 있는지도 본다는 것이다.

경찰은 그동안 위작 수사를 하며 “작가만큼은 보호한다”는 원칙을 내부적으로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적인 작가이니만큼, 권위를 지켜주고자 했던 것. 그러나 경찰이 내놓은 과학적인 증거는 물론, 위조범들의 자백까지도 부정하며 진품을 주장했던 이 씨가 급기야 ‘경찰 회유설’까지 흘린데 대해 경찰 내에서는 “뒤통수를 맞았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결국 ‘성역없는 수사’를 선포했다.

이우환 작가에게는 불리한 상황이다. 그는 경찰서를 들어가며 불같이 화를 냈다. “작가가 감정권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미술계 전문가 집단의 조언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론은 싸늘해졌다. 어찌보면 자초한 일이다. 

그러나 모든 게 작가 탓일까.

더 큰 문제는 이우환 작가와 지난 40년 넘게 함께 일해 온 갤러리에 있다. 누구보다도 작가를 잘 아는 갤러리다. 진품이 맞다면 작가 뒤에 숨을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작품의 제작, 유통경로를 수사기관에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작가 말마따나 사인을 대신 해줬다거나, 겹치는 일련번호로 보증서를 쓴 적이 있다면 그 또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미술계 일부에서는 “시장이 위축된다”는 이유로 위작 관련 법제 강화를 우려하고 있다. 물론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건 중요하다. 그렇다고 ‘위작 시장’을 키울 수는 없다. “한국만 들어가면 유통 경로가 불투명해진다”는 오명을 벗고, 자체 시스템을 통해 위작이 걸러진다는 걸 이번 기회에 보여줘야 한다. 그게 진짜 성숙된 시장을 키우는 길이다.

김아미 라이프엔터섹션 차장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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