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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민이 쓰고다닌 ‘패랭이’ 닮은꽃 흔하지만 그래서 더 기억하고픈 꽃
때이른 무더위 때문에 부쩍 짜증이 늘은 요즘입니다. 초여름 햇살에 그을려 더욱 짙어진 녹음이 아무리 싱그러워도, 더위 앞에선 거추장스럽게 느끼질 때가 많죠.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몸이 축축 처지는 이맘 때, 따가운 햇살을 이겨내고 꽃을 피우는 식물들을 보면 대견하게 느껴집니다. 날씨가 아무리 사나워도, 흙이 드러나고 햇살이 닿는 곳에선 어김없이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내니 말입니다. 최근 더위에 지쳐 고개를 숙이고 길을 걷다가 자투리땅에 피어난 짙은 분홍색 꽃과 마주친 기억이 있지 않나요? 그렇다면 아마도 여러분은 패랭이꽃과 마주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패랭이꽃은 석죽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매년 전국 각처의 양지바른 곳에서 여름 내내 꽃을 피웁니다. 패랭이(조선시대 신분이 낮은 양민이나 천민들이 쓰고 다녔던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어 엮은 모자)라는 이름의 유래가 궁금하다면 꽃 한 송이를 꺾어 뒤집어 손바닥에 올려 살펴보세요. 모양새가 사극에서 보신 패랭이와 꼭 닮았죠? 패랭이꽃은 도저히 식물이 뿌리내리지 못할 것 같은 모래밭에서도 꽃을 피울 만큼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합니다. 여기에 민초를 상징하는 패랭이라는 이름까지. 생태와 이름의 유래를 알고나니 패랭이꽃이 훨씬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패랭이꽃의 한자 이름은 ‘석죽화(石竹花)’입니다. 줄기의 마디가 대나무의 마디를 닮았다는 데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이 때문에 패랭이꽃은 예부터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그림에 많이 담겼습니다. 단원 김홍도의 ‘황묘농접도(黃猫弄蝶圖)’가 그 대표적인 그림이죠. ‘바위(石)’는 장수를 상징하고, ‘죽(竹)’은 축하한다는 의미를 지닌 ‘축(祝)’ 자와 중국어 발음이 같다더군요.
과거 패랭이꽃이 가졌던 축수(祝壽)의 의미는 지금도 유효합니다. 패랭이꽃은 서양으로 전해져 다른 식물들과 교잡해 수많은 원예품종으로 개량됐는데, 그중 하나가 매년 어버이날에 불티나게 팔리는 카네이션이거든요. 꽃집에 들르시거든 카네이션을 잘 살펴보세요.
패랭이꽃과 비교해 꽃잎이 훨씬 풍성하고 크지만, 꽃잎의 끝에는 패랭이꽃 특유의 톱니 모양이 그대로 남아 있고 꽃받침의 모양도 같습니다. 카네이션은 패랭이꽃과 같은 석죽과의 여러해살이풀이기도 합니다. 개량 과정을 거쳐 남의 나 라 꽃인 카네이션으로 더 유명해진 패랭이꽃. 이는 마치 한국 원산인 수수꽃다리가 ‘미스김라일락’으로 개량돼 우리에게 역수입되는 모습과 판박이여서 씁쓸함을 남깁니다.
씁쓸하지만 벌어진 일을 주워 삼킬 순 없는 노릇이죠.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부지런히 피어나는 패랭이꽃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우선일 겁니다. 지금도 메마르고 척박한 곳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을 패랭이꽃. 패랭이꽃의 꽃말은 ‘순결한 사랑’입니다. 길에서 패랭이꽃을 만나시거든 그 ‘순결한 사랑’에 응답해 보시죠. “네가 바로 패랭이꽃이었구나!”하고 말입니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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