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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덕적 해이’ 채무자는 보호…채권자엔 되레 희생 강요
산업재편 과정 부실기업 확산 우려
회생 관련 전문법원 설치 필요성
구조조정3법 원활한 운용 ‘경제활력’


산업계 구조조정이 시작된 가운데 채무자회생및파산에관한법률(일명 통합도산법) 시행(2006년 4월 1일) 10년이 지나면서 우려됐던 문제점들이 노출되고 있다.

채무자 권리는 지나치게 보호되는 반면에 채권자 권리보호는 미흡, 시장경제 원리에 반한다는 점이다. 또 기업회생 과정에서 추가 자금조달이 사실상 막혀 있는 점도 시급한 개선요소로 지적된다.

향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회생절차 신청 기업도 크게 늘어날 전망이어서 관련법 재정비가 시급하다는 견해가 대두된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4월 우리나라 은행권에 대한 신용등급 전망(향후 12~18개월)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했다는 사실만 봐도 향후 부실기업, 좀비기업들이 늘어날 것을 예측한 선제적 경고로 보인다.

부실기업 처리에 신속을 기하면서도 경영부실에 대한 책임을 묻고 채권자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의 통합도산법 개정 논의가 고개를 드는 이유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좀비기업이 양산되면 자원배분의 왜곡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자원의 낭비는 결국 경제회복을 지연시킬 뿐이란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지난 4월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기업회생제도의 현황과 전망’ 심포지엄에서도 이런 지적이 이어졌다. 



▶채무자 도덕적 해이·채권자 권리보호 요원=우선 관리인 선임에 채권자 의견 반영, 채권자 결의에 의한 관리인 해임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법률상으로는 채권자협의회의 구성을 의무화하고 지위 강화를 규정했지만 법원의 권위에 압도되는 게 현실이다. 채권자협의회가 법원에 의견을 제시하더라도 구속력이 없어 유명무실할 뿐이라는 것이다. 회생절차의 최대 이해관계자인 채권자의 의사를 반영한 효율적인 진행은 시장경제의 원칙에 부합한다는 점에서도 절대 보장돼야 할 권리다.

한국산업은행 박상진 법무지원부장은 “회생절차는 채권자의 권리감축이라는 희생 하에 진행되므로 관리인 선임에 대해 채권자의 의사 반영이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한다”며 “채권자협의회는 회생절차의 진행과 관련하여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으나 종국적으로는 법원이 모든 사안을 결정하고 있다. 채권자협의회 역할의 유명무실로 인해 관리인에 대한 견제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채권자의 이해관계가 충분히 보호되지 못함에 따라 신규자금 지원 등 기업의 회생을 위한 채권자의 적극적인 회생절차 참여에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행 회생제도 하에서 사실상 막혀 있는 추가적인 자금조달 길을 열어줘야 회생의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적시 자금지원은 기업의 생사를 가름하므로, 회생절차 기업에 대해서도 기업구조조정촉진법상 워크아웃 기업과 마찬가지의 채권자 우선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은행권의 BIS비율 부담으로 회생 가능성이 높은 기업도 회생절차 중인 기업에 대해서는 신규여신은 막혀있다. 회생절차 기업에 대한 대출은 고정이하 여신으로 분류돼 20%의 충당금을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융감독 당국이 은행에 대한 자산건전성 분류기준의 유연한 운영을 허용하고, ‘공적 구조조정기금’을 만드는 방법도 고려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규 기금이 여의치 않다면 자산관리공사와 중소기업진흥공단의 구조개선전용자금 확대 운용도 한 방안으로 거론된다. 



▶‘회생전문법원’설치·구조조정 3법 정비=기존관리인 유지제도(DIP) 수정도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부실의 책임자이자 채무자가 보호되고 채권자가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 ‘권리역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회생절차 중인 S전기 임모 대표(제3자 관리인)는 “부실경영에 책임이 있고 수많은 주주에게 피해를 입히고 경영권을 보장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경영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워크아웃 대신 회생절차 신청 기업이 많은데, 이는 사회적으로도 큰 피해”라며 “채무자 보다 채권자 보호가 우선되고, 좀비기업에 대한 과감한 퇴출과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흥전기 안청헌 CRO(최고구조조정책임자)는 “관리인 선임에 대해선 회사의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고 거래처 등 기존 영업에 관한 노하우가 있으므로 가장 신속하게 회사의 회생을 추진할 수 있다는 기존 경영진 유지론, 이미 경영상의 무능이 확인된 기존 관리인의 경우 회사재산의 유용 가능성과 보호대상인 채권자와 이해가 충돌될 가능성으로 제3자 관리인 선임론이 대립하고 있다”며 “경영노하우를 활용할 필요가 있으며, 채권자협의회가 동의하고, 기업의 재무상태가 아직 파산원인에는 해당되지 않는 경우에 한해 기존 경영진을 관리인으로 선임해야 하고, 법원이 관리인을 상시 감독할 수 없어 불법 경영의 예방을 담보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여 채권자협의회에 관리인 해임요청권을 주면 된다”고 밝혔다.

이밖에 워크아웃과 회생절차 신청이 늘어날 것에 대비 ‘회생전문법원’ 설치도 고려해볼만 하다는 견해도 있다.

박승두 한국사회법학회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회생절차에 관한 법원의 전문성이 부족해 회생 가능기업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회생시키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받았다”며 “기술혁신과 신산업 위주로 산업계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부실기업, 부실징후기업이 늘어날 것이 예상되므로 회생 관련 전문법원 설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통합도산법 정비와 함께 8월 시행되는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 기존 기업구조정촉진법 3자를 원활히 운용함으로써 구조조정을 신속히 마무리해야 경제활력이 회복될 것으로 기대된다.

원샷법은 정상기업에 대한 선제적 부실화 방지가 그 내용이다. 기존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나 통합도산법은 사후적·구조조정을 지원하며 부실기업이 대상이다.

LG경제연구원 이한득 연구위원은 “구조조정 관련 큰 방향은 결정됐으니 이제 관련 법률의 미비점을 정비하고 추진체인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신속하고도 과감히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상처나 후유증이 적고 회복도 빨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조문술 기자/freihei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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