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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 TV 대신 인문학에 빠지다
#지난 25일 토요일 오후, 요즘 핫한 연남동 화단길 가에 자리잡은 작고 예쁘장한 서점에 사람들이 둥근 의자를 놓고 다닥다닥 붙어 앉았다. 몸을 움직거리기 쉽지 않을 정도로 끼어 앉아야 겨우 20여명 정도가 자리할 좁은 공간이다. 피아노와 모니터, 스피커가 그 공간의 3분의1을 차지하고 음악관련 책들이 한쪽 벽면을 장식한 아늑한 공간에 모인 이들은 출판도시문화재단이 진행하는 인문학당 프로그램의 참여자들이다. 이날 프로그램은 음악서점 라이너 노트가 마련한 ‘음악미학-이토록 아름다운 음악이야기’. 음악평론가 황덕호씨가 들려주는 재즈 피아노의 한 페이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키스 쟈렛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귀기울였다. 프로그램의 특성상 청자들은 대부분 20대 남녀들이지만 50대 후반의 여성들도 눈에 띄었다.

진지하고 호기심어린 눈길로 음악 해설을 들은 한 중년 여성은 “격이 다른 프로그램이다”며 “다른 인문학프로그램에도 여러번 참가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문학이 삶의 기초 아니냐”며, “삶에 도움이 된다”고도 했다.





▶4050여성 왜 TV 대신 강의실을 택했나=2014년 문을 연 출판도시 인문학당은 당시 103회에서 2015년 에는 251회로 두 배이상 강좌를 늘렸다. 올해 여름학당(6월~8월)은 높은 호응에 힘입어 파주출판도시에서 벗어나 서울 및 전국으로 확장해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인문학당이 29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참여자 중 77.36%가 여성으로, 이 중 40대 이상 여성이 46.62%로 절반에 가까웠다. 참여자들은 파주지역 거주자 뿐만 아니라 서울, 인천, 강원도, 충남, 대구 등 전국을 망라했다. 이들은 관심있는 분야로 문학(19.22%), 철학(11.28%), 심리학(9.75%), 문화(9.47%)을 꼽았다.

중년여성들이 인문학 강좌에 몰리는 현상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진행하고 있는 여성인문학 강좌에서도 확인된다.

역사박물관은 지난해 상반기 시범으로 여성 대상 인문학강좌를 개설한게 반응이 좋아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했다. 매 회 프로그램에 약 50, 60명이 참여하는 이 강좌에는 40대 이상(87%) 여성이 대부분이다.

강의 내용은 ‘고령화를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부터 인공지능, 빅데이터까지 다양하다.

이들 인문학강좌의 만족도도 꽤 높다. 출판도시 인문학당의 경우, 91.5%가 만족스러워했으며, 95.27%가 재참여 의향을 보였다. 강좌에 6회에서 10회 방문한 인원은 10.81%, 10회 이상 참여자는 25%를 차지할 정도로 열광적이다.

[사진1]역사박물관에서 진행된 여성인문학 강좌


역사박물관의 인문학 강좌 역시 수강자의 93%가 만족스러움을 나타냈다.

이런 인문학 프로그램은 셀 수 없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도서관협회가 6월 한달간 진행하는 ‘길 위의 인문학’의 경우, 전국 동네 219개 도서관이 787회의 강연을 진행한다. ‘궁궐 속 나무에 스민 조선과 고양의 역사’(고양시립삼송도서관), ‘전쟁과역사, 인문학을 말하다!’(분당도서관), ‘미술과 여성’(운암도서관),‘나무생태 인문학’(남산도서관) 등 문학, 역사, 철학, 자연, 문화예술 등 주제도 다양하다.

[사진2]음악서점 라이너 노트에서 진행된 인문학당 ‘음악 미학’


▶인문학은 삶의 기초체력!=그렇다면 가정 주부들이 TV앞을 떠나 왜 인문학강좌를 찾아나서기 시작한 걸까.

무엇보다 40, 50대는 여성들에게 육아에서 벗어나 자기 삶을 돌아보기 시작하는 시기에 해당한다. 가족 중심에서 나로 회귀하는 지점이다. 생리적 현상인 권태기 혹은 갱년기가 찾아오면서 나와 주변의 관계가 의문시되고 나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에 회의가 들기 시작하는 때이다. 여성들이 동창 등 사회관계망을 새롭게 회복하기 시작하는 것도 이 시기이다. 이 중심에는 소통에 대한 강한 욕구가 자리잡고 있다. 인문학 강좌에서 비슷한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과 커피와 다과를 즐기며 질문도 하는 편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는 생활의 반경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을 주기도 한다.

심리학자들은 여성들이 생활에 쫒겨 잊었던 것들에 대한 향수와 갈망, 욕구를 인문학 강좌를 통해 해소하고 있다고 본다.

이는 관심분야 강좌에서도 드러난다. 출판도시 인문학당의 상위 5개 분야는 문학, 철학, 예술, 심리학, 문화 등으로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학문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삶과 예술이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역시 그렇구나 공감하니 힘이 더욱 난다”“가까이에서 소통하면서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철학에 대한 기본 소양과 율곡의 철학사상에 대해 깊이있고 명확한 이해를 하게 돼 너무 유익하고 재미있었다.”등 인문학당 수강자들의 반응은 이를 보여준다.

중년 여성 바람 뒤에 또 하나의 배경에는 우리 사회 중년 여성의 경우, 부모 세대와 달리 적극적으로 사회로 진출한 세대라는 점이 자리잡고 있다. 50,60년생 여성들의 경우 폭발적으로 대학진학이 늘고 기업체 공채를 통한 사회진출이 시작된 세대들로 어느 세대보다 사회적인 이슈에 관심이 많은 세대다.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했던 이들이 현재 출판시장의 중심이 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인문학 강좌가 초기 교양적 수준에서 적극적으로 시대를 알고자 하는 욕구에서 역사와 과학으로 옮겨가기 시작하고 있는 데서 드러난다.

역사박물관이 선호 강의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근현대사 역사 강의와 근현대 사회ㆍ정치 강의에 대한 응답이 각각 29%씩 나타나 역사 강의에 대한 요구가 58%에 달했다. 소설ㆍ철학(25%), 예술분야 (17%)가 뒤를 이었다.

또 중년여성은 자녀세대가 대학 진학이나 사회진출을 앞두고 있어, 미래 사회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역사박물관은 이런 여성들의 욕구를 제대로 짚어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지난 상반기 강좌에서 급속히 변화하는 고령화사회 문제와 인공지능, 빅데이터와 같은 주제에 수강자들이 높은 관심을 보인 것.

이 여성인문학 강좌를 진행하고 있는 최상오 역사박물관 학예연구원은 “흔히 여성 대상 강좌하면 소프트한 것, 미술, 음악, 문학, 철학 등의 주제를 다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최근 사회가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대한 관심이 높아 최근 사회 이슈가 되는 주제를 마련했다”며,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이 강좌의 인기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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