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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107. 포르투, 느긋한 발걸음…해리포터를 만나다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포르투에서 4일을 머무르는데 숙소를 세 번이나 옮기게 된다. 또다시 호스텔을 옮겨야 해서 일단 배낭을 맡겨두고 돌아다닌다. 까미노가 그리워진다. 날마다 다른 숙소에서 잠들지만, 일어나자마자 부지런히 걸어야 할 길이 있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미룰 수 없기에 열심히 걸었던 그 길, 까미노를 벗어나니 오히려 서글픈 생각이 든다. “떠돌이”라는 단어가 실감 난다.
어제보다는 가늘어진 빗줄기에 감사하며 호스텔에서 걸어 내려가는 길은 아기자기한 건물 사이의 골목들이다. 비가 뿌리다가 그치다 말다 하는 날씨지만 풍경은 예쁘다. 알록달록한 건물을 바라보며 걷다 보니 유명한 클레라구스 성당과 종탑이다. 들어가지는 않는다. 맘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다닐 것이다. 


평범한 건물 사이에 1869년에 세워졌다는 아름다운 렐루(Lello) 서점이 보인다. 렐루 서점 앞에는 이미 사람들이 많다. 이미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10대 서점”’ 중 하나인 이곳은, 특히 ‘해리포터’때문에 유명하다. 작가 조앤 롤링이 이곳 포르투에서 영어교사로 일했고 이 서점에도 자주 오가며 ‘해리포터’를 집필했다고 한다.
100년이 넘는 역사만큼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나무로 된 나선형의 빨간 계단이 인상적인 서점이다. 책을 사거나 보는 사람보다 서점 자체를 보기 위해 들어온 사람이 대부분이다.
사진 촬영은 금지라서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전담하는 직원이 있을 정도다. 웃긴 것은 그 와중에도 몰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찍다가 들키면 “노 포토!”라고 제지당하지만 성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박물관도 아닌데 사진을 금지하는 것도 우습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래 찍는 사람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걸어보고 싶은 대로 골목을 걷는다. 14, 15세기에 미지의 항로를 개척했던 중세의 포르투갈은 현재 우주 항로를 개척하는 미국과 같은 위상이었을 텐데, 세상을 호령하던 포르투갈 제2의 도시 포르투의 오늘 뒷골목은 조금 스산하다. 지금 포르투갈은 유럽에서도 가난한 나라가 되어있는 것이 현실이다.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빨간 지붕들이 인상적이다. 물론 빨간 지붕으로 대변되는 유럽의 풍경이란 어디든 비슷한 면이 있긴 하다. 멀리 왼편의 대성당과 오른쪽 아래는 루이스 다리까지 흐릿한 하늘 아래 한 눈에 보이는 포르투의 경치는 이색적이다. 


파란색 아줄레주(Azulejo: 장식타일)가 상 벤투 역뿐만 아니라 거리의 건물에도 여기저기에도 아름답게 장식되어 아름다움을 더한다. 언덕 위에 지어진 건물, 옹기종기 붙어 있는 파스텔 색조의 건물들, 빨래가 널린 테라스, 이런 풍경이야말로 다른 그 무엇보다 포르투의 미덕이다.
평범한 건물 사이의 아름다운 교회가 여행자의 발길을 끈다. 파란 타일의 외벽이 아름다운 상 니콜라우 교회(Igreja de sao nicolau)로 들어가 본다. 포르투에는 유명하다는 성당들이 많지만 일부러 찾아가 멋진 성당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것보다 이런 자연스러운 발걸음이 더 좋다. 


때로는 시끄러운 거리를 걷다가, 때로는 비를 피해서 들어와 보는 성당은 언제나 경건하지만 포근하기도 하다. 속세에서 일시에 성스런 세상으로 들어와 버린 듯한 그 엄숙함이 좋다. 어느 성당이나 위를 우러르도록 높게 설계된 천정을 바라보며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한없이 초라한 인간임을 느닷없이 깨우치게 하는 성당은 언제나 고맙고 왠지 모르게 위안을 준다.
성당에서 나와 다시 거리를 걷는다. 어디를 둘러봐도 수채화 같은 풍경, 트램이 오가는 거리는 이색적이다. 이곳 포르투의 역사지구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 하더니 역시 거리의 건물마다, 돌로 된 바닥마다, 오래된 트램에서마저 그 특유의 아름다운 향기가 피어나는 듯하다.


언덕 아래로 내려가는 발걸음은 당연히 도루 강변을 향한다. 포르투의 핵심은 이 도루 강변일 것이다. 중세에 항구로 번성했던 도시이니 얼마나 많은 배가 이곳에서 출항했을까? 유명한 포트와인의 산지인 포르투에서 포트와인을 실어 나르는 배는 또 얼마나 많았을까?
아직 찬바람 부는 강변에서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고 유람선은 손님을 기다리며 서있다. 비가 많이 내리던 어제는 썰렁하던 강변이었다. 주말이라 그런 것인지 노점도 보이고 제법 사람이 많다. 강변에는 기념품 가게와 식당, 와인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기념품 가게나 노점에서는 포르투갈의 상징인 수탉 모양의 기념품과 앞치마, 요리 장갑 같은 것들을 팔고 있다. 


포르투에서 만나는 낯설면서 재미있는 풍경은 거리의 대학생들이다. 포르투갈의 대학교는 교복을 입는데 그것도 까만 망토를 덮어쓴다. 검은 망토에 긴 머리 여대생들을 보면 꼭 ‘해리포터’의 여주인공 헤르미온느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것 같아 눈길이 자꾸 간다. 아무튼 이 여학생들은 마주칠 때마다 쳐다보게 된다. 


강변을 따라 구경하며 걸어서 동 루이스 1세 다리(Ponte de Dom Luiz I)에 왔다. 표지판을 읽다 보니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는 진짜 비슷하다. 다리라는 뜻의 단어도 스페인어는 푸엔테(Puente)인데 포르투갈어는 퐁치(Ponte)라고 하고, 와인이라는 말도 스페인어 비노(Vino)나 포르투갈어 비뉴(Vinho)도 비슷하다. 그래서 스페인어 단어를 알면 포르투갈어가 이해가 간다고 한 것이었구나! 아는 스페인어도 몇 개 되지 않는데 별 걸 다 알아낸다. 하긴 우리나라 사람이 중국의 번자체나 일본의 간자체 한자를 대략 이해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여하튼 도루 강의 명물인 이 다리를 걸어 강 건너 빌라 노바 데 가이아(Vila Nova de Gaia) 지역으로 간다.


다리를 걸어 강을 건넌다. 이곳 빌라 노바 데 가이아(Vila Nova de Gaia) 지역은 와이너리(winery)가 모여 있는 곳이다. 정작 와이너리 쪽으로는 가지 않고 와인 저장고를 바라보며 언덕으로 오른다. 하늘에 케이블카가 오가는 것을 보며 골목을 걷는다. 비는 멈췄지만 하늘은 아직도 잿빛이다. 어차피 포르투가 걷기 적합한 곳이긴 하지만 다시 까미노에라도 온 듯, 오늘은 많이도 걷고 있다. 걸으면서 만나는 포르투는 대도시 치고는 참 고즈넉한 도시다. 아까 지나온 강 반대편 선착장이 보이고 와인 저장고의 빨간 지붕들이 바로 앞에서 줄을 서고 있다.


그렇게 열심히 오른 곳은 모로의 정원(Jardin do Morro)이다. 그리 크지 않은 공원이고 벤치마저 몇 개 없지만 포르투의 구시가와 도루 강을 그대로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벤치에 앉아 다리를 쉬며 포르투의 아름다운 구시가와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구시가와 연결된 전철이 다니는 이 지역은 현대적인 건물이 이어져있다. 여행자들은 주로 아름다운 구시가와 와이너리 정도만 보고 가게 되니까 이 지역까지는 오지 않는 것 같다. 케이와 나는 아직도 까미노를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걷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곳에 온 김에 세라 두 팔 라르 수도원(Mosteiro da Serra do Pilar)에도 가본다. 군인들이 지키고 있고 문은 열려있지 않지만 원통형의 하얀 건물이 무척이나 특이하다. 포르투 역사지구의 전망을 즐기러 케이블카를 타고 오는 곳이다.
수도원의 뒤쪽으로 한참 동안 걷다 보니 동 루이스 1세 다리는 멀어져있다. 어둡던 하늘이 밝아지고 있어서 다행이지만 오늘은 꽤 많이 걷고 있다. 짐 없이 천천히 걷는 이 정도의 걸음이 피곤하지는 않다. 


다시 도루 강을 건너니 토요일이라서인지 벼룩시장이 서 있다. 아이의 자전거부터 농기구, 콘센트, 옷가지들, 옛날 도자기, 시계 등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모든 것들을 길 위에 늘어놓고 팔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장을 구경하면서 걷는다. 유명한 무엇을 보는 것보다 사람 사는 모습들을 바라보는 것이 훨씬 유쾌하다.
정면의 아줄레주가 너무 아름다운 상 일데폰소 성당(Igreja de St.Ildefonso)은 눈길을 사로잡는다. 문이 잠겨있어 들어가진 못했지만 이런 아름다운 건축물이 툭툭 튀어나오는 포르투의 역사지구 거리는 세계문화유산인 것이 당연하다. 까미노를 걸으며 스페인 북부의 많은 성당들을 보았지만 포르투의 성당들은 참 독특하고 아름답다.


역시나 100년 된 카페라는 마제스틱 카페(Majestic Cafe)도 지나간다. 역사만큼 유명한 카페라지만 사진 한 장만 찍고 그냥 지나친다. 아직까지는 까미노에서 마시던 1유로짜리 까페콘레체가 좋다.
토요일이라 붐비는 것은 벼룩시장만이 아니었다. 쇼핑거리인 산타 카타리나(Santa Catarina) 거리에는 오가는 사람들도 많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 출출한데 마침 군밤 파는 노점이 있다. 커다란 통에 구워 A4용지에 담아주는 군밤은 2유로다.


군밤을 먹으며 걷다 보니 또 아름다운 성당이 보인다. 알마스 성당(Capela das Almas)이라는 이곳은 무심히 지나가는 포르투 사람들이 신기할 정도로 건물의 외벽 전체가 푸른 타일로 덮여있다. 스페인에서 단지 국경을 넘어왔는데 포르투갈의 풍경은 너무나 다르다. 유럽 어느 지역보다 독특한 문화와 색깔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재래시장인 볼량 시장(Mercado do Bolhao)으로 간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시간이 많이 지나 문을 닫는 중이다. 결국 들어가지 못하고 그 앞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스페인이든 포르투갈이든 식사할 때 와인은 기본이라 와인과 함께 기분 좋은 점심을 먹는다.
느긋하게 리 베르다드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겨 광장의 맨 끝 시청사에 도착한다. 비가 멈추다 내리다를 반복하던 하늘에서는 다시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시청사 앞에서 리베르다드 광장을 내려다본다. 연못은 비 때문에 예쁘게 찰랑거린다. 맑은 날엔 좋은 쉼터일 것 같은 시청 앞 광장이 지금은 비로 흥건하다. 여행자는 단편적인 것만 보고 간다. 나는 비 내리는 광장을 기억하고 포르투를 떠나게 될까?
비가 거세게 쏟아져 어쩔 수없이 숙소로 향한다. 내일은 슈퍼 메르까도가 문을 열지 않는 일요일이라 우산을 빌려 메르까도를 찾아가서 내일 저녁까지 장을 봐서 호스텔로 돌아온다. 그리고 까미노에서 하듯 케이와 쌀로 밥을 지어 저녁을 먹는다.
점심에도 저녁에도 와인은 필수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나서 메르까도에서 사 온 싼 와인에 치즈를 곁들여 먹으면서 케이와 이야기를 나눈다. 내일이 지나면 헤어져야 하기에 까미노의 여느 저녁 같은 이런 시간이 추억의 한 장이 되고 있다.


호스텔 주방은 알베르게와는 달라서 여행자들은 요리를 직접 해 먹지 않는 경우도 많다. 사람이 없는 주방을 차지하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 여자가 들어온다. 냉장고에서 자기의 채소를 꺼내 샐러드를 만들어 먹으면서 그녀는 우리에게 말을 건다. 영국에서 과학자로 일했다는 이탈리아인인 그녀가 말을 건 이유는 와인과 치즈 때문이었다.
동양인 둘이 와인과 치즈만을 놓고 호스텔 주방에서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낯설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홍대입구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노란 머리 외국인 둘이 막걸리와 김치를 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보는 느낌일 수도 있겠다 싶어 박장대소를 한다. 


밤이 되면서 빗방울은 더욱 굵어진다. 저녁을 만들던 동양 여자는 같은 도미토리를 쓰는 중국인 메이다. 하이난의 고등학교 교사인 메이는 어젯밤 카사 다 무지카에 공연을 보러 갔다가 길을 잃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비는 내리고 동행은 잃어버렸는데 지금 묵은 호스텔의 이름도 몰랐다고 한다. 비에 젖어 거의 울면서 헤매다가 다행히 친절한 포르투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 여러 호스텔을 찾아다니다가 간신히 숙소를 찾았다며 깔깔거린다. 까미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그녀에게 900km를 걸었다고 하니까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한다. 유쾌한 메이와 좀 더 일찍 만났거나 포르투에서의 시간이 남았다면 좋은 여행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것 같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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